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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니체는 도덕과 함께 인류가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내딛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사시대는 무엇인가? 모두가 알고 있다. 선사시대는 역사시대 이전의 시기를 의미한다: 인류가 출현하고, 역사시기에 진입하기 이전 시기를 ‘선사시대’라고 부른다.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선사시대라는 개념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에는 "시대"라는 자연적 마디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이 아니라 역사가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선사시대 또한 다른 시대들처럼 역사 속에서 시대로 규정되며 출현했다. 그런데 선사시대라는 개념은 놀랍게도 19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등장했다. 그리고 선사시대라는 개념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선사시대는 놀라운 개념이었고, 논쟁적인 개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만 같은 “선사시대”라는 개념은 놀라운.. 더보기
뫼저의 <독일 역사> 안성찬 선생이 번역한 헤르더의 5장, 를 요약. 원문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Möser, Justus: Osnabrückische Geschichte. Osnabrück, 1768. Vorrede로부터 발췌 우리가 국가Nation의 진정한 구성요소인 평범한 토지소유자들에 주목하고, 그들이 겪은 변화 양상을 추적하다면, 독일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역사가 몸체가 되고, 크고 작은 인물들의 역사는 행운이든 불운이든 이 몸체에 딸린 우연들Zufalle로 고찰됨으로써, 제후들의 자율적 통치권Territorialhoheit이나 압제 따위는 행운이나 불행의 결과가 될 것이고, 서사적 진행의 힘을 통해 독일 역사에 하나의 통일성이 부여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민족성.. 더보기
교양 있는 속물들의 학자연함에 반하며 미독에게 보낸 편지전 요즘 이래저래 글쓰기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최근 디디-위베르만의 을 읽었는데... 복잡한 심정이 들더군요. 도대체 이런 책을 좋다고 평가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일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니체를 전공하게 된 것은 상황에 따른 필요 때문이었지만, 니체를 전공한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니체의 글은 의미가 있거든요. 반면 디디-위베르만의 글은 그런 게 없습니다. 디디-위베르만의 책은 적당함을 지킵니다. 적당히 비판적이고, 적당히 학술적이고, 적당히 인간적이죠. 그래서 정말 별 볼 일 없는 책이고,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책입니다. 설명하자면 이러합니다. 는 바르부르크 찬가였습니다. 은 파솔리니 찬가고요. 누군가는 이런 작업이 중요한 역사적 인물을 .. 더보기
니체와 역사서술 보충 니체가 역사를 실존, 학문, 정치를 종합하는 기예로 생각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8세기 초반 할러는 기계와 유기체를 다음과 같이 구별합니다. 기계는 형태적인 차이는 가질지라도, 각 부분이 동종적인 물질로 이루어져있는 반면, 유기체는 각 부분이 이종적인 물질로 이루어져있어 다르다는 것이죠. 각 부분의 “이종성”이 무엇인지가 중요한데, 할러는 이종성을 설명함으로써 이종성을 설명하지 않고, 결과의 차이를 통해 설명합니다. 유기체는 물질적인 상태는 똑같아도, 생명이 없어질 수 있는데, 바로 이 차이, 물질적인 상태는 변하지 않고서도 생명이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이종성 때문이란 것이죠. 여기서 “생명이 없어질 수 있다”도 결과로 설명됩니다. 신체의 파괴에서 비롯되지 않는 죽음과, 죽음과 함께 시작.. 더보기
니체와 역사서술 요즘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논문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른 회복해야할 텐데, 나을 만하면 다시 아프고, 나을 만하면 다시 아픈... 그런 악순환에 빠져 있습니다. 공부한 것들을 정리해볼 겸, 이래저래 적어 보았는데, 나름 선생님께서 관심 가질 만한 것들이 있어 공유해봅니다. 니체에게 있어 왜 “역사”가 중요했는지, 그리고 역사를 중요시하는 그의 입장이 루소와 플라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글입니다. 니체는 자신의 작업들이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고, 자서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니체의 저작 중에서 “자서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뿐이죠. 하지만 니체는 다르게 얘기합니다. 당연히도 자서전이 아니고, 자서전일 수 있도록 의도하고 쓴 책들이 아니지만, 돌이켜보니 그것들이 결국 .. 더보기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게으르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굶어 죽게 내버려두어도 된다는 주장은 좀 너무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맬서스는 그런 주장을 했습니다. 