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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근황

글을 하나 쓰려고 하는데, 서평으로 생각해야할지 일상으로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요즘 하는 일이 거의 다 공부에 관련된 것이다보니(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제외하면...) 근황이라고 할 게 사실상 공부 문제뿐이다. 마지막 학기라는 생각에 학교도 거의 안 나가면서 놀았더니, 공부하는 시간도 늘었다. 역시 절대적인 여가의 총량은 중요하다.(이 문제를 지적한 아이젠슈타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그런데도 아이젠슈타인의 글은 정리할 엄두가 안 난다. 한국어 번역책은 반납해버렸고, 원서는 살 예정이지만 언제 다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큰 장애이지만 나의 게으름 때문에 영어 공부는 항상 뒷전이 되기 일수이다.(한국어로도 이렇게 읽을 것들이 넘치는데 영어 공부할 시간이 어디있겠는가? 아퀴나스급의 지성은 아니지만 그의 지적 게으름은 나에게 좋은 핑계가 된다)


1. 브루스 링컨 - 신화 이론화하기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뛰어난 연구서가 있다니! 저자는 고대철학이나 고대사 전공이 아니지만, 그리스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면서 고대 문화를 재구성해낸다. 내가 전에 찬양한 헤블록의 연구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구송성/문자성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덧붙여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스 문화를 해석해낸다.(뮈토스에 대한 논의는 머리털나고 처음 들어보는 얘기지만 바로 수긍이 갔다!) 놀라운 것은 이런 작업을 단지 1장과 2장에서 끝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3장은 1,2장보다 더욱 뛰어나다는 것이다! 3장에서 저자는 중세 이후부터 세계대전 시기까지 신화에 대한 관심이 어떤 맥락에서 증대되었으며, 신화를 떠들고 다닌 인간들이 어떤 전제 위에서 활동하였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분석해낸다. 3장의 작업은 정말 너무너무 뛰어나지만, 이 문제를 다루는 독립 연구서를 한 권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였다.(나는 더 자세히 알고싶다!) 19세기에 숱하게 등장하는 인종적/문화적 비유들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변용되어 갔는지를 보는 일은 문사철 모두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이 책은 1,2,3장만으로도 충분히 값을 하는 책이며, 저자가 얼마나 통찰력에 금세 압도당할 수 있을 것이다! 

p.s. 이 양반의 파이드로스 해석이 나랑 똑같다. 그리고 난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인간을 처음 봤다.


2. 이반 스트렌스키 - 20세기 신화이론

브루스 링컨이 꽤나 칭찬을 해서 본 책인데,(칭찬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저작이라고 말하긴 한다) 링컨처럼 압도적이진 않다. 일단 이 사람이 맥락주의를 주창하게 된 것은 퀜틴 스키너 때문인 것 같은데(본인이 이 양반을 언급하니까) 스키너 방법론이 정확히 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스키너는 단순히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담론장에서 결정되므로 담론장을 재구성해내는 방법론이 필요하며, 이것은 지성사가 사회사와 독립적으로 연구될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해낸다는 주장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외적 맥락이니 내적 맥락이니를 말하면서 사회사적 측면을 재도입하는 것은... 스키너의 방법과 맞지 않다. 뭐 스키너를 철저히 따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를 정확히 언급하면서 자신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것이 정상적인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뭐 분석 내용은 꽤나 설득력 있고 탁월하다. 물론 이 책이 기획하고 있는 시도, 즉 직관의 나열로서의 신화학이 아니라 제대로된 학문으로서의 신화학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성과인지는 모르겠다.(뭐 본인은 이 문제가 역사 탐구에서 얻어지는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3. 에른스트 카시러 - 계몽주의의 철학

