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 김경만
책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생각한 게 많다보니 정리가 안 된다. 일단 생각나는 것만 적고 중간중간에 추가할 예정이다. 서평을 써야만 했다면, 몇 번 더 읽어보고 형식을 갖고 쓰겠지만, 가볍게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적도록 하겠다.
책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못 외웠었다. 이때까지 사회학을 배운적이 없기 때문에 제목의 표현들은 모두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전문적으로 보이는 제목과 달리 어렵지 않으며, 경험적인 진술들로 서술되고 있어서 읽기 어렵지 않다.
먼저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우리는 항상 지식인들에게 현실적 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시사점을 제공하길 요청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경만은 단순히 이론-실천의 단절만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고 말하지도 않으며, 이론-실천 자체를 매도하고 있지는 않다. 그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까지 이론-실천적 담론에 반하는 성향을 가진, 이론지향적 학자가 학계에서 매도되는 일이 빈번하며, 이론-실천을 핑계로 제대로 된 이론적 배경없이 미디어 권력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한 이가 다시 학문적 권력을 가지는 현재의 구조는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한 이론-실천 구조와 더불어, 탈-식민주의적 관점의 강요로, 한국의 고유한 전통을 지닌 이론에 대한 요청은 빈번하며, (그러한 탈-식민주의적 관점자체가 서구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서구적 이론을 기반으로 한 연구들은 서구 이론의 매판도매상이란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김경만은 미국의 대학에서 한국을 대상으로한 서구이론을 논문으로 쓴 학자들이, 국내에서는 서구의 이론은 한국의 현실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할 수 없으며, 서구 이론에서 벗어난 우리 전통의 이론을 구성해야된다는 주장은 모순적이라 주장한다. 왜냐하면 서구이론은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지는 당위적인 형태로 검증불가능한 것이며(또한 그는 이 책에서 부르디외의 이론이 얼마나 한국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 의도한다), 본인이 그것이 가능한 것을 전제로 서구 이론을 이용해놓구선 이제와서 다른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전통을 살린다는 것 또한, 서구의 개념을 우리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식의 저속한 방법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방향으로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만의 학문을 정초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글로벌 지식장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리그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리그의 룰을 따르며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른바 보편적) 이론을 형성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지식장에 속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성과도 글로벌 지식장에 영향을 끼칠 수 없으며, 그것은 결국 우리만의 이론이 보편성이 없는 이론으로 전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만은 상징폭력이란 것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며, 우리가 형재 상징폭력의 주체로 여기는 부르디외 또한, 미국적 사회학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그들의 방법론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에 지식장의 상징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예로 들며, 우리 학계가 나아갈 방향은 상징권력의 적극적 투쟁이라 제시한다.
1부의 1,2,3장은 실명언급을 통해 기존의 우리학계의 고질적 문제점으로 지적한 이론-실천 지향성, 탈-식민주의적 사고를 위한다는 이름아래에 이론적 토대없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행태, 유학 등을 기초로한 체계적이지 못한 진술에 대해 비판하다. 이 장들은 단순히 과거를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학계의 비판적 토론을 제기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보이는데, 비판의 대상들이 학계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는지 몰라 이 작업이 얼마나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은 당연시할만한 내용이라, 현 학계에 얼마나 '문제적'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끼는 매체-정치-학계의 결합적인 차원에서는 시의성이 있다고 본다. 일단 위의 언급된 세가지 형태의 사이비 인문학 서적이 자주 회자되는 것을 보았으며, 그러한 행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최재천에 대한 비판이 공적인 영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경만의 책과 '통섭과 지적사기'정도가 최재천을 직접적으로 경향한 비판서라 할 수 있겠다. 다만 김경만이 예시할 때 갖는 '-식탁류의 책' 자체가 문제를 갖는지는 꽤나 의문이다. 나는 '-식탁'류의 책들이 일종의 권력을 갖는 것이나 잘못된 것을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나, 사실상 '-식탁'류의 책의 원조 격인 '다윈의 식탁'은 과학철학 전공자들도 꽤나 추천하는 입문서로 김경만이 제기하는 '내용상의 오류 문제'등의 여지가 매우 적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주석이 분명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입문서에도 주석을 요구하는 것은 서구 학계에서도 통용되고 있지 않을 뿐더러, 내용의 출처를 어느정도 선에서 정확히 언급한다면 그것을 표절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실제로 '다윈의 식탁'은 각 이론의 주창자를 토론자로서 가정하고 그 이론을 제시한 책과 함께 이론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다윈의 식탁은 다수준선택론에 대해 토론자로 소버가 등장해 자신의 저서 '타인에게로'를 언급하며 다수준선택론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존의 이론과 다른지를 본인의 입으로 설명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여기서 그러한 이론의 내용이 장대익의 고유한 주장이라 여길 독자는 없을 것이며, 만약 사실 문제를 확이하고 싶거나 더 궁금하다면 해당 저서를 읽으면 될 것이다. 