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쪽글

구마 겐고 건축 비판

정확히 무슨 맥락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구마 겐고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얼마 전(저에게는 이미 오래전이지만...) 읽기도 했고 나름 재밌는 책이거든요.

<점선면>이 그것입니다.

전 이 책 제목을 보고 칸딘스키의 동명의 저작을 떠올렸는데, 우연이 아니더군요.

일본 저자답게 근거 없는 사상사 놀음을 하고 있고, 뜬금없이 양자역학을 들먹거리는 등 병신 같은 짓을 많이 하지만, 책 자체는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고, 이걸 중심으로 얘기를 전개해나가겠지만요.

 

일단 이 사람의 건축 이념은 지는 건축, 약한 건축입니다.

‘지는’, ‘약한’이란 부정적인 술어를 사용하는 것은 의도적인 전략입니다.

구마 겐고에 따르면 근대 건축은 이기는 건축, 강한 건축을 지향했고, 그래서 문제였거든요.

겐고에 따르면 근대 건축은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근대 건축의 경직성 때문이었고요.

이러한 경직성은 지속 가능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세상의 광기에 견고함을 부여하고 있다고 겐고는 진단하죠.

겐고에 따르면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 중 하나가 메타볼리즘 건축이었습니다.

메타볼리즘 건축은 유기체적 모듈러함을 건축에 부여하려고 했어요.

메타볼리즘 건축에서는 건물을 하나의 분할불가능한 개체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다수의 단위들로 보았죠.

메타볼리즘 건축에서는 이렇게 포착된 다수의 단위체들을 건축학적인 단위체들로 구축해냈습니다.

큐브 형태로 다수의 부분들을 독립적으로 설계했거든요.

이들의 이러한 설계는 미학적인, 시각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단위체들을 필요에 맞게 교체하고, 이어 붙일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요.

근데 이러한 기획은 (당연히) 실패합니다.

메타볼리즘 건축의 대표작인 캡슐타워가 그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그 빌딩이 세워진 후 단 한번도 캡슐이 교체된 적 없거든요.

콘크리트 건물을 모듈러하게 설계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이를 교체하는 비용이 크면 말이죠.

그래서 실패했습니다.(이는 저와 구마 겐고 모두의 진단입죠)

 

구마 겐고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한 건축을 제대로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콘크리티로는 답이 없다는 것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소재를 적극 활용하죠.

근데 그 결과물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뭐 아이디어 자체는 재밌습니다.

내놓은 무엇인가도 귀엽죠.

하지만 저딴 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멍청이와 정신병자 뿐일 그런 결과물이죠.

겐고는 신나게 자랑하지만, 보고 있으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우산들을 모아서 임시 천막을 만들 수 있게 하면 좋겠죠.

하지만 적어도 저 따위의 것은 “건축”이 아닙니다.

겐고는 이동식 천막을 이상으로 내세우는데 이는 애초부터 틀린 답입니다.

그건 건축이 아니거든요.

 

제 비판은 외적인 게 아닙니다.

겐고 자신의 모순이에요.

겐고는 근대 건축의 실패를 쿨하스를 경유해서 주장합니다.

쿨하스는 근대 건축이 스케일의 문제로 실패했다고 진단합니다.

근대 건축은 원래 M사이즈를 기준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L사이즈, 심지어는 XL사이즈가 되었죠.

건축가들이 무력해진 것은 세상이 달라져서란 게 쿨하스의 진단입니다.

M사이즈의 세상을 기초로 “설계된” 건축학이라는 지식으로는 XL사이즈의 세상을 관찰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으니 말이죠.

구마 겐고는 쿨하스가 절망에 빠졌다고 마음대로 진단하고, 이 문제에 대한 답은 XS 사이즈의 건축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에서 저런 이상한 이념이 나온 거고요.

근데 이건 걍 말이 안 되는 헛소리에요.

XS 건축으로 XL 세상을 어케 한다는지에 대해 아무런 답이 없거든요.

겐고의 뜬금 없는 스케일 축소가 답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겐고식의 답변은 답일 수 없습니다.

일단 이유부터가 없거든요.

재미난 것은 이에 대해 쿨하스는 나름 잘 답변하고 있다는 겁니다.

겐고의 뇌피셜과 달리 쿨하스는 절망에 빠지지 않았고, 나름의 실천을 잘 수행하고 있거든요.

쿨하스의 대표작은 시애틀 공공 도서관이에요.

저 작품은 정말 최고입니다.

그런데 저 작품이 최고인 이유는 다른 작품이 최고인 이유랑 정말 달라요.

