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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회 담론, 기호학, 범주 문제, 인류학, 학문론의 기원

이하 카톡 복붙


 

다들 즐거운 한가위 보내고 계신가요?

요즘 공부하는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고, 공유하고 싶은 흥미로운 사실관계들이 많이 누적되기도 해서 글을 한번 써봤습니다.

정리라고 하기에는 산만한 글이고 그냥 흥미를 끌 만한 요소들을 배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가장 재밌게 본 책은 콘의 <숲은 생각한다>였습니다.(저는 갠적으로 <어떻게 숲처럼 생각할까>정도의 제목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어 제목에 불만은 1도 없습니다) 이 책을 인류학과 수업에서 읽게 된 것도 있고, 인류학과 수업에서 핵심 주제가 바로 사회에 대한 초기 언어들을 이해하는 것이었기에 저는 <숲은 생각한다>를 통해 사회 담론의 기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19세기부터 시작된 사회 담론은 이전의 언어들을 재배치한 새로운 성과물입니다. 그전까지 “자연vs문화”, “야만vs문명”, “고대vs현대”, “신화vs학문”, “법 이전vs법 이후”, “국가 이전vs국가 이후”란 구도는 있었지만, 이것들을 통합적으로, 그러면서도 일관적으로 설명하는 언어로서 사회 담론이 창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담론의 가장 중요한 핵은 바로 “사고(생각)”, “사고 능력”이었습니다. 생각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을 밑바탕에 깔고, 생각의 본질을 규정하고, 바로 이 생각함이라는 능력을 토대로 다양한 집단들의 공통성과 다양성을 설명하는 것이 사회 담론이었기 때문이죠. 생각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집단 속에서 “생각”이 어떻게 배치되는지/하는지를 토대로 집단들의 변형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담론의 장점은 일원론과 다원론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류의 보편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실제적 삶의 다양함을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또한 이러한 차이들을 평가할 수 있는 복잡한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장점을 갖고 있었지요. 정신은 하나이지만 이것이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바로 이 “정신은 하나다”라는 테제를 통해, 인류의 단일성과 합리적인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장점을 가진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접근법은 단순히 모든 것은 평등하단 생각을 함축하진 않는데, 바로 “양식style”이라는 개념을 가지고서, 정신의 발현 양식(조형의지의 발현으로서의 시대양식)의 이념형을 토대로 비교평가가 가능했기 때문이죠. 즉 어떤 양태로 시작을 하면, 그것의 끝점(완성)을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규범을 포기하지 않고 서술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논의들을 염두에 두고서 퍼스를 연구하던 중 매우 흥미로운 지점들이 보여서 이것을 공유하려고 합니다.(사실 이것이 오늘 주제입니다) 콘이 퍼스 기호학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한 것도 있고, 이곳 저곳에서 퍼스의 맥락을 좀 찾아보던 중 워낙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고, 시대 정신의 발현이라는 테마를 너무 잘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라 요 인물에 대해 좀 더 연구할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단 퍼스는 굉장히 개성적인 인물인 것처럼 여겨지곤 하는데, 이것은 퍼스에 대한 오독입니다. 퍼스는 “시대정신” 매우 잘 따르는 인물이고, 그것 자체를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사유”, “사유 능력”을 다루는데, 이것들을 분류하고, 사회 속에 어떻게 배치하는지를 고민하였고, 이런 점에서 제가 자주 언급하는 “학문론” 맥락을 매우 충실히 잘 따르는 인물입니다.(배치 문제를 다루는 학문론은 19세기의 전형입니다)

 

퍼스뿐만 아니라 당대의 사회 담론가들은 논리적 사고와 유추적 사고를 구별하고 이 둘을 배치하는 것에 신경을 썼습니다. 전자는 좀 더 학적인, 논리적인, 합리적인, 학문적인 사고법이고, 후자는 충동에 기초한, 연상과 유추, 성과 성격, 정신병적 사고이지요. 몇몇 인물들은 이 두 유형의 사고 중 한 사고를 우선시하고, 다른 사고를 무시하거나 환원하려고 하곤 했지만, 많은 인물들은 이 두 사고를 사회 속 배치의 문제로 생각했고, 퍼스도 배치의 문제에 천착한 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이 배치의 문제에 있어서 좀 더 논리적인 사고를 다루는 생각에 대해 이래저래 얘기해보고 싶네요.(사실 후자에 대한 퍼스의 견해는 제가 아직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배치된 결과물은 알겠는데, 중심적 동력을 분석하는 것은 못 봤습니다)

