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쪽글

올바른 "흄주의"란?

오늘날 스스로를 ‘흄주의’로 부르는 일군의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흄주의”를 표방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인지를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흄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자의적이거나 임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흄의 철학적 작업과 자신들의 철학적 작업이 비슷한 면이 있으니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냐는 겁니다.

 

현대의 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흄을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근거는 법칙의 실재를 부정하고, 경험 가능한 규칙성에 근거하여 철학을 수행하는 흄의 작업을 그들이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일겁니다.

아마도 이런 식의 생각에 매우 익숙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법칙에 대한 가능한 입장은 1) (데카르트나 뉴턴의) 실재론 2) (칸트의) 구성론 3) (흄의) 회의론으로 삼분되고, 이 중 3번을 취하면 흄주의라고 생각하곤 하니까요.

문제는 이런 식의 도식이 역사적 흄에게 적용되기도 어렵고, 그렇게 실효적인 구별도식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단 역사적 사실부터 얘기하죠.

법칙의 실재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개신교 쪽 지식인들에게는 표준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은 유명론자라면 당연히 취할 법한 입장이었고, 특히 17세기에는 널리 퍼진 입장이었죠.

게다가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애초부터 ‘법칙’을 주장한 이들은 이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 이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은 원래 “법칙”으로 말해지지 않았습니다.

법칙은 인간에게나 속하는 것이죠.

실재론을 주창하는 이들을 비판한 이들이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실체의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법칙이었습니다.

확인 가능한 현상적 규칙성을 기술하고, 그것이 자연에 속한 것으로 보지 않으면서도 언급하기 위한 장치로 “법칙”이란 용어가 차용된 것이었거든요.

그러니 애초부터 법칙은 저런 구별도식 상 회의론적인 입장에서 제시된 것이고, 이는 13세기에까지 소급될 수 있는 개념입니다.

흄 철학을 법칙 회의주의로 개성화하는 것은 그러니 문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3세기까지 소급시켜야하거나, 적어도 17세기까지 소급시켜야하는 입장이죠.

게다가 특이한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중세에 “법칙”을 말하는 이들은 극소수였지만(유명론이라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겠지만, 굳이 “법칙”을 주요한 개념으로 내세운 이들은 극소수였고, 그들의 논의범위도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17세기 중반 즈음이면 이미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흄 철학을 저걸로 개성화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어요?

 

물론 흄을 계승한다고 해서 역사적 흄을 계승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플라톤주의자들이 플라톤을 계승하는 것은 아닐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 경우 그들이 “흄주의”를 표방하는 근거는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깐따삐아주의”라고 말해도 될 것을 굳이 “흄주의”라고 해서 오해를 산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오해가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애초에 그들이 “깐따삐아” 대신 “흄”을 내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거든요.

그냥 역사적 흄과 그들이 이해한 흄이 다르다고 선언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역사적 흄과 그들이 이해한 흄이 다르다고 해서, 그 둘이 지시하는 인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오늘날 개신교 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와 신학적 예수를 연관시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적 예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심지어는 그가 존재했는지는 신학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죠.(이게 안 믿기면 앨리슨의 <역사적 그리스도와 신학적 예수>을 읽어보십셔)

그런데 이런 입장은 외부인이 보면 너무나도 기이합니다.

신앙의 근거가 되는 증거들이 역사적인 과정 속에 놓인 무엇인가인데, 그러한 역사적 과정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신학적인 입장은 역사적 사실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신학적으로 밝혀야만 하는 “성서적 가르침”은 예수나 교부의 몇몇 구절로 확정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신학적 연구의 자율성은 존중될 필요가 있지만,(사실 이런 자율성 존중도 독일의 고등비평에서 비롯된, 역사적인 유산이죠...) 그것이 사실을 도외시하는 것일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예수는 존재해야만 하고, “그리스도”여야만 합니다.

개별 가르침이나 당대의 역사적 맥락은 중요치 않을지라도, 저 “사실”이 담보되지 않으면 기독교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이게 아니라면,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독일 고등비평에서도 용납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고등비평은 “자유로운” 해석을 긍정했지만, 적어도 저 사실들은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겨졌고, 그것은 철저히 실증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설혹 이미 주어진 담론들의 논쟁으로 신학이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말이죠.

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흄주의자들이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흄주의”는 역사적 흄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지시하는 대상도 마찬가지로 흄이지, 동명이인이나 허구의 인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흄주의”로 내세우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자신들의 철학을 개성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활동이거든요.

흄 철학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그들에게 말했을 때, 저들은 “어 그래? 그럼 이제 깐따삐아주의로 바꿔야겠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자신들에 대한 “비판”으로 여기고, 분명 반론을 펼칠 겁니다.(전 이런 반응이 그자체로 설명이/구제가 필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비판에 대해서 그들은 역사적 흄과 철학적 흄을 구별하고, 철학적 흄을 이후 철학계에 영향을 끼치고 계승된 흄으로 내세울 것입니다.