심지어 더 너무한 주장을 했죠. 게으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서도 내버려두어도 된다고 주장했으니까요. 그런데 맬서스의 주장은 단순히 너무한 것을 넘어서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맬서스는 저 책을 단순히 개인적인 믿음을 밝히기 위해서 쓴 게 아니라, 특정 신앙 집단을 대변하기 위해 쓴 거였거든요. 그리스도교는 자선의 종교입니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하는 자선의 종교이죠. 그러니 당연히 그리스도교에서는 게으름과 상관없이 자선을 베풀 것을 가르쳤습니다. 설혹 신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이 자선의 의무를 벗어나는 경우들을 다루었을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가능할 수 있는 국소적인 .. 더보기
건축학과 도시계획 보충 (추가) 를 지시하기 위해 '보유補遺'라는 표현을 지켜왔지만, 저 책에 대한 나의 실망으로 그냥 일상적인 표현인 '보충'을 쓰기로 함. 이하 미독에게 보내는 편지.도시 속의 삶을 다루는 책을 몇 권 읽고 미독의 흥미를 끌 만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 생각 중이던 다른 주제들이 제 독서와 화합하며 절 우울한 결론으로 이끌더군요. 절 낙담하게 만드는 주제들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든, 도움을 주는 것이든 말이죠. 시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다루는 일에 대한 저의 회의에서 시작하고 싶군요. 사람들의 기대는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정말 말하고픈 것들 중 하나이죠. 기대, 신뢰, 약속, 책임. 하지만 모든 기대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일처럼, 허망.. 더보기
근대 철학에서의 감각이란 문제 제목이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만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올림. 근대가 시각 중심주의라는 식의 서술이 꽤나 히트를 쳤지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관련된 문헌들을 제대로 읽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조너선 크래리가 에서 정말 박살을 내주죠. 애초에 문헌 확인조차 하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는 소리거든요.(비슷한 걸로 근대가 수사학을 탄압했고, 이제 수사학을 부활시켜야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도 멍청하니까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다만 근대에 감각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고, 이 사실은 자세히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근대에 감각이 중요해진 것은 감각이 중요하지 않게 되어서, 혹은 감각을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려고 시도되어서입니다. 원래 감각은 각 기관의 고유.. 더보기
맥락이란 무엇인가? - 미독의 물음에 대한 답변 옛날에 나눈 대화. 관련하여 상기할 것이 있어 다시 찾아보고 올림. Q. 맥락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역사 연구의 방법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다보니, 또 제 조사를 뭐 이것저것 하다보니 해석의 타당성은 결국 맥락 설정에서 오는 것 같더라구요. 그럼 대체 맥락이란 건 어떻게 경험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어서요. 우선 저는 맥락이란 게 특정 관찰이 다른 관찰에 반해 더 개연적으로 선택되게 만드는, 한편으로는 명시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암묵적인, 참조적 인덱스의 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성사적 방법을 가지고 얘기해보자면, 이건 작가가 참조하고 활용한 그 인덱스의 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작가는 결국 자기 작품의 첫번째 독자이기도 하잖아요 ㅎㅎ 그가.. 더보기
<도덕의 계보학>을 하나의 논박서로 해석하기 재미로 써 본 글. 니체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입장을 종합해본 것. 을 하나의 논박서로 해석하기 - 계보학 방법론의 학문론적 지위를 토대로 목차 1. 들어가면서 2. 자연주의적 접근 비판 3. 미학적 접근 비판 4. 니체와 역사학 5. 니체의 역사학 – 자연사 6. 자연사에서 계보학으로 7. 나오면서 1.들어가면서 니체 학계는 격변하고 있다. 1970년대에 뮐러-라이터는 니체의 역설에 대한 임시방편적 해석의 한계를 지적하고 일관적일 수 있는 니체 철학의 체계를 제시해야만 한다고 역설하였다. 1990년대에 존 리처드슨은 그의 기념비적 연구로 이에 응답하였다. 리처드슨의 해석에 대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의 저작은 니체 연구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이정표로 여겨진다. 파편적으로 주장되는 니체의 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