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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글

프레게의 동일성 개념에 대하여

최근 지시 문제를 고민해볼 필요를 느껴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를 다시 좀 읽어보았는데(다 읽은 것도 아닌...) 뭔가 다른 게 좀 보이더라고요.

지시에 대한 프레게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 동일성에 대한 프레게의 입장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프레게는 본인이 <개념표기>에서는 동일성이 이름들 사이의 관계인 것처럼 다뤘지만, 동일성을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에서 진단하죠.

동일성은 이름들 사이의 관계일 수 없습니다.

“a=a”와 “a=b”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름들 사이의 관계라면 “a=b” 또한 “a=a”와 다르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이 인식적인 차이든 무엇이든 차이가 있으며, 이런 차이를 이름들 사이의 관계로, 표현상의 문제로 여기는 한 이 차이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구별이 필요한 것이죠.

프레게는 이를 위해 뜻과 지시체 구별을 도입합니다.

이와 함께 동일성은 한 사물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됩니다.

즉, “a=b”의 경우 a와 b의 동일성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로 성립하는 겁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동일성이 “샛별=개밥바라기별”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샛별이 금성을 가리키는, 바로 지시 관계에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뜻이 지시체와 맺는 관계 또한 동일성 관계인 것입니다.

지시 관계가 동일성 관계라는 것을 고려할 경우 “샛별=개밥바라기별” 같은 동일성 진술은 그렇게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진술은 지시 관계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샛별=금성”과 “개밥바라기별=금성” 같은 지시 관계로부터 파생하는 관계일 것이라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프레게가 “한 사물이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로 바로 저런 동일성 진술을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저런 뜻들 사이의 관계까지 포함된다는 것이죠.

 

프레게의 진단이 사소해보이지만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함수 등을 통해 가리켜지는 모든 관계가 동일성 관계들로 환원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 모든 기술description이 동일성 관계가 됩니다.

프레게가 모든 문장들의 지시체를 같은 것으로, 참으로 본 것도 이 때문에 당연해지는 것입니다.

기술 가능한 모든 것은 동일성 관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기에 기술 가능한 모든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확정된 것이 되고요.(모든 것이 분석적인 참이 되는 것이죠)

이런 귀결들은 절대로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프레게는 사소해 보이는 구별을 도입함으로써 사소하지 않은 결과를 도출해낸 것이죠.

 

프레게의 구별은 그냥 뜻과 지시체가 경험적으로 구별되어 도입된 것이 아니었고, 프레게는 이 구별에 대한 자신의 답을 통해, 자신의 수학적?/철학적? 입장을 확정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이제야 수학쟁이 프레게가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를 집필한 이유가 이해가 되는군요;;;

 

 

 

하여간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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