건물의 외관? 전 단 한번도 저 건물이 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러면 공간 분할 및 공간 배치의 놀라움?

물론 쿨하스가 잘 하긴 했죠.

재미난 시도도 많고 신경 쓴 걸 정말 잘 알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걸로는 별거 아닙니다.

훌륭한 건축가들은 다들 잘 하고 있으니까요.(뭐 이걸 모두가 잘하는 건 아니지만요ㅋㅋ)

이걸로는 최고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뭐냐?

경제성입니다.

시애틀 도서관은 공립 도서관이에요.

그래서 예산이 한정적이었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면 이런 의뢰는 받지도 않았을 거고, 받았다면 맘대로 예산 초과해서 엄청난 빚은 시애틀 시에게 떠넘겼을 겁니다.

쿨하스는 저런 대가적인 초합리성을 거부합니다.

예산에 맞춰서 건물을 짓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심지어는 운영 비용이 과도하지 않을 수 있게 에너지 효율성도 최고 수준으로 고려했죠.

쿨하스의 뛰어남은 이런 데에 있습니다.

제가 쿨하스를 최고의 건축가로 뽑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쿨하스는 큰 사무소를 운영합니다.

원래 대가적인 건축가들은 큰 사무소 운영을 잘 안 해요.

큰 사무소를 유지하려면 많은 프로젝트를 따내야하고, 그러다보면 퀄리티가 떨어지거든요.

이런 문제를 쿨하스는 극복해냅니다.

건축 사무소의 평균 수준을 높이는 방식으로 말이죠.

모든 프로젝트를 본인이 통제하며 다 처리하지 않아요.

만약 그랬다면 퀄리티가 떨어졌겠죠.

쿨하스의 사무소는 의사소통 수준을 높이고, 자율성과 협력을 적절하게,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사무소 직원들 모두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경험을 늘려가고, 자신만의 고민과 동료들과 선배들의 협력과 조언 속에서 프로젝트를 완성해내는 겁니다.

이걸 잘해내게 쿨하스가 운영하는 거고요.(심지어 이런 식의 운영에서는 쿨하스 사무소 특유의 색채가 결여될 수 있을 거고, 고객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난 쿨하스에게 의뢰한 건데 왜 저런 잡놈들이 설계하냐는 식으로 말이죠. 쿨하스는 이를 정말 천재적으로 해결합니다. 특정한 외관 양식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쿨하스 건물답게” 외관을 꾸밀 수 있게 했거든요. 미친놈입니다ㅋㅋㅋㅋ)

말이 좀 길어졌지만, 다 중요한 얘기였습니다.

쿨하스는 XL 세상에 맞는 건축이 어떤 것인지 이론적으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쿨하스는 적어도 M 스케일의 관점 이상을 볼 수 있게 노력하며 더 큰 스케일의 건축으로 나아가고 있죠.

M 사이즈로 세상을 보면 건축가는 할 일이 없습니다.

XL 사이즈의 논리에 매몰될 겁니다.

의뢰인들이 XL 세상에 사는데 어쩌겠어요.

이걸 부정하면 구마 겐고처럼 그 누구도 살 수 없는 건물이나 만드는 거죠.

그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을 거고, 수십억 인구가 살 수도 없는 의미 없는 무엇인가니까요.

쿨하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축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답변을 내놓아요.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으로 말이죠.

공공성은 중요합니다.

말로는 다들 그렇게 떠들며 환상 세계에서 공공성을 실현하는 건축을 내놓죠.

하지만 그런 치들은 예산이 매우 한정적이고 의사결정이 어려운 공립 도서관들을 지을 생각을 안 합니다.

돈도 마음대로 못 쓰고, 자기 마음대로 지을 수도 없는, 그래서 커리어에 도움도 안 되고, 돈도 안 되고, 스트레스는 많이 받는 의뢰는 거절하는 거죠.

쿨하스는 저런 치들과 이런 점에서 다릅니다.

필요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프로젝트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기술로 건축을 활용하니까요.

쿨하스가 위대한 건축가인 것은 바로 이런 “기술자”여서입니다.

쿨하스가 절망하지 않고, XL 스케일의 세상에 맞설 수 있는 것도 이런 기술 덕분이고요.

 

재미난 것은 이런 쿨하스의 이념이 M 사이즈 건축의 아버지 알베르티와 통한다는 겁니다.

겐고야 역사도 사상도 모르니 읽어보지도 않고 알베르티를 비난하지만, 알베르티야말로 쿨하스적인 건축의 아버지입니다.

