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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피터 게이, <바이마르 문화>, 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바이마르 시대를 폭넓게 다루는 책이라 기대가 컸는데 좀 많이 실망스럽다. 게이는 정말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가 필연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누구보다 망하길 염원하는 듯... 정말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이 따위로 쓰진 못했을 것이다. 내부자가 된 외부자들만이 아니라, 외부자가 된 내부자들을 위해서도 책을 쓰게 되었을 테니. 게이가 강조하듯 바이마르 공화국은 유대인들 것만이 아니었다. 바이마르는 어쨌든 “독일”이었으니까. 때문에 바이마르가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외부자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내부자들 위한 것이기도 했어야만 했다. 타우베스가 지적했듯이 유대인들을 내쫓는 데 기여를 한 독일인들, 예컨대 하이데거와 슈미트는 독일인이면서도 바이마르 공화국에 의해 주변으로 몰린 독일인이었다. 결국 그들이 악마가 되게 만들었던 그들의 열등감, 그들의 절망감, 그들의 시기심을 부정하고선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체는 드러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게이는 그런 짓을 하고 있다. 그껏 모더니즘 조류가 독일 전체를 어떻게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난 도저히 모르겠다. 게다가 언제나 비난의 화살을 독일인들에게 돌리는데, 그렇다면 독일인들은 애초부터 글러 먹었 게 되지 않나? 독일인들이 모더니즘으로 개종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숭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래놓고선 실패는 필연적이지 않았다고 공염불을 외는 건 뭔 개같은 소리인지. 게다가 게이의 피해의식에 진절머리가 난다. 피터 게이와 동갑인 타우베스는 자신을 피해자로 내세우지 않는다. 실제로 23년생들은 대체로 박해를 피했기 때문.(타우베스는 자신의 망명을 커리어 이동으로 서술한다!) 그런데 게이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자기 자신의 취향—모더니즘—을 지속적으로 강요한다. 도대체 이게 뭔 짓거리인지... 타우베스가 자신을 피해자로 내세우지 않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박해를 피해서가 아니다. 비록 자신은 박해를 피했지만, 진짜 피해자들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자신을 피해자로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고난 따위는 그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그들의 고난에 비한다면 사소한 자신의 고난을 늘어놓는 일이 진짜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일처럼 여겨졌기에 피해자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당장 박해의 주인공이 된 카시러도 게이처럼 피해자스럽게 진술하지 않는데 게이는 도대체 뭘 당했다고 나대는지 모르겠다. 자기애 과잉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상상 속에서 이상화된 자신 만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세워놓고, 독일인들을 그 상상의 나라에서 축출하며 즐기고 있는 꼴이다.(솔직히 좀 역겹기까지 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문화, 특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회상을 살펴보고 싶었고, 관련된 자료가 있어서 읽었는데 진짜 이건 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을 사랑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쓰지 못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미워했던 이들까지 포괄할 수 있는 책을 내놓아야만 있는 그대로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사랑하는 것이 될테니까. 그리고 그제서야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는 필연적이지 않았다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미워했던 이들 또한 정말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민이었다고, “그들”도 “우리”였기에 실패를 피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를 쓴다면 이렇게 쓸 것이다. 고문집행인이 아니라 청혼자로서.

 

요즘 읽은 책들 중에는 이상한 게 좀 많은 듯... 계속 비난하게 된다...

욕할 게 없는 좋은 책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