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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적인 계몽"을 위한 변론

<야만과 종교>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쇠망사>를 다루는 연구서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에드워드 기번의 지적 전기도 아니며 <로마 쇠망사>의 저술 과정에 대한 역사학적인 연구도 아니다. 이 책을 통해 포콕이 보이고자 하는 것은 “영국의 계몽”이기 때문이다. 만약 <야만과 종교>가 영국의 계몽을 밝히는 작업이라면, 포콕은 영국의 계몽을 에드워드 기번과 그의 <로마 쇠망사>를 통해서 밝히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합당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1) 기번 또한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칸트와 같은 필로조프들처럼 ‘계몽가’여야만 하며, (2) 그의 저작 <로마 쇠망사>는 그러한 필로조프들의 저작들처럼 계몽 사상을 담은 계몽서여야만 한다. 이 두 주장은 소박한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매우 까다로운 주장이다. 꽤나 역설적인 주장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주장을 확인해보자. 기번이 계몽가였다는 주장은 당연할 수가 없다. 그가 한편으로는 다른 필로조프들처럼 계몽가였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가 계몽가였던 다른 필로조프들과 달리 필로조프는 아니었다고 주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기번은 영국의 계몽을 대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번이 계몽가일지라도 그가 다른 계몽가들처럼 필로조프였다면, 그는 영국의 계몽가일 수 없다. 영국에 다른 필로조프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필로조프가 부재했기에, 기번이 필로조프라면 그는 영국 안에서 매우 특이한, 영국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번을 통해 영국의 계몽을 밝히려는 것은 매우 우스꽝스러운 짓거리가 된다. 괴물의 존재가 자연법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듯, 기번이라는 예외적인 인물의 존재로는 영국에는 계몽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일반적인 규칙을 부정할 수 없다. 영국의 계몽을 기번을 통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기번은 필로조프가 아니면서도 계몽가여야 하며, 기번이 예외적인 인물이 아님을 보일 수 있어야만 한다. 즉, 기번은 다른 영국의 계몽가들 사이에서 자신의 특유한 계몽을 주창한 인물이어야만 한다. 이는 당연한 주장일 수가 없고, 포콕 또한 이러한 어려움을 의식하고 있다. 그가 <야만과 종교> 1권에서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놓인 기번의 정체성을 상세하게 분석하는 것, 프랑스어로 글을 쓰던 기번이 영어로 글을 쓰게 되는 계기를 중요시하는 것, 그리고 <로마 쇠망사> 저술이 기번의 영국인으로서, 특히 신사로서의 정체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강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포콕은 기번이 영국 안에서 영어로 글을 쓴 매우 프랑스적인 인물이 아니었음을 밝혀낸다. 기번은 프랑스에서 살고 프랑스의 계몽을 접했음에도 그것과 구별되는 영국적인 계몽으로 나아갔다. 그렇기에 기번은 영국의 계묭을 대표할 수 있다. 그가 영국적인 계몽을 주장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설혹 다른 영국의 계몽가들과 다를지라도) 그가 의식적으로 “영국적인 계몽”을 구체화하고 성취해냈기에 대표적인 인물일 수가 있는 것이다. 전형으로서 공통성을 대변하기보다는, 다른 계몽과 구별되는 고유한 계몽을 구체화해냈다는 점에서 대표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장 또한 매우 까다로운 주장일 수 있다. 계몽주의의 대표적인 저작은 역사서가 아니다. 카시러는 계몽 사상과 역사적 탐구가 긴밀하게 엮겨 있음을 지적하였지만, 카시러 또한 계몽기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역사서를 꼽진 않았다. 만약 기번과 그의 <로마 쇠망사>를 통해 영국의 계몽을 밝힌다면, <로마 쇠망사>가 계몽 사상을 담은 대표적인 저작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정당할 수 있으려면, <로마 쇠망사>는 단순히 계몽 사상을 담은 저작이어서는 안 된다. 만약 <로마 쇠망사>가 그저 계몽 사상을 담은 책일 경우, 이는 다른 계몽서일 수는 있겠지만, 특별한 모범일 수는 없다. 다른 계몽서들은 역사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로마 쇠망사>를 통해서 영국의 계몽을 밝히려면,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영국적인) 계몽 사상이라는 주장에 그쳐서는 안 되며, 이것이 어째서 역사서로 집필되었는지 또한 밝혀내야한다. 실제로 포콕은 이러한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 이는 1권에서 분석되는 달랑베르의 <서문>에 대한 기번의 비판을 자세히 들여다 볼 경우 확인할 수 있다.
