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최근들어 가벼운 인지능력 저하를 느껴 정말 이러다가 읽은 책도 기억 못하게 될 것 같아 부랴부랴 서평을 쓰게 됐다. 리처드 니스벳 책 이전에 읽은 좋은 책들도 많았지만, 철학책에 대해 글을 남기려니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어서 이 책을 먼저 쓴다.
리처드 니스벳은 선천적 지능론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있다. 예컨대 '지능의 사생활'처럼 지능을 선천적인 것으로 다루며 그들의 차이가 유전적인 것에 기반한다는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니스벳이 지적하듯 최근 심리학자들은 (학업성취의 영역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지겠지만) 지능에 대해서는 선천적으로 결정되며 이는 유전적인 차이 때문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능관은 결국 우리의 학업성취나 사회적 성공 등이 지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유전자 결정론적 시각을 함의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 자체가 비난받아야만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우리가 갖고 있는 한 가지 상식에 어긋난다. 유전자 결정론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하는 교육들은 무용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떠한 교육법을 하는 것이 그 아이가 더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헌신적인 선생 아래에서 배운 아이들이 더 똑똑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능은 유전적인 것인가 환경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것인가?
니스벳은 양자택일적 답변을 피한다. 그는 분명히 유전적으로 지능이 결정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점은 이것이다: 유전적으로 지능이 결정되는 것은 환경이 동일할 때이다. 니스벳은 우리의 지능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환경이 만들어내는 그러한 차이들이 사회적으로 상위층과 하위층을 차이낼만큼 유의미한 수치라고 말한다. 우리가 만약 부자들은 똑똑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멍청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지능의 차이를 구별지을만큼의 차이는 환경에 의한 것이며, 충분히 개선가능한 것이라는 게 니스벳의 주장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동등한 환경에서 자랄 경우 다른 아이들과 지능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하층민들이 그들의 유전적 특징 때문에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지난 세기동안 미국인의 지능이 급격히 성장했으며, 특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문화 독립적이며 선천적이라고 여겨지는 유동지능이 급격히 성장했음을 보여줌으로써, 문화독립적이며 선천적인 지능론이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우리의 지능은 환경적 조건에 의해 크게 증가 가능하며, 그것은 '연산'처럼 배우기 어려워 보이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임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천적으로 아이들의 지능이 결정되어있다고 볼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기회를 얻으면 지금과는 달리 그들의 계층과 상관없이 자신들이 발전할 수 있는 만큼의 지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두가 '동등한 환경'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개선한다면 많은 사회전반적으로 지능을 끌어올려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의 지능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짐으로써 자신들의 발전가능성을 한계짓는 아이들이 줄 수 있다.
때로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사실보다 큰 힘을 가질 수가 있다. 지능이 그러한 경우이다. 지능 그 자체는 선천적인 영역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있으며 그것이 동일한 환경에서는 꽤나 큰 영향을 발휘한다. 하지만 자신의 지능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자기화하는 순간부터 그의 지능은 발전불가능하게 된다. 자신의 지능이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자신의 지능을 발전시키는 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즉 우리가 우리의 지능에 대해 갖는 태도가 우리의 지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관점을 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유의미한 일이며, 노력이 성취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충분히 중요한 일이 된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사실 저자는 말콤 글래드웰(아웃라이어로 유명한다)과 유사한 관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지적 성취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은 노력집약적인 환경이며, 사실 이러한 사회구조는 우리나라가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니스벳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하위 10%와 상위 10%의 지능차이가 가장 적게 나는 국가이며, 실패를 겪으며 오히려 더 노력하는 유형의 노력 문화가 있는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며, 심지어 그들의 지능에 비해 과잉성취한 것이다.(물론 이러한 성취는 동아시아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도 혐오하는 노오오력하는 문화가 얼마나 위대했던 것인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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