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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언어와 비극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하 기원)을 다 읽어갈 무렵, 박가분이 쓴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을 알게 되었다. 내가 댓글로 본 평은 굉장히 좋았고, '사상가로서의 고진'은 내가 고진의 텍스트를 읽는 이유였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초반에는 박가분의 내공에 압도되는 인상을 받았으며, 내가 기원에서 읽을 수 있던 것을 박가분 또한 그대로 짚고, 이를 몇몇 사례로 확장시키는 모습에서 매우 괜찮은 저작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거 웬걸 그 이후 저작으로 이론화를 하는 데 있어, 철학적 개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채 표현 그 자체만을 빌어와 논리를 전개하는 모습에 너무나 화가났다. 철학을 전개하는 데 있어, 꼭 정확한 독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애초에 --주의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원류 이론을.. 더보기
냉소주의에 대해서 블로그명 및 필명 때문에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고민해도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딱히 좋아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냉소'를 생각해냈다. 열정의 부재, 그것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냉소주의를 표방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얼마전에 일상용에게도 열심히 설명했지만, 현대의 냉소주의는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덫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여기서 현대의 냉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겠다.) 내가 꽤나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오타쿠에 대한 연구인데, 내가 오타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 그들이 내가 갖지 못하고 있는 열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비슷한 이유로 사회주의자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 더보기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읽고 두 책 모두 '젊은이'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꽤나 기대하고 보았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현대 일본의 20대에 대한 담론이라고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의외의 내용이 너무나도 많이 나왔다. 일본 인문과학서적에서 자주 제시하는 연구방식들을 모두 보여주려는듯 '젊은이' 담론사나 하나의 공동체로 묶을 수 없다는 둥의 다양성을 제시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젊은이'는 정의하기 까다로운 존재로서 20대로 한정지을 수도 없다. 저자는 본인의 책이 지루하니 하루에 한 장(章) 씩 읽으라고 하지만, 저자는 꽤나 농담조로 책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예컨대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조현준(趙顯峻, 25세, 서울시) 식의 표기를 하는데, 중간에 원피스를 예로 들면서 루피에게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