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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사 및 학문사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학의 역사

이하 게시판 복붙

 


 

 

***에 글을 올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민망하네요.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긴 한데, 이제 한 학기 수업도 끝나가고, 쪽 글 제출도 할 일이 없으니 후기 비슷하게 최근 정리한 생각들을 공유해봅니다.

 

쓸데없이 길어질 듯하니 적당히 넘기셔도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러합니다.

인류학의 기원은 제국주의적인 폭력에 불과했는가?”라고 묻는 것이고, 저는 여기에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나름의 방법으로 인류학을 옹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뭐 이러한 옹호가 인류학에 필요하다거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냥 저 자신의 이해가 그렇다는 소리입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과 답은 지난 시간 끝날 때즈음 헌익 샘께서 말씀하신 주제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학의 기원을 이루는 연구들은 자연과 인간을 괴리시키기만 한 것이 아니고, 그 상호작용에 주목했으며, 그 상호작용의 다양한 형식들을 고찰함으로써 더욱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는 그런 것이지요. 저 또한 이에 동의하고, 저는 그러한 유산이 인류학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제 것으로 열심히 전유(혹은 약탈)하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최근 주목한 것은 여행기에서 민족지의 이행입니다. 제가 이 문제를 참고하기 위해 사용한 책은 메리 루이스 프랙의 <제국의 시선>이란 책인데, 프랫은 민족지적 기술에서 제국주의적 폭력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뭐 프랫 본인 자체가 스페인-포르투갈어 전공이고, 라틴 아메리카의 담론들을 중심으로 탈식민주의 조류를 발전시킨 양반이니 당연히 예상되는 관점이긴 한데, 이 사람이 뻔한 소리를 뻔하지 않게, 굉장히 수준 높게 재구성해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에 주목하여 적으로 상정하고 싶습니다.

 

프랫이 <제국의 시선>에서 제공하는 매우 재미난 개념은 “anti-conquest”일겁니다.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이를 반정복이라고 번역했지요. 여기서 anti는 좀 복합적인 의미인데, anti에는 무엇에 반대한다는 의미도 있고, 무엇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대체해낸다는 뜻도 있기 때문이지요.(가톨릭의 anti-종교개혁, 니체의 anti-그리스도 모두 후자의 의미입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최근 대응종교개혁이라는 역어를 선호하는 것은 바로 이 의미 때문이지요. 니체는 안티의 그리스적 의미라면서 안티크리스트의 뜻을 직접 설명하기도 합니다) 프랫은 여행자가 모험을 떠나 고난을 겪고 기이한 것들을 보고 돌아오는 기존의 여행기가 과학적인 글쓰기로 변환하는 것을 분석해내는데(프랫은 문학자 출신답게 문체분석을 통해 이를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그러한 변환 속에서 등장하는 과학적 여행자의 인도주의적인 시선이 제국주의와 공명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때문에 총칼의 정복을 반대하며, 타자들을 보호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다른 형태의 정복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anti-정복이라는 것이지요. 반대하긴 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복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옛 정복을 새 정복으로 대체하는 정복 반대라는 것이지요.

 

좀 더 구체적인 지점들을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랫은 일단 이러한 과학적 여행기가 전지구적 학문 프로젝트, 전지구적 의식과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유럽적인 학문이 전세계적으로 통용됨을 보여주는 작업의 일환인 것이지요.(뭐 이런 특징은 뒤에서 제가 다 반박할 겁니다) 이것이 학문적 기획의 일부이기에 실제로 풍파를 겪는 항해자들, 실제로 현지에서 활동하는 인간들보다 이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여행자가 우월하고, 또한 이러한 여행기를 읽는 것이 완벽한 신사”(다니엘 디포의 표현)에 해당된다는 독특한 의식을 프랫은 잘 포착해냅니다. 프랫은 이러한 배후의 의식이 구체적인 현장 서술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 그것들의 변천을 유형화해서 보여줍니다.