그니까 법칙에 대한 회의론적인 입장의 상징으로 흄이 계승되어왔고, 그들은 그런 계승을 이어 받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 또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19세기에는 저런 식의 흄 이해가 없었고, 흄의 직접적인 계승자인 영국의 지질학 전통과 범사회담론 전통은 흄을 저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설혹 흄을 법칙회의주의자로 이해한 해석 전통이 있을지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어떤 특수한 해석 전통에서 “흄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월권일 수 있거든요.

물론 모두가 자신들의 흄주의를 표방하자는 식의 다원주의를 표방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법칙 회의주의자로 흄을 보는 해석 전통에 대해서, 그러한 해석은 문헌 근거나 역사 근거가 결여되어 있고 철저한 오독 속에서 상상 속의 흄을 꾸며내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하고 있거든요.

다원주의를 승인할지라도, 그것이 모든 권리 주장을 포용할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그러니 흄주의를 표방하려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해석이 합당함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말이죠.

 

아마도 후자의 “철학적 유의미성”이 문제의 관건이 될 겁니다.(역사적 해석은 애초부터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이죠)

실재론, 구성론, 회의론 삼분도식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 같고, 이런 논리적 구분에 기초해서 철학적 입장을 정교화하는 것은 충분히 유의미할 수 있으니 말이죠.

전 이런 접근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식의 구별이 각각의 철학적 입장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해하기까지 하는 구별도식이기 때문입니다.

저런 도식을 사용할 경우 “법칙 실재론” 같은 것은 이해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법칙이 실재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게 어떻게 믿어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배제하고서 법칙 실재론에 대한 믿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칙은 구체적인 물체나 둥둥 떠다니는 이상한 무엇인가가 아는데, 도대체 그런 게 실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법칙 개념 자체가 회의론적 색채가 있는 개념이라, 이를 실재론적으로 주장한다는 것은 역설적인 주장일 수 있습니다.

법칙이란 개념을 제시하게 되는 맥락(역사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실재론이든 회의론이든 법칙에 대한 입장 자체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따져야하는 것은 그렇기에 법칙에 대한 세 가지 입장이 아니라, 법칙이란 개념을 도입한 맥락과 해당 개념의 인식론적 기능입니다.

전자는 후자를 위해서라면 사용될 수 있겠지만, 단독적으로는 무의미하고, 후자를 위해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말이죠.(합리주의/경험주의 따위 도식이 철학사 연구에서 도태된 것처럼 말이죠... 심지어 과학철학에서도 저런 법칙 삼분지계는 도태된 도식입니다)

 

 

아마도 저의 이런 주장들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비판은 유의미성 비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도대체 그런 비판을 왜 제기하는지는 문제 삼을 수 있으니까요.

전 이에 대해서 이런 식의 답변을 할 것입니다.

애초에 내가 문제 삼은 것은 철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과거의 철학자들이 그들의 이해와 다른 종류의 철학을 수행한 것을 굳이 주장하는 것은 과거의 철학자들이 철학함에 있어 훌륭한 모범이 된다고 생각해서라고 말이죠.

실제로 흄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법칙에 대한 회의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회의가 중요했다면, 저 먼 옛날 원시시대의 이름 모를 회의주의자가 철학의 아버지겠지만, 철학의 아버지는 플라톤이지 이름 모를 원시인이 아니거든요.

적어도 ‘철학’이란 단어는 그 원시인이 물려준 것이 아니고 말이죠.

뤼시앵 페브르가 옳게 진단했듯이 세상사에 심드렁한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페브르가 그보다 옳게 주장했듯이, 그들의 심드렁함이 그 자체로는 무신앙이나 불신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불신이 어떤 의미일 수 있냐는 것이거든요.

흄은 무지성 불신, 무지성 회의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철학자가 아니라 키스 토마스가 수집한 저 먼 시골 산골의 못 배워먹은 상놈이었겠죠.(흄은 세상에는 아마도 우연은 없을 것이고,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은 철학자라기보다는 상놈vulgar일 거라고 <탐구>에서 말합니다)

흄의 철학적 기여이자, 흄 본인이 의도한 철학적 목표는 회의주의를 의미 있게 표방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는 일이었지 회의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흄은 회의 그 자체를 표방하는 멍청이들과 자신이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지를 정교하게 논증했습니다.

“흄주의”가 무엇인지를 말하려면, 바로 이러한 흄의 철학 기획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제시될 수 있는 흄 철학은 “경험”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논리”가 철학적 분석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특정한 이해를 포함할 수밖에 없죠.

이러한 이해들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서 흄주의를 표방해서는 안 될 것이고, 이런 이해들을 검토할 경우 지금과 같은 철학 실천을 계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비판을 제가 하는 것이고, 이게 유의미 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자신이 철학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적어도 자신이 수행하는 “철학”이 무엇일 수 있는지를 제대로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자격조건을 부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그렇습니다.

'쪽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레게의 동일성 개념에 대하여  (0) 2023.05.01
버클리의 시각이론과 철학  (0) 2023.04.30
푸코 철학 비판  (1) 2023.04.16
의식에 대하여  (0) 2023.04.11
콰인과 외연주의  (0) 2023.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