  달랑베르는 철학이 박식erudition보다 우월하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달랑베르는 박식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박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 또한 지난 시대의, 고정 불변의 체계를 세우려는 “체계의 정신”에 대해 비판한다. 달랑베르 또한 체계를 추구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체계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다수의 사실들과 다양한 경험들을 포괄하려고 시도하는 “체계적인 정신”을 옹호할 뿐이다. 체계적인 정신을 추구할 때 박식 또한 중요성을 갖는다. 경험에 분리되지 않은 체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들을 수집해야하기 때문이다. 체계는 지난 시대처럼 선험적인 형이상학을 통해서 세워질 수 없다. 이는 다종다양한, 풍부한 경험적 사실들 속에서 그것들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시도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다종다양한 경험들을 수집하는 일 또한 중요하며, 박식 또한 지식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달랑베르가 박식을 철학 아래 둔 이유는 무엇인가? 박식을 담지하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박식은 기억과 흡사하다. 그것은 수집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는 특별한 정신적인 활동을 담지할 수 없다. 이성을 기반으로 수행되는 철학이나 상상력을 기반으로 수행되는 문학과 달리, 박식의 근거가 되는 기억은 그 자체로 특별한 장르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서는 그러한 장르로 취급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2권 서문에서 지적되듯이, “역사서”는 과거에 저술된 저작들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가 역사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역사서”로 작성된 것이 아닌 회고록 등도 과거의 정보를 담고 있다면 역사서로 취급되었고, 근대에 쓰여진 역사서들이 그것들과 정확히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불분명하였다. 역사서가 그것들과 구별되려면, 고대의 기록들보다 우월한 근대적인 장르일 수 있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이 역사서에 부여될 수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역사서가 단순히 기억을 넘어서는, 이성과 상상력을 활용하는 특별한 장르로 여겨질 수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포콕에 따르면 기번 또한 이를 고민하였다. 기번은 박식이 기억과 등치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아님을 보이려고 하였다. 그가 박식에 속한 “비판” 활동을 판단력이 발휘되는 활동으로 본 것은 이러한 문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비판이 판단력을 요구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달랑베르 또한 비판을 판단력을 활용하는 이성적인 활동으로 여겼지만, 그는 그것이 철학의 박식에 대한 우월성에 반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는 박식에 대한 그의 평가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유럽인들은 박식 덕분에 중세적인 야만과 종교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철학의 부재 속에서 박식만이 과도하게 추구됨에 따라 고대에 대한 환상 따위가 유행하게 되었다. 근대적인 계몽은 철학이 박식의 과잉을 제압하고, 환상을 몰아냄에 따라 성취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박식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다. 과거의 사실을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이 우선될 때에만 박식은 의미 있을 수 있다. 철학의 인도가 없다면 박식은 고대에 대한 집착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의 박식에 대한 우위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논리가 필요한다. 박식에 기초하면서도 철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특별한 가치를 가진 정신 활동을 구체화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 기번은 그 답을 역사에서 찾았다. 달랑베르에 따르면 역사는 특별한 지위를 갖지 않는다. 그가 과거의 역사서에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올바른 과학적 지식이나 흥미로운 개별경험들 뿐이었다. 전자는 근대적인 과학 탐구에 의해 대체되었고, 후자만이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후자 또한 특별히 “역사”로서의 중요성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흥미로운 개별경험은 근대에도 탐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류학적인 탐사를 통해 얻어지는 민족지는 역사와 대등하다. 이 또한 역사서 속의 보고 만큼 흥미로운 개별경험들을 담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것보다 더 온전한 정보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탐구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기번은 이러한 달랑베르의 진단에 맞서 역사가 두 가지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담지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역사야말로 계몽을 규정하는 매체라는 것이다. 애초부터 계몽이 무엇이고, 박식에 대한 철학의 우위를 진단할 수 있게 한 것은 달랑베르의 역사에 대한 해석이었다. 계몽은 시대의 변천 속에서, 다시 말해서 역사 속에서 규정되는 개념인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설혹 철학이 우월할지라도, 그러한 우월함은 오직 역사학적으로 철저히 검증될 수 있을 때에만 “합리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 그 자체로 유의미한 정신적인 활동을 담지한다는 것이다. 역사학적인 탐구는 과거의 사실들을 확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사건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시간적으로는 장기적으로, 공간적으로는 거시적으로 탐구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는 인식 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넓히는 지적 활동이며, 이성과 상상력을 더욱 발전시키는 활동일 수 있다. 