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도덕의 계보학에서 비극의 탄생으로

도덕의 계보학을 보고 난 후 습관처럼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덕의 계보학을 읽는 일이 끝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덕의 계보학은 웃음을 유발하는 즐거운 유희거리이긴 했지만,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덕분에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 그 페이지는 나에게 있어 마지막일 수 없었고, 니체의 다른 책인 비극의 탄생에 손이 갔다.


비극의 탄생의 서문, 자기비판의 시도를 읽던 중 한 가지 단상이 떠올랐다.


도덕의 계보학에서는 꾸준하게 생리학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니체의 생리학은 어떨 때는 최신의 것처럼, 어떨 때는 아득한 옛날의 것처럼 진술한다.

진화론과 체액론이 19세기에는 멀지 않은 조합이긴 했지만(어떤 이는 진화를 가능케하는 '유전자'를 체액에서 찾기도 했다), 니체의 최신의 것과 옛날의 것의 결합이 당대의 유행으로 치부하긴 어려운 면도 있다.

스스로를 반시대적이라고 규정하는 이가 유행을 쫓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니체는 진지하게 생리학을 말하며, 그것은 실제로도 최신의 학문이면서도 아득한 옛날의 그것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니체는 그것을 규정내리지는 않는다.

심리학적인 것을 분석할 때처럼 그것에 대비하여 몇몇 분석을 조각조각 던져주곤 한다.


나는 도덕의 계보학을 읽을 때 도대체 니체의 생리학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기비판의 시도를 읽으면서 그것이 어떤 동기에서 등장한 단상인지는 알 것도 같다.


현대인이 무엇이든, 자본주의가 도대체 무엇이든, 우리는 병들어있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학적인 체계이론과 급진적인 예술운동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것들이 결국 병을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맑스주의도, 낭만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다. 병의 치료.

그러나 니체는 맑스주의와 낭만주의의 실패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실패는 그들의 근본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의 원인을 파악해야한다.

하지만 그들은 병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소외와 그것으로 비롯된 고통만을 파악했을 뿐이다.

니체는 그것들의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다.

소외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라는 물음을

소외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바꿔가며.


니체의 생리학은 체계이론도 예술이론도 보지 못한 근본적인 지점을 파고들어간다.

도대체 병은 무엇이며,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술성과 문자성, 매체혁명  (0) 2018.06.03
에코 "중세의 미학"  (0) 2018.05.25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일반의지 2.0  (0) 2016.07.31
흑사병의 귀환  (0) 2016.07.23
리처드 니스벳 - 인텔리전스  (0) 201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