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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현대 사회에서의 철학의 쓸모?

문득 든 생각.


고전적인 덕 이론이 요즘 각광을 받는듯 하는데, 고전적인 덕 이론이 현대 사회에 기여할 부분은 매우 적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인권 담론 같은 핵폐기물보다야 나을 가능성이 있지만 결국 문제 해결에는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덕 이론들은 즉각적인 감각적 충동과 그것들의 순화라는 구조로 문제를 해결한다.

즉 마음의 조화=감각의 순화=행복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오늘날에도 꽤나 설득력 있는텐데(본인도 플라톤에 뿅간 적 있으니 부정하지 않겠다), 이러한 구도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꽤나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감정들은 충동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대부분의 감정들은 고도로 추상화된 감정이며 감각과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게 우울함이다. 도대체 우울함이 감각과 뭔 상관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러한 감정들은 딱히 이성과도 상관없다.

우울함에 정확한 원인이 있으면 이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똥이다. 그러므로 삶은 좆같다. 삶이 좆같은데 어떻게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 구도면 세상은 똥이라는 사실 판단의 영역에 문제를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함의 대부분이 이러한 구도에서 기원하는 것은 아니다.

진중문고로도 들어온 "문제는 무기력이다"란 책처럼 오늘날 우울함은 대체로 무기력에서 오며, 딱히 이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통계 조사는 안 해봐서 모르지만 적어도 본인은 이유 없는 우울증 때문에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성으로 뭘 한다는 건 제대로 된 답을 줄 수 없다. 꽤나 좋은 글들을 많이 봤지만, 애초에 문제는 사실 판단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하고 싶단 마음에는 이유가 필요할지 몰라도 의욕자체가 없는 상태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결국 이 문제의 답은 철학이 아니라 약물이다. 상담치료가 먹히는 멍청이들이야 철학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애초에 철학이 안 먹히는 사람은 상담도 안 먹힌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상담 치료사들보다 더 제대로 된 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애초에 체크리스트 따라가며 질문하는 자판기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멍청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자신의 문제를 몰라서 묻는 멍청이는 선천적으로 철학이랑 안 어울리는 법이다.), 철학이 안 먹히는 사람에겐 그냥 약물 투여가 유일한 답안이다.

그렇다면 덕 이론 보다도, 철학보다도 약물 치료가 최고 아니란 얘긴가?

나의 답은 그렇다. 아마도 윤리학은 정치철학에서나 남을 것이고, 일상적 실천 윤리는 일반적인 계발서와 심리학 서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런 분야를 전공하지 않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뭐 이러한 생각이 나만의 생각인 것도 아니다. 수 많은 연구 자료들이 있다. 결론을 제대로 안 내려서 그렇지.(사실 뭘 해도 연구 자료는 쏟아지는 시대가 현대 사회 아니겠는가?)

사실상 글로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 글 속에 정신이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초반에 작살난 생각이다.

당대에 정신과 유령, 즉 제대로 된 유령이 정신이고, 잘못된 정신이 유령이라는 구도 속에서 고전주의, 낭만주의가 꽃피었고 그 맥락에서 헤겔은 글을 썼다. 정신현상학은 글로 보일 수 있는 정신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글에서 드러나는 총체적 정신, 모든 유령을 싹쓸어 버리는 절대적으로 합리적인 정신의 실현...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콜레라에 헤겔이 사망한 이후 정신현상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뒤로는 세계의 총체성을 논하는 작자가 철학사에 등장한 적이 없다. 모두가 총체성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초월성에 목을 매달았다.(그런면에서 총체성의 부재라는 사태에 오줌을 휘갈기며 즐거워한 카프카는 참으로도 유쾌한 인물이다) 결국 글의 실패, 이미지의 부흥이라는 역사 속에서 전통적인 삶의 문제로서의 철학은 끝장이 났다. 피에르 아도가 틀린 점이 있다면 독일 관념론이 고대 철학과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는 것을 몰랐단 점과, 그게 끝난 것은 인간들이 타락해서가 아니라 세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 정도일 것이다. 이제 삶을 위한 철학 따위를 얘기하는 사람은 역사 공부도 안 한 저능아 정도로 생각해도 상관 없을 시대다.

뭐 그래도 희망은 있다. 전문직으로서 철학자는 계속 있을 거고 딱히 도움은 안 되도 그 자리는 유지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세계의 변화 속에서도 구시대를 좇기 때문이다. 생각해봐라.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자동차 용어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로켓의 너비를 결정된 게 기원전 언제인지를.... 인간이란 동물의 결점덕분에 벌어먹겠지만, 인간의 결점 덕에 먹고 산다는 것은 위안 삼기에는 저급스런 소재이다.

"너의 멍청함만이 나의 희망이야!" 정도가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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