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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캉길렘의 의학론> 찬가 플라톤을 이해하는 데에 때로는 칸트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의 “시급성”은 문제겠지만요. 하지만 어떨 때에는 플라톤을 이해하기 위해서 칸트를 이해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리브가 플라톤의 『폴리테이아』를 말하기 위해 칸트를 말해야만 했던 것이 그 증거죠. 오늘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제가 칸트의 『학부들의 다툼』 3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캉길렘의 의학론』이 저에게 필요했더군요. 건강을 말하며 “선험”을 말해야만 할 때가 왜 있는지, 철학이 의학과 투쟁해야만 할 때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를 캉길렘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논문들이지만 그것들을 모아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부족하나마 이를 소개합니다. 이 구절에서 시작하고 싶군요.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의학적.. 더보기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 – <평화의 수호자> “진정으로 위대한 철학책은 불멸의 기념비이면서도, 시대를 위한 팜플렛이어야만 한다. 영원할 것만 같은 책이면서도, 그 쓸모가 다하면 사라지길 진심으로 원하는.” 나는 이것을 진실로 믿는다. 그렇기에 플라톤의 , 데카르트의 , 루소의 , 칸트의 , 헤겔의 , 니체의 , 하이데거의 , 아렌트의 또한 저런 책이라고 믿는다. 이것들은 “진정으로 위대한 철학책”이니까. 여기에 포함되어야만 할 책들이 있다.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의 , 그로티우스의 , 푸펜도르프의 . 이 위대한 책들을 저 만신전에 등재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를 읽은 것이다. 언제나 제목만을 떠들었던 책을, 그 내용으로 떠들 수 있게 되어서, 이 책의 위대함을 떳떳하게,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이 기쁨을 표현하고자, 부족하지만.. 더보기
<다윈에 대한 오해>를 읽고나서 누군가를 바보로 만들지 않고 의미 있는 비판을 성취하는 일은 중요하다. 문제는 내가 그걸 잘 못한다는 것이다. 만 해도 그렇다. 당연히 저 책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완벽한 책이란 건 없으니까.(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제외하고!) 자주 얘기하지만,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실패는 당연한 것이고, 성공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정말로 성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고 우리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가 비난 받을 일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일이 많다.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에도 일이 잘못될 수가 있다. 역사 속의 패배들은 대부분 이런 일들이고 말이다.(현대의 모.. 더보기
<다윈에 대한 오해>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얘기하지만 다위니즘과 다윈의 이론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다위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의 종합이론을 의미하고, 현대의 종합이론은 당연히도 다윈과 무관하다. 생물학에 속하는 활동들은 당연히도 다양하고,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나의 무엇으로 표상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가 현대의 종합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종합이론이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구세대적인 헛소리를 지금 시점에 반복하는 치들을 내가 경멸하긴 하지만 이는 중요치 않다.) 그것의 합리성과 무관하게 현대의 종합이론을 세운 이들이 자신들을 하나로 엮기 위해 상징으로 내건 역사 속 인물 다윈은 그들과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저런 작업, 즉 생물학을 하나의 무엇으로 인식케 하는 활동이 필요했던 시점은 지났다.. 더보기
미독에게 추천하는 책들 Mark Bevir, R. A. W. Rhodes의 The State as Cultural Practice 예전에 이 책 소개해드린 적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땐 제가 안 읽고 소개한 것이기도 하고, 그때는 저희 모두 “통치”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었으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통치 문제를 다루려고 하면 이 책은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뭐 두 저자 모두 통치 문제 전문가인 것도 중요하겠지만(비버는 옥스퍼드 입문 시리즈의 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소개하는 이론과 그 이론을 소개하는 방식입니다. 일단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론은 당연히도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국가입니다. 그냥 이렇게 툭 던져놓았을 때는 딱히 별 감명이 없을 수도 있고, 당연한 것일 수도 있고.. 더보기