 

프랫은 초기의 반-여행기 저작이 문화중심적이었다고 지적하고, 린네를 계기로 이후의 작업들이 자연주의적으로 변신했다고 주장합니다.

 

문화중심적인 학문적 여행기의 대표작으로 프랫은 페터 콜브Peter Kolb<희망봉의 현재 상태The Present State of the Cape of Good Hope> (독일 1719)을 제시합니다. 콜브의 저작에서 아프리카의 야만 부족들은 문명인으로 그려집니다. 콜브는 반복해서 그들 또한 문명인임을 주장하지요. 콜브는 아프리카 부족민들이 버터를 생산하여 유럽인들에게 판매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유럽인은 생산자, 비유럽인들은 소비자라는 구도를 넘어서 그들 또한 생산을 할 능력이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러한 생산-소비 구도에서 부족민들은 버터를 소비하지 않는데, 그들은 버터라는 식품이 위생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콜브는 실제로 버터가 생산되는 과정을 재기술하면서 익숙함에서 벗어나 버터 생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이것들이 비위생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문명과 야만의 구도를 뒤집을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위생의식이 있는 문명인을 보여줍니다. 프랫은 이러한 콜브의 구도에 대해서, 그것은 분명 인도주의적이고 정복을 비판하는 의식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서양인의 관점에서 뒤집어 해석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콜브는 자신이 기술하는 부족민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데, 이는 그가 유럽인에게 그들이 유럽인과 같은 종류의 문명을 갖고 있다고 설득하려 하고 있으며,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뭐가 되었든 타자는 양태만 다르지 유럽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프랫은 지적합니다.

 

프랫이 콜브에게 좀 트집을 잡는 것 같아 보이는 구석이 있긴 하지요. 그래도 콜브 이후의 자연주의적 서술을 비판하는 것은 더욱 혹독하기 때문에 이만하면 양반이란 생각도 듭니다. 콜브 이후의 서술의 대표로 프랫은 세 가지 여행기-민족지를 제시합니다. 안데르스 스파르만Anders Sparman<희망봉 항해Voyage to the Cape of Good Hope> (스웨덴 1783), 윌리엄 패터슨William Paterson<호텐토트와 카피르의 영토를 향한 네 번의 항해와 그에 대한 서사Narrative of Four Voyages in the Land of the Hottentots and the Kaffirs> (영국 1789), 존 배로John Barrow<남아프리카 내륙 여행들Travels into the Interior of Southern Africa> (영국 1801)이지요. 이 세 작품의 차이 또한 중요하지만 저는 이것을 하나로 묶어 요약하겠습니다. 프랫은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여행기의 환상은 배제되었지만, 바로 이러한 환상을 배제하는 과정 속에서 특정한 관점을 객관적 관점으로 치환하는 독특한 의식이 드러나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콜브는 비록 그들을 유럽적으로 이해했지만, 그들을 보는 시선 또한 하나의 인간이고, 바로 이 인간의 관점에서 그들의 활동에 주목했던 반면, 이후의 저작들은 저자 자신을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한 추상적 관찰자라는 아주 독특한 관점에서 그려내고, 그러한 관점에서 대상들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여행 속에서 자신들이 느낄 수 있는 것, 주목할 만한 정치적 사건들은 배제하고, “자연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수적인 언어(측량의 언어), 종의 언어(이탤릭체로 쓰여진 종의 언어의 범람), 광물과 시간의 언어(지질학의 언어), 자연경제의 언어(종과 생산의 언어)로 대상들을 그려냅니다. 이렇게 다른 인간들자연화된다는 것이지요.

