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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철학의 차이

이하 게시판 복붙

 


 

 

아마도 많은 분들이 종교와 철학의 차이에 대해서 고민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종교와 철학을 비교한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종교와 철학을 왜 비교할까요?

20세기 이후 과학과 종교는 많이 비교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 둘이 비교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둘을 대립시키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것으로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요. 즉, 얼핏보면 대척되어도, 뭔가 관련이 있으니 비교하는 것이라는 소리입니다.

 

종교와 철학의 관계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이 둘을 비교하려는 것부터, 무엇인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둘을 비교할 때, 많이들 실수하는 것 중 하나는 둘을 언어적으로 구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어적 구별은 그냥 말을 붙여서 구별한다는 걸 가리킵니다.

철학은 합리적이고, 종교는 비합리적이다 따위지요.

이건 철학은 네모나고, 종교는 둥글어서 구별된다는 거랑 비슷한 구별법입니다.

해당 속성이 담보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몇몇 말을 붙인다고 구별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다른 하나의 실수는 종교를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가 기독교다보니, 철학과 종교를 비교할 때, 사실상 비교되는 것은 철학과 기독교이지 종교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는 이러이러한데, 철학은 그렇지 않으니 둘은 다르다는 것은, 최홍만과 아베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르다는 소리랑 비슷합니다.

기독교가 종교의 대표가 될 이유가 있을지라도, 적어도 기독교의 개성을 가지고 종교 전체를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일단 종교가 무엇이냐고 하면, 애매한데, 신성한 것과 관계 맺는 것들을 가리킨다는 것이 무난한 답일 듯합니다.

그런데 이 신성한 것의 정체는 특정한 신(들)일 수도 있고, 영웅일 수도 있고, “선”, “좋음”, “정의” 일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이러한 것들과 관계 맺는 기술인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거래기술 비슷한 것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약간 원시적인 종교들은 우리가 오늘날 보는 거랑 비슷했습니다. 힘이 센 신성한 것이 있고, 그것과 거래를 트게 하는 사제가 있는 것이지요. 이 신과 관계를 맺으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집니다.(소원성취) 당연히도 소원이 잘 안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그 신을 모시지 않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원시적 종교는 강요가 없습니다. 대신 안 믿으면 보복하는 신들이 있긴 했지요.(보통 흑마법이 이쪽 계통입니다) 또한 교리가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책을 중요시한 것은 유대교의 특징이지 종교 일반의 특징이 아닙니다. 교리를 문서화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고요. 이런 원시 종교들을 종교A라고 전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이런 종교A랑 다르죠. 문명이 탄생하고 나서 등장한 고등종교들은 소원성치와 상관없이 믿어지곤 했습니다. 종교에서 특정한 세계관을 제시하고, 그것의 합리성에 입각해서 사람들이 그 종교를 믿었지요. 소원성치가 중요한 경우도 있겠지만(지금도 소원성취를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런 것을 거부하는 종교들도 탄생합니다. 이런 종교는 신통력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종교가 가진 교리를 통해 설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리를 가지고 설득하려면 교리가 합당해야하지요. 정교한 세계관, 인간 삶의 의미, 구체적인 삶의 지침 등을 담고 있어야합니다. 이런 종교가 탄생하면, 하나의 문명을 이룰 수 있지요. 이런 믿음을 토대로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도덕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이런 종교를 종교B라고 부르죠.

 

기독교는 종교B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철학과 비슷해 보입니다. 세계관, 인간 삶의 의미,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철학이니까요. 실제로 그렇기에 둘을 구별하지 않기도 햇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을 철학 공동체(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같은)라고 부르곤 했지요.

 

그렇다면 철학과 종교는 어떻게 구별되는 걸까요?

유럽의 지성사에서 철학이 종교로부터 독립하면서 구별이 시작됩니다.

정확히는 광신과 올바른 신앙이 구별되기 시작하지요.

광신과 올바른 신앙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냐로 구별되었습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 광신이고, 다른 믿음을 용인하는 관용적 태도를 갖추면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이지요.

그 다음으로 철학이 떨어져 나옵니다. 자연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핵심은 믿음 내용에서의 선택입니다.

기독교를 자신의 선택으로 믿거나 안 믿을 수 있고, 여러 파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믿는 것이 기독교를 믿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특정한 교리를 갖추고 있고, 그러한 교리를 믿지 않으면 기독교를 믿는 것이 되지 않지요.

반면 철학은 교리가 없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사실에 가장 부합하는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주관적인 종교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개인이 만들어내는 종교이고, 그게 핵심인 종교이지요.

반면 일반 종교는 객관적입니다.

묶음으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만든 것이면 안 됩니다.(이게 맹목적인 것은 아닙니다. 해당 종교 안에서 비판하여 그 종교를 개혁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모두가 철학을 한다.”, “그는 그 자신의 철학을 갖고 있다.”는 관용어들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계 속의 의미를 찾되, 자신이 보기에 가장 합당한 것을 따르고 있다면 그것은 철학인 것이지요.

 

뭐 이런 관점에서보면 특정 주의(플라톤주의, 칸트주의, 헤겔주의 등)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문제가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를 따르는 것은,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서 받아들이는데, 이 철학자가 이런 주장을 했으니, 이런 의미에서 난 이 사람과 비슷하다” 정도를 뜻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특정 철학자에게 너무 환상을 갖지 마세요. 그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철학자는 계시 받은 예언자가 아니에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특정 주장이나, 특정 방법만 받아들여도 됩니다. 한 철학자의 철학 전체를 받아들이려고 하면 그건 종교가 됩니다.

요약하자면 이러합니다.

합리성, 비판가능성, 맹목성이 기준이 아니라, 믿음들을 묶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으면,

특정 입장이 옳아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것이 합당하기에 믿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신성한 것과 관계 맺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