굳이 주석의 형태로 '다윈의 식탁' 출간 당시 번역되지도 않았던 '타인에게로'의 페이지까지 적어서 담는 것이 김경만이 제시한 문제를 해소하는데 얼마나 큰 차이를 갖는지 의문이다. 김경만이 최재천의 몰-인문학적인 주장을 인문학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식탁'류에 대한 잘못된 준거의 틀을 만들어 낸듯하다. 실제로는 '다윈의 식탁'은 서울대 과학사-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이보디보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대니엘 대닛 아래에서 연구를 한 장대익의 저서이며, 김경만이 주장한 책들과는 그 깊이가 좀 다르다. 차라리 그냥 사이비 인문서라 했으면 굳이 이런 코멘트까지는 안 하고 맞다 생각했을텐데, 괜한 언급으로 (사실 식탁류라고 하는데 식탁이란 표현이 들어가는 책 또한 드물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과, 최재천의 통섭의 식탁뿐이다.) 사족을 만든듯 하다. 하지만 김경만의 주장대로 미디어에서 최재천의 영향력이 꽤나 크게 작용하는 예가 있었다는 것과, 그가 정치적 자리에 오른 적 있으며, 꽤나 학계에서 중심권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은 주지할만하다. 그러한 비정상적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은 백번 납득할만하다.
또한 내가 이 부분에 추가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글로벌 지식장의 규칙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지 않으려는 주장 이면에는 한국 학계의 불합리한 평가방식에 대한 주장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김경만은 지적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글로벌 지식장에 준거하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이유 중 가장 시급한 것은 현재 제대로된 평가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지배받는 지배자에서 지적했듯이, 현재 미국 박사학위가 한국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은 그것 왜에는 제대로된 평가 기준이 없기 떄문이기도 하다. 김경만은 자신이 해외에서 상징권력을 어떻게 쌓아갔는지는 설며아지만, 그렇다면 본인처럼 한국 학계와는 동떨어진 인물이 서강대라는 학교에서 교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글로벌 지식장에 나가기 이전에 우리 학자들은 우리 학계에서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과 이 사회에서 학문을 지속한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듯 하다. 내가 보기에 김경만의 글로벌 지식장에 상징권력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적 상황과 결합했을 때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서 김경만처럼 단순히 해외 의존적인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그것은 현재의 기형적 양적 학문 평가와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의 지식장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2부의 내용은 김경만 본인이 상징권력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모든 내용은 전적으로 글로벌 지식장(미국 학계)에서 일어난 것으로만 한정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학계와의 연결이 더욱 주장을 공고히 할 것이라는 비판과는 별개로 이 파트는 꽤나 흥미롭다. 일단 학계의 구조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어떻게 학자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구성해가는지 꽤나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처럼 지식사회학 등에 관심이 어느정도만 있다면, 70년대부터의 이론 사회학 계의 상황에 대한 김경만의 서술은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기존의 경험주의 사회학과 스트롱 프로그램의 대두,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판은 꽤나 흥미로운 역사이며, 그 과정에서 김경만이 언급한 인물들의 역학은 흥미로워 보였다.
그리고 알라딘 서평 중에 꽤나 진중하게 비판한 내용이 있어서 이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보면 김경만이 사회학자들만을 위한 사회학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사회학이 의례적 행위로 격하되는 것은 부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러한 비판은 제대로 된 비판이 못된다고 본다. 김경만의 요구는 이론 사회학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며, 이론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생기는 회의적 입장을 극복하는 것은 실천적 영역을 중시하려는 사회학자에게는 큰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무시하고 사회학을 활용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이는 이론적 토대가 부족한 것이며, 김경만이 제시하는 사회학자들만의 사회학을 구재하고 싶다면 그 틀을 깰 대안을 제시해야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김경만은 단순히 실천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어려움이 내재해있음을 알고 행동하길 바라는 것이고, 한국 사회에 있는 반-이론적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서 주장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그가 말하는 하버마스-로티 논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의 언급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둘의 논쟁은 이론적인 영역 전체를 아우르는 인식론적인 문제 같은데, 김경만은 이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사회에 적용하는 부분만을 논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사례가 무엇인지는 감이 오지 않는다. 단순히 이론의 구체적 실례는 아닌듯 한데 이 부분은 주문해서 기다리고 있는 그의 다른 책인 '진리와 문화변동의 정치학'을 보고 코멘트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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