역사학은 철학으로는 수행될 수 없는, 역사학적인 탐구를 배제한 채 이성을 통해서 수행할 수 없는 종류의 고찰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철학으로부터 박식을 해방함과 동시에, 박식을 역사학 속에서 특별한 지적 활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서사이다. 역사학의 고유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고유성을 담지할 형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서사이다. 서사는 행위들과 사건들이 어떤 연관 속에서 진행되는지를 의미한다. 그렇기에 역사서가 사실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사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만 한다. 서사를 통해서만 사실들을 넘어선, 원인과 결과를 포함한 거시적인 사태들이 기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사는 역사와 긴장을 야기할 수 있다. 서사는 사실에 기초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닐지라도 서사는 교훈moral을 제공할 수 있다. 우화가 의미 있는 것은 그 덕분이다. 또한 서사가 중요하다면, 사실을 과정하거나 서사에 잘 맞지 않는 사실들을 배제하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 이는 오히려 그 이야기의 가치를 높이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서사와 역사를 결합하기 위해서는, 역사가 제공하는 것이 이야기가 제공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인 교훈에 그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사실에 기초해야하는 특별한 종류의 인식을 제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역사와 서사와 철학의 종합이 요구된다.
  역사와 서사와 철학의 종합은 당연한 것일 수 없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역사와 철학, 역사와 서사는 긴장을 야기한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가 동원될 때, 셋의 종합은 가능해질 수 있다. 포콕이 진단하듯이, 근대적인 철학은 정신의 활동을 그것의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근대 철학은 정신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어떤 것들을 감각하고, 지각하고, 비교하고, 연결하는지를 탐구한다. 그렇기에 근대 철학에서는 우리의 인식하는 내용들은 오랜 시간 걸쳐 이루어진 정신 활동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우리의 지식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만약 우리의 지식이 역사적인 기원을 갖는다면, 그것의 합리성이나 당위성은 역사적인 탐구 속에서 평가되어야만 한다. 즉, 현재의 주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주장이 등장한 역사적인 배경을 포착하고, 다른 가능성들과의 비교 속에서 평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박식과 서사와 철학은 결합되어야만 한다. 어떤 철학적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서는 사실과 장기간의 변화와 형성이 분석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기번의 <로마 쇠망사>는 바로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고찰될 때 계몽서일 수 있다. 이것은 근대인이 중세적인 야만과 종교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기에 계몽서인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러한 주장을 담는 방식에서, 그것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역사적인 사태들을 박식과 서사와 철학의 결합 속에서 탐구하기 때문에 계몽서인 것이다. 이것이 역사서인 것은 그렇기에 우연이 아니다. 계몽을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 혹은 그러한 주장이 정당하기 위해서 그것은 역사서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서는 과거 사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을 넘어서, 현재를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자, 이성과 상상력과 기억 모두를 활용하는 지적으로 특별한 활동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탐구하는 일은 근대인에게 어울리는, 계몽의 활동일 수 있다.
  역사적 탐구는 특히 광신과 미신을 경멸하는,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미신적인) 탄압 뿐만 아니라 (광신적인) 저항을 경멸하는 “신사”에 적합한 활동이다. 이는 “이성”을 존중하는 일을, 사회적인 개혁이나 개선에 대한 믿음 속에서 적극적으로 운동하기 보다는, 사건의 진행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계속적인 활동 속에서 찾는다. 즉, 회의적인 태도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회의는 소극적인 것도 무기력한 것도 아니다. 이는 복잡한 인간사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의미하기에 적극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기력해보이지만, 이는 인간서의 복잡성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는 조심성을 의미할 뿐이다. 그들은 인식을 추구하는 계몽된 근대인으로서 세상의 이치를 조심스럽게 따를 뿐이다. 종교나 폭정에 대해 투쟁하는 일은 물론 계몽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전부여서도 안 된다. 그러한 사태들의 원인을 인식하는 일이 먼저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거부나 투쟁은 이성적일 수 있다. 포콕은 기번과 그의 <로마 쇠망사>을 이러한 의미에서의 계몽에 위치시킨다. 그렇기에 종교나 폭정에 투쟁하는 필로조프가 없었어도, 영국에는 계몽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영국”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에 호소하는 주장이 아니라, 하나의 계몽 사상으로서의 권리를 갖춘 요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