 

분명히 그들을 관찰하는 사람은 인간입니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느끼는 것이 많겠지요. 전통적인 여행기에서는 바로 이 느낌들이 강조되었지만 이것들은 철저히 배제되기 시작합니다. 매우 객관적인(혹은 매우 객관적이라고 주장되는) 언어로 이동시에 목격될 수 있는 풍경을 기술하고, 그 속에서 사는 인간들 또한 풍경처럼 묘사됩니다.(프랫은 이러한 기술법을 ‘bodyscape’란 단어로 가리킵니다) 프랫은 이러한 기술법에서 해당 부족의 정치성과, 그들의 문화 속에서 자연물이 하는 상징적 역할이 중요시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러한 정치적, 문화적, 상징적 행위들은 생산물 제작으로, 그들 개개인의 개성은 해당 민족의 일반형으로 환원(이 부분은 좀 자세히 설명하면 좋은데 아쉽네요. 개개인을 ‘he’‘they’로 묘사하며, 개개인의 고유함을 유형의 다양한 조합으로 환원시키고 있음을 분석해보입니다)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환원은 그들의 고유한 삶의 형태를 자연적 언어, 객관적 언어를 통해 분석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자연적이고 객관적인 것은(객관적은 어원상 대상적이지요) 얼마든 변경 가능한 대상이 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프랫은 반복해서 이러한 기술들이 여행되는 사람들”(프랫은 여행자에 대비되는 travelees를 강조합니다)처분가능한disponible” 것으로 다룬다고 지적합니다.(disponible은 이후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처분가능함은 개선improving 가능성으로, 그곳을 유용한 곳으로 바꾸고, 그 사람들을 유용한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 프랫의 기본 구도입니다.

 

프랫의 정리를 다시 요약하자면, 그들을 단순히 타자화했다고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을 어떤 식으로 타자화하는지가 논의의 핵심으로 들어오는데, 프랫은 여기서 인도주의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방식의, 자연적인, 과학적인 언어가, 그 자체로는 반남성주의적이고 반정복적이지만, 결국에는 제국주의와 연관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랫은 이러한 것들이 단순하지 않고, 여려 유형으로 발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식민주의적이진 않다고 지적하는 것이지요.(한 가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첨언하자면 프랫은 좋은 사람입니다. 제 논의를 위해서 약간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것입니다. 이런 단순화 속에서 프랫의 통찰은 빛나고요... 제 논의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구도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프랫의 이러한 구도 자체에 반대하는데, 이러한 반대는 보통 학계에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구도와 같습니다. 오리엔탈리즘 도식에서는 타자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이 타자중심이라기보다는 자기중심적 사고, 자기에게 필요한 무엇을 타자에게 덮어씌우는 사고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대체로 사이드의 성과는 여러 모로 인정해주지만 이걸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역사학자들은 생각하고 있고, 대체로 타자화가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에 얼마나 중요한 기여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이드를 비판합니다. , 타자가 타자에 대립되는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생산하게 만드는지가 오리엔탈리즘과 오리엔탈리즘이 아닌 것을 판가름하는 기준이라는 것이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합니다. 타자를 인식하는 일이 그저 환상을 유지하면서 유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리엔탈리즘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절절한 자기비판으로 이어지고, 자신에 대한 이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뭐 이런 논의를 이끌어간 매우 좋은 역사학 책으로는 앤서니 그래프턴의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New Worlds, Ancient Texts>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16세기의 지리상의 발견이 단순히 타자들을 경이로운 것들, 세계의 놀라움을 갖고 있는 유희거리라고 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믿고 있던 진리가 문제적이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이 심각한 난점을 갖고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몇몇 고대의 텍스트들이 권위의 원천으로 작동할 수 있었던 시대가 종말하게 된 것이지요. 그 속에서 유럽인들은 장난이나 재미로 외부를 탐험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지요.

 

프랫에 대한 저의 비판도 비슷한 관점이고, 저 혼자만의 생각도 아닌 듯합니다. Joan-Pau Rubies<Travel and Ethnology in the Renaissance: South India Through European Eyes 1250-1625> 또한 저와 비슷한 입장에서 여행기를 다시 검토하고 있습니다.