겐고는 알베르티가 기술도 모르면서 기술자들을 지배하려고 했던 인문주의적 광신에 사로잡힌 통제광이라고 비난하는데, 이건 단 하나도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물론 알베르티는 겐고가 주장하듯 견고한 건물을 세우려했습니다.

그런데 알베르티가 그런 건물을 지은 것은 겐고의 뇌피셜과 달리 통제욕 때문이 아닙니다.

알베르티가 견고한 건물을 세우려고 한 이유는 바로 그게 의뢰자들의 꿈을 실현시키기 때문이었습니다.

건물을 세우는 일에 항상 건축가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겐고의 이상인 그런 천막은 건축가가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냥 집을 만드는 정도의 정착에도 건축가는 필요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정착하는 일에는 건축가가 필요 없다는 얘깁니다.

그냥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거든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보여주듯 매우 잘, 유기적이고 기능적으로 놀라운 방식으로 마을은 “성장”합니다.

건축가가 필요해지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 이상이 필요할 때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 “우리의 도시”를 세우려고 할 때 건축가가 필요한 것이죠.

이 땅에 모여 살게 된 사람들이 미래를 꿈꿀 때, 이 땅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지켜내고 싶을 때, 이 땅을 대대손손 물려주길 바랄 때, “우리”가 세운 “우리의 도시”가 세상의 풍파를 견대내고 시민들의 터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때, 그 때 건축가가 필요해지는 겁니다.

알베르티가 공화주의의 언어로 건축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자주 강조하듯 공화주의는 유지보수의 정치를 위한 이론이었죠.

알베르티에게 건축학은 공화주의 사상의 연장입니다.

유지보수의 정치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세우고, 이를 지켜내는 일을 건축이 수행하는 거니까요.

알베르티에게 있어 건축학은 유지보수의 정치를 위한 인프라 이론이었습니다.(알베르티가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습속 분석에서 자신의 건축학을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건축가가 건물을 세우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인 것이고요.

애초부터 알베르티는 시민의 관점에서 생각했습니다.

건축가가 나서는 것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에요.

시민들이 필요한 것을 그냥 할 수 있으면 필요없겠죠.

그게 아니니 필요한 겁니다.

필요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꿈을 현실화하는 기술자로서 필요했던 거에요.

알베르티는 기술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알베르티가 기술자를 폄훼했다는 것은 진짜 근거 없는 소리입니다.

알베르티는 기술자를 존중했고, 그들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어요.

기술이 부족하다면 건물이 무너질 테고, 시민들의 꿈도 무너질 테니 말이죠.

건축가는 물론 건물을 세우는 기술자가 아닙니다.

다른 기술자죠.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기술자와 시민들을 연결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기술자인 것이죠.

알베르티의 이념은 쿨하스의 이념과 다르지 않습니다.

둘 모두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공간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 공간을 세우는 일은 겐고의 건물 같을 수가 없어요.

그 건물을 튼튼해야합니다.

그 공간이 소중한 만큼 그 공간은 쉽게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공공성”은 쉽게 실현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참여하고 이어가야만 실현될 수 있죠.

근데 그런 일은 힘들어요.

공공성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 잘 실현되지 않는다고 사람들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게 대단한 거지, 못 해내는 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니까요.

진정으로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공공성이 실현되길 바란다면, 실패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수 있게, 조금 더 쉽게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야죠.

알베르티에게나 쿨하스에게나 건축가는 이런 일을 돕는 기술자입니다.

이를 잘 해는 일은 그렇기에 강할 필요가 있어요.

무턱대고 강하고, 무턱대고 이기면 당연히 안 되지만요.

충분히 약하고, 충분히 저야합니다.

하지만 그게 약함 자체를 위한 약함 패배를 위한 패배여서는 안 됩니다.

태풍을 이기는 갈대의 지혜처럼, 강하기 위해 약해질 줄 알고, 이기기 위해 질 줄 아는 일이어야하죠.

겐고는 이런 지혜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건물을 내놓고, 그 누구도 의뢰하지 않을 장난감을 내놓는거죠.

결국 갠고는 건축학의 존재 이유를 잊었고, 건축학을 배신했습니다.

인프라를 세우는 일이란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있죠.

그러니 이동식 천막에 열광하고 있는 거고요...

 

 

 

유지보수의 정치와 인프라 문제를 연결하려고 했던 게 원래 의도였던 것 같은데...

잘 연결한지 모르겠네요ㅋㅋㅋ

이게 왜 생각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고요.

하여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