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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일반의지 2.0

아즈마 히로키 본인이 "이 책(일반의지 2.0)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후속작"이라고 말하기에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또한 읽어보았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고등학생 시절 오타쿠와 서브컬펴 문화에 관심이 있을 때 한번 본 적이 있는 책이었다. 다만 그 때는 지금처럼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본적이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보니 새로운 내용이 많이 보였으며, 꽤나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중심주장은 매우 단순하다. 새로운 문화(애니메이션 혹은 오타쿠 문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는 과거와 달리 그것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거대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거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보통 거대담론이란 표현으로 말하는 것으로, 일종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이데올로기'가 정말로 어떤 것인가? 근대 이전에 이데올로기가 존재했는가? 근대에 정말로 이데올로기가 존재했는가? 따위의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 일단 이데올로기가 정말로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몇가지 언급을 하자면, 그리스 신화에 대한 고대인의 태도(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에 등장하는 중심 문제)가 이데올로기로 정형화될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리스 인들은 신화를 믿으면서도 의심했으며, 어쨌든 그러한 이야기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하였고(물론 그러한 비판적 자세가 역사가들의 작업은 아니었다는 것이 지금과 다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현대에도 많이 드러나는데, 예컨대 합리적인 의사가 일상생활 속에서는 민간요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민간요법과 현대의학은 충돌하겠지만, 그것들이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맥락적인 상황에 따라 사용이 결정되는 것이다 보니 그것들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 즉 프로그램 내부의 모순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프로그램들 간의 모순이라면 프로그램들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가 현대가 근대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큰 착오일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예를 중세의 것도 들 수 있다. 예컨대 TO맵에 대한 중세인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시간과 공간의 분할, 지구의 둥긂 등을 몰라서 TO맵을 만든 것이 아니다. TO맵은 성경이 말하는 이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는 개념도였던 것이다. 당대의 실용적인 항해도는 당연히도 지구가 둥글다는 가정 아래에서 작성되었으며, 위도와 경도를 통해 세계를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었다. 이를 미루어보았을 때, 지도라는 것에 있어서도 다른 진실 프로그램을 가지는 지도들이 서로 다른 것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자유로움이 현대에는 과학에 의해 봉쇄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느시대에 지배적인 중심의 역할을 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 허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잡설이 길었다. 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나의 의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아즈마 히로키의 원래 의도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근대의 이데올로기가 붕괴하고 포스트모던의 양태를 드러내는 것이 오타쿠 문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타쿠 문화에는 그것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것이 단일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데이터 베이스화 된 데이터들의 탁월한 사용에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오타쿠 문화에서의 서사는 감동을 주지만, 단순화되며(즉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모에 요소에 반응하도록 강화(reinforce)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자극에 대한 반응의 양상으로 동물화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히로키가 주장하는 재미난 주제들은 여럿이다. 전후의 애니메이션 문화에서 그들은 패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메이지시대부터 전쟁까지의 시기를 부정하고 에도시대적 요소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미적 특징이 에도 시대의 미학을 반영하고, 그것을 계승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인해 일어난 부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서브컬쳐와 우파적 사고의 연관성 또한 언급하는데 이 부분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고, 몇가지 기억으로 미루오 보았을 때, 아즈마 히로키 본인도 정확히 진술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한국의 서브컬쳐 문화가 좌파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애초에 문화와 정치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히로키가 말하는 "동물화"로 설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조금 있다가 우리나라의 현상을 설명할 때 다루도록 하겠다.


일반의지 2.0은 동물화된 시대에 가능할 정치체계를 제시하려고 한다. 그는 이러한 근거를 루소로부터 따온다. 히로키에 따르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는 단순한 의견의 총합과는 다르다. 이는 '여론'으로 불리며 일반의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루소는 개인주의적이며, 그들간의 소통을 전제하지 않고 그 자체로 있는 의지들을 일반의지로 다루고 있다. 히로키는 이러한 일반의지가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의미의 총합이며, 현대의 기술로는 반영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의지와 여론의 차이가 중요한데, 여론은 방향성이 제거된 채로 종합된 특수의지의 총합이지만, 일반의지는 방향성을 반영하여 종합된 특수의지의 총합이다.(사실이러한 방향성이 어떻게 반영되는 것인지 나는 불명확하게 이해하였다) 어쨌든 아즈마 히로키는 일반의지를 특수의지들이 소통을 하지 않고도 발견될 수 있는 수학적 존재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소통을 부정한 것은 핵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히로키에 따르면 아렌트나 하버마스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것은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시민을 발명해야한다에서 나오듯, 정치를 갈등 조정으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소통 가능성을 정치적인 것의 전제조건으로 둘 수밖에 없다. 또한 소통을 전제하지는 않지만,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슈미트의 개념 또한 히로키의 일반의지 해석과는 충돌한다고 히로키는 말한다. 히로키는 일반의지를 기록의 해석을 통해서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현대는 대부분의 정보를 기록하여 관리할 수 있는 총기록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을 빅데이터로 활용하면 일반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좀 의심이 드는 점은, 그가 이러한 기법을 통해서 힘들게 일반의지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해놓고선, 결국 정치를 숙의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TV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정치인들 혹은 토론자들이 즉각적으로 사회의 분위기를 읽으면서도 토의할 수 있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단순한 투표나, 대중영합주의와는 다른 구조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이 단순한 투표나 대중영합주의와는 다른 구조라는 것은 중요치 않다. 루소에 따르면 일반의지는 틀릴 수 없는 것이며, 히로키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히로키는 일반의지를 따르는 것이 극단적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것을 콘트롤하는 것으로 주장을 전개한다. 그런데 일반의지가 근본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정치인과같은 대리인은 존재할 필요가 없고, 일반의지가 그대로 따르기 어려운 것이라면, 그것을 따라야할 이유가 불명료해진다. 도대체 왜 일반의지를 제시해놓고선 그것을 따르는 것을 제한하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히로키의 독특한 프로이트 해석으로 인해 이러한 입장이 제기된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일반의지는 리비도이며, 이것들을 잘 풀어내야지 강박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리비도를 통제해야만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일반의지는 정치적인 원동력이라기보다는 통제되어야할 에로스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잘 풀어 삶을 잘 조직하는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우리 행동, 무의식의 가장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추구한 것이었다. 내가보기에 히로키는 욕망에대한 또다른 통제를 통해서 사회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로 "일반의지"를 따르는 것인가? 또 다른 통제사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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