 

일단 퍼스는 논리학과 수학의 문제에 대해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당대 미국에서는 웨이틀린의 <논리 원론>이 논리학 열풍을 일으킨 상태였고, 퍼스도 이에 영향을 받지만 이에 비판적인 입장으로서 자신의 논리학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밀의 <논리 체계>, 콩트의 <실증주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학부들의 다툼>, 헤겔의 <논리학>, <정신현상학> 등을 염두에 두고 퍼스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시 논리학/수학에 대한 퍼스의 구별법은 이러합니다. 한편으로 기하학중심적인 수학/논리학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대수학중심주의적인 수학/논리학이 있습니다. 퍼스는 이 둘에 대해 하나만 옳다는 입장은 아니고, 이것들을 배치의 문제로 이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하학중심적인 수학/논리학에 우선권을 둡니다. 우선권이 기하학중심으로, 활동을 통한 창출을 중심으로 배치됨에 따라 퍼스는 발견->비판->실천이라는 과학 내적 순환고리와, 과학->진선미 배치->형이상학적 관점(세계관) 확립/발전이라는 학문 전체의 순환고리가 그려지고, 결과적으로 형이상학, 세계관의 문제가 퍼스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최종적 문제)로 부각됩니다. 이러한 배치는 헤겔의 형이상학중심주의적 학문론과는 다른 종류의 형이상학적중심주의적 학문론이라고 할 수 있고, 퍼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칸트의 철학을 정교화하여 학문론으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론 확립에서 꽤나 중요했던 것은 다원성 문제였습니다. 이 시기에 다양한 맥락의 다양한 텍스트에서 다원적 우주(plurality of worlds) 문제가 발견됩니다. 또한 (수학 및 논리학의) 형식체계의 다양성 문제도 핫이슈였죠. 이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관점들 사이에서의 전환 문제(관점 전환)를 다뤄야했습니다.(니체의 관점주의 맥락도 이것입니다) 퍼스는 이러한 다수 관점들을 운용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문론을 형성한 것이고, 이를 통해 큰 비전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그것이 잘 되진 않은 것 같더군요.

 

비록 원하던 기획을 달성하지는 못했어도, 퍼스는 꽤나 정교한 학문론을 구상해낸 것 같고(이는 다른 학문론 저자들과 비교할 때 그렇다는 소리입니다), 이 점에서 이러한 학문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귀결의 문제, 형이상학적 비전의 규범 문제를 매우 정교하게 탐구한 니체와 상반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좀 더 분석활동에 치중한 퍼스와 귀결을 실천적 지침으로서 정교화한 니체로 역할 분담 시킬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제가 좀 놀랐던 것은 당대 미국에서 이러한 작업들을 실시간으로 따라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정교하게 체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퍼스의 맥락들이 매우 유럽적이란 것이었습니다. 매우매우매우 18세기에서 19세기로의 이행문제(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두 시대 사이에서의 이행)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고, 전형성을 가진 인물이란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습니다. 이전까지는 독일의 학문론 전통과 밀의 이에 대한 반박 및 고유 학문론 형성(형이상학적 학문론vs법칙적 학문론:형이상학vs실증주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의 선택지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덕분에 마흐, 푸앙카래, 라이헨바흐, 훗설, 카시러, 오트 바이닝거, 프로이트, 모건, 뒤르켐-모스, 엘리아스, 루만, 니체, 빌라모비츠, 스넬 등등을 모두 다 재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튼 흥미롭단 소리입니다.

 

이제 시작하고 싶은 것은 “임상의학”의 탄생 문제입니다. 에코, 긴즈부르그 등이 고찰하듯이 볼테르의 <자디그>로부터 시작되는 “추적/탐구”의 등장, “탐정”의 탄생은 의학과 매우 관련이 크고, 이는 징후학에서부터 비롯된 임상의학의 발전 덕분인 걸로 보이는데(항상 저쪽 담론을 갖고 있는 의학 관련 인물이 이것들을 만들어냈으니...), 이 부분을 잘 요약한 책은 아직 못 봐서 아쉽네요. 막상 연구를 시작하려니 뭐부터 해야할지도 모르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