<가상사회의 철학> 에 이어 을 읽었다. 애초에 을 읽게 된 것 또한 때문이었다. 신간서적란에서 발견하고 호기심이 생겼는데, 괜찮은 책일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이전 작품을 읽은 것이었다. 을 읽으며 저자의 철학적 능력이 뛰어나단 확신이 들었기에 자연스럽게 을 읽게 되었다. 에 대한 나의 코멘트에서 윤리를 다루는 마지막 장이 한심하다고 평가했는데, 어찌보면 이에 대한 답변이 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한심하다고 평했던 것은 해당 장의 내용이 문제적이어서가 아니었다. 해당 장에는 학적으로 상식적인(물론 상식적이지 않아서 문제지만) 윤리관이 제시되었고, 해당 윤리관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내가 동의할 뿐만 아니라 이미 열심히 따르고 있는 윤리관이니 비난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내가 비난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장의 서술 방식.. 더보기
쇨러의 <과학교육의 사상과 역사>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카톡 별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인데, 너무 좋은 책이라 추천 겸 해서 공유합니다.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에 속하는 책인데, 분실 때문인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는 없더군요.(바흐오펜의 도 분실된 상태인데, 신청해도 안 사주고 있습니다. 도서관에 문제가 많은...) 에서 나오는 시민vs인간 구도 등을 이해할 때, 비교연구로 참조하면 좋을 책이라고 일단 홍보하고 싶습니다.(아래부터는 본격 뻘소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단 책 자체를 약간 홍보하자면,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대를 이어받아 진행된 연구성과를 제시하는 책이라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저자의 아버지가 교육학사에서 사용될 1차문헌들을 목록화하고 문헌들을 편집-출판하는데 좀 더 힘을 쏟았다면, 저자는 학계에 통용될 수 있는 일.. 더보기
그래프턴의 <편지공화국>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카톡 항상 “읽어야지 읽어야지”하면서 읽지 않고 있던 책 중에 하나가 그래프턴의 책들이었는데, 최근 그래프턴 책 중 하나가 번역되어 바로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Worlds Made by Words가 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책 자체야 그래프턴 같은 대가가 쓴 작품인 만큼 매우 좋지만, 번역은 좀 많이 아쉽더라고요. 그래도 번역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르게 훑어보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역사”란 주제로 흥미로울 장은 2장 3장 4장 6장입니다. 2장에서는 알베르티가 다뤄지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Historia 용례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래프턴이 적절하게 분석하듯, 19세기 역사학자들은 알베르티의 Historia을 ‘역사화’, ‘역사적.. 더보기
다이고쿠 다케히코의 <정보사회의 철학> 꽤 괜찮은 책이다. 관련해서 본 책들 중 가장 종합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이 책의 저자. “일본저술가들의 전형적인 문제”를 극복해낸 캐릭터로 보인다. 내가 자주 주장하는 것이지만, 특정 문제에 대해서 전체를 다루겠다고 덤비면 아무 답도 내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이에 맞게 주제들을 단순화하는 게 필요하다.(보통 내가 “감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것) 그런데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단순화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카자와 신이치나 브뤼노 라투르 등이 항상 범하는 문제는, 단순화할 때 헛짓거리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되지 않게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근대가 비대칭성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더보기
<해피 아워>를 읽는 시간 의 방법: 을 읽기 시작하다 훌륭하다는 것이 곧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것은 물론 좋다. 하지만 모든 좋은 것이 훌륭한 것도 아니며, 훌륭한 것으로는 해낼 수 없는 좋은 것들이 있다. 훌륭한 글들은 멋지다. 조너선 스미스, 포콕, 에코의 글들을 읽고 경탄하지 않는 것은 문맹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훌륭한 글쟁이기에 쓸 수 없는 글이 있다. 의 방법이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대학 졸업 후 상업 영화의 조감독이 된 나는 학창 시절에 숱한 시간을 들여가며 영화나 음악을 접했던 경험이 촬영 현장 실무에서는 일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론 야단을 맞으며 ‘영화나 음악은 내게 별 보탬이 되지 않는구나’란 생각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인생에서 소중하다고 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