 

먼저 기본 골자를 설명하자면 이러합니다.

 

프랫이 제시하는 저러한 타자화 방식은 단순히 타자에게 적용되기만 했던 것이 아닙니다. 유럽 본토에도 적용되는 도식이었고, 자기 자신들에게도 적용되는 도식이었지요. 여행기 속에서 미개한 부족들을 이상화하는 것은 고결한 야만인신화를 단순히 반복-재생산 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전 나폴리언 섀그넌의 문화인류학에 대한 비판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고귀한 야만인은 단순히 (부정적 의미에서의) 신화는 아닙니다. 실제로 유럽인들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자신들을 이해하는 틀로서 외부와 자신을 비교한 것이거든요.(이 점에서 근대는 대칭성을 무시한다는 나카자와 신이치나 라투르의 주장들은 무시해도 좋습니다. 근대는 원래부터 대수화였고, 이것이 대칭성의 끝이지요.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의례의 비대칭성과 대칭성의 조합을 그리도 잘 설명해놓고선 비슷한 늪에 빠졌던데 왜 그런 실수를 똑같이 범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약간 전문적인 얘기를 좀 섞어 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좋은 사회는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정체론에 기초해서 언어화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라 정치체제는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으로 구별되고, 이러한 세 종류의 정체를 혼합한 혼합정체가 가장 적절하며, 이것의 이상적인 형태가 공화정체가 되지요. 공화정체는 혼합정체를 뜻하기도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애매한 서술에 따라 민주정체와 뭔가 상관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보통 민주정체는 그 자체로 불가능한, 무질서(아나키) 상태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그것이 시민들의 덕에 의해서 탐욕이 억제되면, , 절제라는 미덕에 의해 조정이 되면, 민주정-공화정체가 이상적인 공화정체가 된다는 것이지요. 다만 유럽인들이 이러한 이상국가를 꿈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크나 큰 방해물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1) 절제가 미덕이기에는 이미 상업이 너무 발전했다는 현실 2) 공화국은 오직 소국에서만 가능한데, 거대 군주정 국가들이 즐비한 유럽에서 소국은 군주정 국가들에게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이 두 현실적 조건 때문에 이상국가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상업은 올바른 사회를 붕괴시키는 타락의 근원이지만, 이는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상업의 풍요는 거부하기에는 너무 큰 유혹이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미덕을 유지할 수 있는 거대 공화국이 가능했으면 하는 소망은 지속되었고, 어떻게 저런 욕망을 거부할 수 있냐는 중요한 물음이었습니다. 일단 두 가지 문제 모두 18세기가 끝날 때까지 공식적으로 해결되진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상황에서 미개인들이 가진 덕성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상업을 통해 타락하지 않은 인간 상태가 사실임을 보여주는 증거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런 미덕과 현대modern”라는 현실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지요. 뭐 그래서 비유럽 사회들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서 유럽인들은 실제로 관심이 컸습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중요했지요. 그들의 눈에 보기에는 신에 대한 호소 없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적절한 형태로 운영되는 거대 공화국(왕이 있는 혼합정체)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거든요.(계몽이 중국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들은 뚝배기가 깨져야 마땅하지만, 유럽의 지식인들이 꽤나 진지하게 중국을 이상국가의 한 가능성으로 검토한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콜브의 입장을 재검토해보지요. 콜브는 비유럽인을 유럽적인 방식으로 단순히 대체한 것이 아닙니다. 유럽인들에게 종교는 기독교였고, 기독교만이 도덕의 원천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비기독교도들은 비도덕적이어야합니다. 그들은 도덕도 모르는 자들인 것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외국과 교역을 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 또한 도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났지요. 이때 유럽인들은 진지하게 종교와 도덕이 무엇인지를 검토해야만 했습니다. 즉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도덕적인 삶이 가능하다면 도대체 기독교를 믿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따져 물어야 했지요. 17세기에 스피노자가 악명 높았던 것은 단순히 무신론자여서가 아니라 성인 같은 삶을 사는 무신론자였기 때문이었고, 여기서 발생하는 인지부조화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과 비슷하지요. 그러니 콜브가 아프리카 부족들 또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유럽의 신앙과 비교한 것은, 한편으로는 기독교 중심의 사고를 비판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가치의 원천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때문에 그들을 유럽인의 관점, 즉 종교로 분석한 것은, 그들 또한 가치 창출의 원천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지, 단순히 익숙한 구도로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진지하게 기독교를 객관해서 바라보게 만들고, 종교와 도덕을 분리시키고, 종파와 종교를 분리시키는 작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지요.

