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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인과 외연주의

콰인이 <두 독단>, <온 왓 데어 이즈>, <말과 사물> 등에서 표방하는 철학과 콰인의 외연주의가 어떤 관계인지를 전 문제 삼고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콰인의 외연주의가 저런 철학적 입장과 독립적인,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콰인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제가 이해하기로도 그렇지 않습니다.
콰인이 외연주의를 따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콰인의 철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분석이 다른 개별 과학들과 구별되는 영역에 속하면서도, 개별 과학들의 언어 사용을 규제할 수 있는 보편성이 확보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콰인은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 보편성을 가진 형식 체계를 채택해만 했습니다.
문제는 형식 체계의 미결정성(뢰벤하임-스콜렘 정리에 따른)에 의해 보편성을 담지해줄 형식 체계를 주장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콰인은 이 문제를 우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우회를 시도합니다.
미결정적인 형식 체계들은 서로 다르지만 외연을 공유합니다.(1+1=2가 성립하지 않는 형식체계들은 애초에 배제되니...)
이러한 외연만을 참조하는 엄격한 형식체계를 통해 형식적 보편성을 확보할 경우, 정확히 어떤 형식체계가 해당 개별 과학에 통용되는 형식체계인지를 결정하지 않고서도, 규범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콰인은 형식체계 사용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제가 언급한, 그래서 ZFC도 아니라 ZF만을 인정했단 그런), 규범성 있는 철학적 분석의 가능성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이게 문제가 있습니다.(이는 퍼트넘의 비판입니다)
1) 콰인이 형식체계 사용을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콰인 본인이 달성하려는 목적에 부합할 만큼 보편성과 규범성을 가질 수는 없다.
2) 콰인의 형식체계 사용 제한 자체는 그의 실용적인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없다.
퍼트넘은 요런 비판에 입각해서 실용주의적인 철학분석을 주창한 건데 이것도 좀 문제가 있습니다.(전 퍼트넘이 이걸 좀 뒤늦게 깨달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주의적인 분석이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분석일 수 있는지, 그게 다른 개별 과학들과 구별되면서도, 철학에 고유한 영역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거든요.
철학의 전문성이 어떻게 성립하며, 철학적 분석이 달성해야하는 목표가 무엇일 수 있는지가 한정이 안 됩니다.
의사는 당연히 환자의 생명을 보존하는 게 목표이고, 그러니까 평가가 가능합니다.
의료 사고인지, 아니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료 행위였음에도 문제가 생긴 것인지를 저 기준 아래에서 평가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철학의 경우 그게 어떻게 성립하는지, 상대적인 가치 기준들 안에서의 자기 정당화를 넘어서는 철학적 규범성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됩니다.
여기에 답하는 게 꽤나 어렵고요.(전 그래서 역사적-사회적 접근으로 평가 기준을 재도입하는 것을 연구하는…)

이런 문제가 전 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분석철학은 사실상 콰인이 창립한 것이기도 하고, 콰인의 철학 실천이 명제적인 무모순성에 국한되지 않는 일관성이 있었고, 그것에 문제가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만 하는가가 분석철학의 가능성에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건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