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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대상에 관련한 쪽글 (2): 메타화용론적 자아담론 게으름 때문에 이제야 다음 글을 쓰네요... 근대 시기에 생산된 담론 중 소설과 자기계발서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고 한 첫 번째 쪽글의 언급에 대한 보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과 자기계발서는 ‘윤리적 담론’이라고 불릴만합니다. 그러한 글들이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특정한 종류의 삶(‘삶의 형식’Lebensform이라고 불릴 만한)을 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저런 글들은 독자들은 특정한 종류의 (윤리적이든, 도덕적이든, 과학적이든) 주체로 형성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저런 글들이 저런 효과를 산출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저런 글들이 어떻게 저런 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지여야 합니다. 글을 읽는 것이 어떻게 저런 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지에 주목해.. 더보기
영화 속 대사에 대해서 단 한 명에게 보내는 편지 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습니다. 바로 “대사”가 그것입니다. 저번에 만났을 때 얘기 드렸듯, 전 대사를 중요시합니다. 물론 대사가 영화에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대사 없이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말 없이 전달하는 것이 더 특별할 수 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그렇죠. 물론 그의 영화에는 대사가 있습니다만, 그의 영화에서 대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본어를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영화들을 자막 없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영화에서 말해지는 것들은 모두 으레 해야만 하는 인사말 같은 것들이거든요. 그의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할 만한 것들은 모두 말없이, 혹은 말이 없는 덕분에 이루어집니다. 실제로 동아시아에서는 저런 식의 소통.. 더보기
<에브리팅,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어제는 을 봤습니다. 이걸 보니 에에올에 대한 제 불만이 어떤 것이었는지 좀 더 잘 이해되더군요. 일단 두 영화에 대한 제 불만은 작품 내적인 것이 아닙니다. 전 둘 다 재밌게 봤고, 굳이 흠잡고 싶진 않습니다. 뭐... 이만하면 되었지 뭘 더 바라겠어요. 그럼에도 전 좀 저 영화들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이고, 제 기준이 과도할 것일지라도 말이죠. 의 플랫처가 “Good Job”에 분개한 것처럼, 저도 좀 과도하게 반응하고 싶습니다. 영화 자체는 괜찮고,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문화 콘텐츠라는 상품일 수는 있어도 예술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세상 모든 영화가 예술일 필요가 있는 건 아닙니다. 예술일 이유가 없는 영화도 있고, 그런 영화도 충분히 의미가 있죠. 그런데 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