 

비슷한 방식으로 자연주의적 민족지 작가들을 검토하자면 이러합니다. 프랫은 그들이 사람들을 disponible하게 바라보았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럽인들은 자기 자신을 disponible하게 바라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재인식의 가능성을 하나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disponibilité는 한 시대의 미덕이기도 한 표현인 것이지요. 여기서 disponible하다는 것은 처분가능하다는 매우 삭막한 단어가 아닙니다. 이것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여유가 있다는 것을, 자기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오늘날로 치자면 flex할 수 있는 힘, flexibility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지요) 즉 자신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미덕으로 삼은 것이고, 너무 열광enthusiasm/passion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소위 조용한 열정을 미덕으로 삼는 계몽의 덕목이기도 했지요.(오늘날로 치면 과몰입하지 말자는 소리지요) , 그러한 자연주의적 서술은 타자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적용된 것이고, 타자의 삶을 살면서 관찰된 것은 자신을 분석하는 데에도 적용되었고, 적용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대칭적 사고였던 것이지요.

 

좀 자세한 것은 역시나 정치 언어에서 드러나지요.

 

프랫은 부족민들이 문화에서 대마大麻가 갖는 상징적 지위를 무시하고, 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본 스파르만을 비판했지만, 이것은 그들의 상징적 실천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스파르만이 생산의 관점에서 본 것은 오히려 매우 학술적이며, 당대 최신의 국가 이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얼마 전 맑스에 대한 발표에서 초기 맑스의 생태학적 관점, 특히 metabolism이 강조되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저도 맑스가 신진대사(소화)”의 언어를 쓴다는 것은 몰랐는데, 듣고 나니 매우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생각나더군요.

 

아까 큰 공화국이 가능한가가 당대의 큰 물음 중 하나였다는 것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현실적으로 성립 가능하면서도 붕괴하지 않는 거대 공화국을 기획하는 시도가 여러 가지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중농주의입니다.

 