링컨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카시러였다. 신화학 문제로 관심이 생겨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20세기 신화이론에서 제일 처음 다루는 학자가 카시러다) 천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듯 하다. 이 양반은 꽤나 오래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학자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있으며, 어느정도 정리하려고 시도한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분석/종합, 해석/종합(?) 귀납/연역, 모순율/충족이유율 등으로 말해지는 구분으로 학문 방법론, 혹은 진리의 근원에 대한 문제 중 하나이다. 오늘날 분석/종합은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정초해둔 방식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용어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는 거의 정반대라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용어가 17세기 무렵부터 요동치기 시작하여 그것이 재구축되는 시기가 18세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동 속에서 분석과 종합, 모순율과 충족이유율 등의 구도를 통해 이성이 무엇이고 학문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대표적인게 분석의 방법을 통해 해석학 중심으로 구축된 물리학(혹은 자연과학)이다. 카시러는 이러한 의미변동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으며, 바로 이 문제가 계몽주의의 문제라고 말한다. 본인은 이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수학 및 물리학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접근 가능한 문헌이 크게 제한되어(이에 대한 연구서는 없는 실정이며, 해당 저자들은 모두 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 시대와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카시러는 이 문제를 포착했을 뿐만 아니라(이것만으로도 난 카시러를 찬양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사회사와 독립된 지성계의 영역에서 역사적으로 재구축하려고 시도한다.

카시러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뉴튼의 역할을 너무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카시러는 주목하지 않지만, 기하학과 대수학의 대비는 18세기에 중요했으며, 17세기가 기하학적이라면 18세기는 이를 대수학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한다. 분석의 방법을 제대로 정초해낸 것은 뉴튼이 아니라 라그랑주이며, 뉴튼은 오히려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프린키피아는 기하학적으로 서술되어있다) 뉴튼은 분석과 종합을 모두 중요시한 인물이었다. 이 점에서 뉴튼은 마지막 17세기인이라고 할 수 있다.(뉴튼은 참 여러모로 구시대적인 혁명가였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뉴튼의 작업을 어떻게 계승하냐였고 라그랑주의 해석역학은 그런 점에서 엄청난 기획물이었다. 종합(수학에서 이 용어는 특정한 영역에서만 쓰여 더이상 표현할 언어가 없어져버렸다)을 배제한 분석, 해석학의 승리는 라그랑주의 손에서 이뤄졌으며 우리는 뉴튼의 후예라기보다는 라그랑주의의 후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뉴튼이 너무 많은 작업을 이뤄 물리학자가 할 일이 없어졌다는 당대의 뉴튼 찬양을 진지하게 믿는 멍청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대에 뉴튼주의는 어떤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었고(지금 데카르트주의자로 알려진 말브랑슈는 프랑스의 선구적인 뉴튼주의자이기도 했다) 그것을 어떻게 고정시키는가는 거저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아무튼 중요한 점은 뉴튼에서 해석학이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고, 그 이후의 작업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카시러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정도이다.

한가지 궁금한 점은 카시러가 신칸트주의자로 불리는 이유이다. 이 양반은 본인을 역사학자로 생각하는듯하고 방법론 또한 칸트주의로 보기 어려워보인다. 당장 오늘날 칸트주의를 표방하는 밥맛 떨어지게 하는 문투를 가진 칸트주의자들, 롤즈, 코스가드, 오닐 등과 비교할 때 카시러는 굉장히 비칸트적인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카시러에 영향을 받아 이를 문화사의 영역에 적용했다고 평가받는 파노프스키는 내가 보기에 해석학(이는 앞서 언급된 수학적 해석학이 아니다)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그의 시각예술의 의미에 수록된 방법론에 대한 논문은 해석학자의 글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해석학적이다.(그런데 카시러는 또 해석학적이지도 않다) 신칸트주의는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칸트주의였던 것일까? 19세기 철학사에는 비어있는 영역이 너무 많은듯 하다.


4. 토마스 핸킨스 - 과학과 계몽주의

좋은 책이다.(이 책은 자세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후 계속)


당장 써야할 과제물도 있는데 이런 책들만 보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다행인 것은 꽤나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는 과제물에서 지금 보는 책들을 근거하여 쓸 것이 많다는 것이다. 헤겔 법철학에서 자연법의 의미에 대해서 보고서를 쓸 예정인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라는 당대의 시대 상황 속에서 자연법이 자연법칙과 어떤 관계인지를 보기 위해서는 카시러나 핸킨스의 책을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링컨의 책 또한 훌륭한데 이 문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얼른 얼른 끝내야지....


생각해보니 다른 근황이 하나 더 있긴 하다.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 중인데 정말로 기대가 된다. 우우우우우니이이이이 얼른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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