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홉스의 계약법론: "노상강도에게 약속한 몸값을 지불할 의무가 있는가?" —자연상태 속 자연법의 지위를 고찰하기 위한 서설 1.들어가면서 홉스는 악명 높은 철학자이다. 홉스는, 모두가 인정하는 추론 규칙을 통해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전제로부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을 도출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철학만큼 악명 높은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악명에 기여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은 절대왕정에 대한 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절대왕정에 대한 지지는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은 아니었다. 홉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절대왕정을 지지했으며, 그들의 절대왕정에 대한 지지는 무지와 불합리로 점철된 것만은 아니었다. 현대의 한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이는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는 가치 상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해.. 더보기 어떻게 하나의 사물이 진리가 될 수 있는가? 옛날에 쓴 글. 최근 관련된 책을 읽게 되어 생각이 났다. 생각난 김에 공유한다.─하이데거의 진리 개념에 비추어 본 예술 작품의 진리 1. 들어가면서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과 진리를, 진리와 예술을 함께 말한다. 하이데거는 심지어 예술 작품의 본질이 ‘진리사건Wahrheitsgeschehen’과 다르지 않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예술이나 예술 작품을 진리와 함께 말하는 것은 당연할 수가 없다. 예술 혹은 예술 작품이 진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 혹은 예술 작품이 진리와 연관이 있다고 말한 철학자가 하이데거 한 명뿐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러한 주장은 그렇게 기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하이데거가 예술 작품으로 거론한) 그리스 신전 같은 건축물이 어떤 의미에서 진리.. 더보기 루소는 소외를 말했는가? (확장) 과거 글(https://cynicaldog.tistory.com/241)을 확장한 것 『불평등 기원론』과 소외 개념의 기원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 독자여, 당신께서 이 마지막 저작을 관대하게 수용할지라도당신이 맞이하게 될 것은 나의 그림자뿐일 것입니다.나로 말하자면, 더 이상 나는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장 자크 루소,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 서문 中 1. 루소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과천과학관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장 루소’라는 약간의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즐거운 과학 교육을 설파하는 존재로 우리를 맞이하듯이, 루소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약간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곤 한다. “소외” 개념의 선구자로서의 루소 또한 이와 비슷하다. 루.. 더보기 루소와 영구평화라는 꿈 생-피에르의 발췌를 읽다보니 한 일화가 떠올랐다. 예전 연구실을 쓸 때의 일이다. 연구실을 같이 쓰지만 거의 오지 않기에 딱히 얘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한 대학원생이 방학인데도 자리에 있었다. 그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걸 보고서 궁금해서 무엇을 쓰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자신이 현상공모에 낼 원고를 쓰고 있다고 답하였다. 현상공모? 당시 나는 언어의 기원에 대한 18세기의 현상논문들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현상논문을 쓰고 있다는 말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팬더믹 시기에 백신을 공동구매하는) 코빅스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임을 밝히는 논문을 쓰고 있다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주제.. 더보기 <영원한 평화>를 위한 준비: 칸트는 사회계약론자인가? 에 대해서는 어디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일단은 지난 수업 때 @@ 샘께서 언급한 특징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샘께서는 이나 과 가 꽤나 다른 인상을 준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하셨습니다. 가 좀 더 “우리에게 친숙한” 칸트의 논의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쓰여 있는 반면, 이나 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저는 처음에 저 얘기를 들을 때, 어떤 이유에서 @@ 샘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를 다시 읽으며 @@ 샘께서 어떤 측면을 염두에 두고 저렇게 말씀하셨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하더군요. 바로 이러한 이해에서 시작해보겠습니다. 일단 오해(?)가 생긴 이유부터 얘기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저는 이전에 를 읽을 때, 부터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그니까 저는 를.. 더보기 이성의 욕망에 대해서 지난 주 수업 때 강성훈 샘께서 꽤나 중요한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이건 대중들에게 국한된 오류가 아니라 꽤나 많은 전공자들도 범하는 오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의를 기울어야한다고 말씀하셨죠.이성이 진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입니다.보통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되고, 그러다보니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그 결과가 참되거나 좋을 거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이는 플라톤의 주장이 아니며 그 자체로도 문제적인 주장입니다.탁월한(?) 범죄자가 되기 위해서도 이성은 필요합니다.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도 이성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니체말마따나 거짓말은 진실을 고하는 것보다 어려운, 기술이 필요한 과업입니다)이처럼 이성적인 능력을 요하는 악행이, 그 자체로 이성에 반한.. 더보기 헤겔의 국제관계론과 역사의 종말 §272-§274, §321-§360 이번 발제도 지난 발제 못지 않게 어려웠을 거 같더군요. 재미난 점은 두 발제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어렵다는 점일 겁니다. 지난 발제는 이나 , 의 앞 부분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해서 어려웠다면, 이번 발제는 논의되고 있는 내용들의 유의미성을 어떻게 포착해야하는지가 매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발제 부분에서 담긴 내용들의 유의미성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일 겁니다. 겉보기에[ 헤겔의 내치 및 국제 관계에 대한 논의는 조악해보입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등학생 정도가 배울 교과서적 내용보다 더 심도 깊진 않으면서도, 뭔가 좀 꼬여 있는 인상을 받을 겁니다. 상세함은 없고, 그러다보니 이거 참 통찰력 있네 싶은 내용은 딱.. 더보기 자유는 칸트 철학 체계 속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칸트의 이율배반이 이라는 기획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지난 번에 다뤘는데,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해보니 최근의 논의랑도 이어지는 것 같아 한 자 적어봅니다... 일단 원래 주제를 상기해보죠.이라는 기획은 이율배반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이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가지적이어야만 하는데, 세계를 가지적일 수 있게 만드는 결정론이 이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의 존재를 배제하기 때문입니다.문제는 이 이율배반의 해결입니다.(여기서의 “해결”이 꼭 저 모순을 해소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저러한 모순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하는 방식으로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니까요)저는 지난 글에서 은근슬쩍 헤겔을 언급했습니다.저 문제를 인식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헤겔의 생 개념 도입이었거든요.쿠라나가.. 더보기 칸트의 이율배반과 이성의 한계에 대한 단상 이 얘기가 왜 생각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침에 읽었던 에코의 책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거기서 에코는 paradoxa라는 단어 자체는 불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지 않았다고, 그렇기에 역설은 불가능성을 함축하는 이율배반과 구별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더군요. 아마도 이 언급 때문에 이율배반에 생각이 다다랗고 제가 아는 이율배반은 칸트의 이율배반 뿐이기에 칸트의 이율배반에 대해서 생각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고백하자면, 전 의 후반부를 읽지 않았고, 그래서 칸트가 이율배반을 에서 논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칸트가 제3 이율배반을 말했을 것만 같다고요. 은 인식을 정초하는 작업입니다. 칸트가 인식을 다루는 방식은 특별합니다. 그는 인.. 더보기 루소는 소외를 말했는가? 루소 말마따나 루소는 어디에나 있는 것 같습니다. 소외 개념을 말할 때도, 루소는 그것의 개념적 기원을 제공한 사상가로 말해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또 다시 루소 말마따나) 루소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루소는 ‘소외alienation’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루소는 ‘소외’라는 단어와 동음이의 관계에 놓여 있는 다른 단어를 말한 적 있습니다. 양도alienation가 그것입니다. 루소는 ‘양도’라는 단어를 “자기 자신을 양도한다”는 말과 함께 사용합니다. 자기 자신을 양도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소외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의 양도를 비판함으로써 루소는 소외 개념의 창시자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루소는 에서, 사회계약의 조건으.. 더보기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