중농주의는 보통 경제사상으로 알려져 있고, 중상주의와 대비되는 특성 때문에 중농주의라고 번역되지만 실제의 표현은 phisiocracy입니다. 직역하자면 자연정체가 되는 것이지요. 중농주의는 신체와 국가를 비유하는 전통적인 관점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국가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과학적으로 탐구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된 국가, 이러한 방식으로 통치되는 국가가 진정으로 자연적인국가라고 주장했지요. 이러한 언어에서는 개인의 덕성보다 문화-제도가 더욱 중요하기에, 크기와 상관없이 그것의 작동 가능성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연정체론자들은 잘 알려져있듯이 농업을 중시하였습니다. 이는 농업이 땅과 맺는 관계 때문에 강조된 것이지요. 국가는 영토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토의 경계를 칼같이 설정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언제나 그 경계는 모호합니다. 이럴 때 농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땅과 관계 맺는 활동이었기 때문이지요. , 영토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해당 땅과 매우 조직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생산의 원천이 농업이어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자연에 대한 이해 때문에서라도 중농주의는 농업을 중시한 것이지요. 자연은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산하며 자신을 유지하는데 국가 또한 마찬가지이고, 유기체에게 섭취와 소화 에너지 생산에 해당되는 것이 국가에게는 농업 활동일 테니까요. 중농주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사회성 이론에 기초해서 프랑스에서 성립된 것인데, 나오자마자 독일로도 수입되었고 1760년대 프로이센 지식인들 사이에서 국가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논쟁하는 핫이슈를 만들기도 하였지요. 특히 유스투스 뫼저Justus Möse는 이에 기반한 매우 정밀한 정치언어를 개발합니다. 뭐 딴 건 다 필요없고 뫼저의 생태주의적 관점만 논의하면 이러합니다. 농업이 국가라는 유기체의 ()생산의 원천입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진정한 원천이되는 사회의 핵, 주권은 무엇일까요? 뫼저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활동 사회의 원천이기에 주권은 자연-인간 공동체에 속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차적으로 농민들의 정치적 참여권을 주장했지만, 사실 이러한 권리는 농민보고 마음대로 결정해라가 아니라, 땅과 농민 사이의 질서를 알 만한 이들이 이들이니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농민은 개체가 아니라 과거부터 미래까지 땅과 상호작용하며 살 인간들의 집합으로서의 농민을 대리하는 한 존재이고, 농민은 자기의 의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호작용을 고려해서 농민-땅 공동체의 대변인으로서 정치를 행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자연주의적 민족지 기술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프랫은 그들의 기술에서 서사narrative에 역사history가 배제되어 있다고 말하며, 역사를 유럽인의 것으로 만들고 그들에게서 역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오히려 이상적인 정치적 형태를 그들에게서 발견하고 있고, 그들이 역사 없이살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땅과 완벽한 상호작용의 질서를 이룩해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자연환경에서 개선가능성을 찾으면 상업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이러한 구도에서 볼 때 꽤나 위험을 초래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농주의의 언어에서 상업은 자연의 세계에서처럼 다양한 것들이 하나를 이루면 만들어내는 풍요로움과 조화를 가리킬 수 있지요. 때문에 그들은 그들을 타락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서술을 한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 환상을 부여하고, 뽑아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유럽과 다른 고유한 질서로서 서로 교환할 것을 찾아 서로가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속에서 이를 탐구했던 것입니다. 중상주의적인 폐쇄적 국제 무역을 비판하고 특화에 입각한 비교우위적 국제 무역론이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지요. 그들이 영원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빠르게 변하해서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모를 유럽인들에게 있어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었고,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사회를 유지하는지를 파악해서 유럽 또한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저 저자들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인간을 풍경화bodyscape한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지요. 풍경 속의 인간을 그리되, 그 둘의 경계를 그리려고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또한 그것은 타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적용되는, 인간이기에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새로운 이론들로 자신과 타자를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서 등장한 실험이었던 것이지요. 또한 저런 역사 없음이 단순 역사 없음도 아닙니다. 독일에서는 바로 저러한 농기구들, 생산의 도구들을 기념물Monument”로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여기서 기념물은 전통적으로 인간 정신의 실현이라고 여겨졌던 유적, 기념비, 신전, 궁전을 넘어서 생산을 하는 것들이 기억될 필요가 있고, 정신적이며, 역사적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있는 것이지요. 저것은 저들에게서 역사를 박탈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던 것입니다.

 

해당 텍스트들은 제가 보지 못해서 분석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20세기의 민족자결주의는 저러한 정신에 입각해서 발전한 사상입니다. 민족자결주의가 제국주의의 가면에 불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의 전부가 위선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자연법학자들은 민족자결주의와 자유무역을 통해서 세력균형에 입각한 권력경쟁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민족자결주의는 현재 국가에 속하지 못하고 있거나, 원치 않는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포착할 수 있는 동질성에 입각해서 하나의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언어였지요.(3.1.운동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지요) 윌슨이 저걸 진지하게 믿었고, 실제로 대선 연설에서도 저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몽테스키외의 언어에 따라 미국을 만들었지만, 이제 몽테스키외는 과거의 사상가이고, 현대의 과학에 입각해서, 다위니즘에 입각해서 국제적인 평화가 가능한 정치를 이룩해야하며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연설했었지요.(미국 헌법을 비판하는 것이 오늘날 미대선에서 얼마나 끔직한 일인지를 생각하면 이것이 통했다는 것은 꽤나 무시하지 못할 일입니다)

 

결국 18세기 말의 민족지 기술자들은 자신들의 앎을 진지하게 활용했으며, 이들의 보고들을 토대로 유럽 안의 학자들은 좀 더 많은 국가를 포섭할 수 있는 국제 질서를 기획할 수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진리가 타자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포기해야한다고 주장했고, 타자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면 유럽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었던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타자를 존중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무의미한 노력도 아니었지요. 뭐 좋은 것만 있지는 않겠지만요.

 

이번 리딩인 헌익 샘의 <애니미즘의 역사>에서도 매우 비슷한 통찰이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자연종교natural religion를 이해하려고 한 애니미즘은 인간의 근본적인 사회성을 최대한 일반론적으로 전개하려고 한 시도로 보이며, 뒤르켐이 spirit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에게는 취향 국가-민족에게는 espirit, 시대에게는 genie가 있다는 몽테스키외의 논의를 현대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레비-브륄이 야만 정신 속에서 탐구한 정신성, “참여20세기에 핫해진 연상적 사유, 은유적 사유와 공명하고 있고, “참여는 단순히 미개사회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적용될 수 있고, 적용되어야만 하는 개념으로서 재등장하지요.(저는 여기서 데이비드 봄의 형이상학적 사회론, 들뢰즈의 분열병적 사유 예찬, 체험과 구조를 결합한 쿤을 비롯한 포스트 구조주의 조류들, 참여라는 의식적으로 파악되기 어려운 정신에 의해 사회가 지탱된다는 그라이스와 마이클 폴라니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은 모두 인류학에 빚진 것이지요.

 

고결한 야만인은 루소의 자연인과 비슷하지요. 루소는 자연상태가 사실이겠냐는 비판에 대해서 사실은 중요치 않고 우리가 자연인을 마음 속에 그릴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답합니다. 고결한 야만인이 낭만화되고 밑도 끝도 없는 현대 비판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근대성과 근대성이 아닌 것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관계 맺기의 형식을 탐구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도입될 필요가 있겠지요.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불평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불평등 기원론>의 논의를 무시하겠다고 선언합니다(불어에서 모르겠다관심없다는 소리기도 합니다. 루소는 <불평등 기원론>에서 <사회계약론>을 무시하자고 말한 것이지요). 하지만 <불평등 기원론>이 없었다면, 자연인을 되찾아 현대에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은 상상 조차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루소가 설사 <사회계약론>을 실천이 아닌 절망을 위해 저술했을지라도(루소는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부정했습니다. 아까 말한 상업과 큰 국가들 사이에서의 생존 불가능성을 근거로 말이죠), 적어도 이후 세대들이 고결한 문명인”, “고결한 현대인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루소 덕분이었죠. 또한 고결한 야만인에 대한 꿈과 그들을 찾아 나서고, 연구한 학자들의 실천 덕분이었고요.(희망 또한 가능성이 있을 때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블로흐가 1000페이지를 쏟아 희망의 가능성을 얘기한 것은 바보짓이 아닙니다)

 

끝낼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네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류학사는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늘이라기보다는 근대화, 산업화, 자본화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의 역사란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러한 시도들이 좀 더 빛을 발하려면 유럽 내부, 특히 학적 언어들을 구성한 지성사적, 학술사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행히 이 분야를 Rubies가 해주고 있고, 저 양반이 몇 년 전부터 계몽과 여행기-민족지의 결합을 다룬 연구서 출간을 예고하고 있다니 다행인 거 같네요. 그 책이 나오면 이를 참고해서 제대로 연구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