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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하엘 슈톨라이스 – <독일 공법의 역사>

이것도 카톡 복붙


제 기억으로는 M 샘이 이 양반을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양반은 18세기 후반 철학 문헌들에서 다뤄지는 “국가이성”, “법과 도덕”에 대해 박사논문을 썼는데, 아마도 이 작업 덕분에 18세기 연구자들에게도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번역된 책은 세부적인 부분들을 거의 스킵하고 있어서, 아쉽지만 연구에 큰 도움이 되긴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도 교양 입문서로는 훌륭한 듯한데... 문제는 번역입니다.

이 책은 축약본이고, 그래서 많은 내용이 매우 압축적으로 짧은 문장으로 서술되는데, 번역이 이를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문장들의 양상, 늬앙스가 많이 뭉개지고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

사실 번역 수준 자체는 수준미달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책 특성 때문에 문제가 좀 심각해진 경우 같습니다...

 

이 책은 자세하게 사례 분석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 저자가 전제하고 있는 주장들을 소개하기 위해서 제가 알고 있는 사례를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 책은 “독일”의 “공법”에 대한 책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법”이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냐는 것입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로마법에서 공법과 사법은 현대에서처럼 딱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구별은 되지만, 경계가 모호하죠.

뿐만 아니라 합의/배상 가능성을 기준으로 사법을 구별해낼 경우, 당시의 공법과 사법의 경계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괴상합니다.

예컨대 “저주” 같은 게 공법에 해당되기 때문이죠.

저주 같은 게 공법에 해당된 것은 당대의 종교관 때문이었습니다.

저주는 공동체에 위험을 초래하는 행위라 당사자들 사이의 문제로 여겨질 수 없었습니다.

저주가 초래할 위험은 공적인 의례를 통해서만 방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플라톤의 <에우튀프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살인 사건은 “바실리우스”의 중요한 업무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인간들의 생명이 존엄하고 이를 훼손한 게 사악한 행위라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살인 사건은 공동체에 “저주”나 “전염” 등을 초래하는 활동이었고, 바실리우스를 주관으로 수행되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정화”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이었죠.

<에우튀프론>에서 에우튀프론이 아버지를 고소하는 것도 바로 저런 종교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해당 사건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특이한 일이고, 여러 모로 바실리우스가 처리해야할 사건으로 보기 어렸습니다.

그런데도 에우튀프론이 이를 확신하는 것에 대해서 소크라테스가 의문을 표하는 것이죠.(생각보다 에우튀프론은 멍청한 인물이 아니고, 강성훈 샘이 지적하듯이, <에우튀프론>의 결론은 경건은 경건하기 때문에 올바른 것이 아니라, 신이 명했기에 올바른 것이 옳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중세에는 반대로 공법임이 분명해보이지만, 사법으로 여겨진 것들이 있죠.

예컨대 영토는 명백히 국가적인 문제였지만, 중세에는 이것이 왕 개인의 사적인 재산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사법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니 분할 상속이 가능하고, 특정 지역을 분리하여 “판매”, “저당” 등이 이루어진 것이었죠.

물론 필요에 의해 “불가분”의 원리는 이른 시기에 도입되지만, 문제는 이런 것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미하엘 슈틀라이스는 이런 문제를, 즉, “공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는 활동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탐구하고, “국가이성”, “자연법”, “국정” 따위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결국 문제는 단위체 구축이고, 그 단위체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조건과, 해당 단위체에서만 수행될 수 있고, 수행되어야만 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자가 이를 다루는 문제가 도대체 국가란 게 무엇인지를 다루는 문제와 다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고요.

왕에게 영토가 귀속된다고 할 때에도, 그것에 대한 특정한 개입에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바이에른 지역에서 특정 계급으로부터 세금을 부과하려고 할 때, 무엇을 근거로 세금 부과가 가능해지는 꽤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적당한 법원천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어떤 법을 따르느냐에 따라 합법과 불법이 결정되는 사안이며, 어떤 법을 따르는지는 사소한 문제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파는 오래된 법이 우월하다는 원리에 따라 로마법의 우선성을 주장했고, 개신교 파는 신법이 구법을 폐지한다는 원리에 따라 황제 명령의 우선성을 주장했죠.

그렇기에 해당 사안은 법학 원리의 문제이면서도,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공법의 구체화가 공적인 것, 국가적인 것의 구체화이기도 했다는 것을 잘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는 단순히 그 이전의 전통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도 잘 보여주고요.

공적인 것들을 구별해내고, 이에 대한 일관적인 체계를 창안해내는 일은 당연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대인들에게 <정치학>은 경전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으로는 당대에 요구되는 구체적인 구별과 독자적인 질서 확립이 불가능했거든요.

저자가 지적하듯이, 당대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작업이 “불충분”하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자연법”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때부터 ‘자연법’을 언급하는 문헌들이 있었고, 근대법학자들은 그것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대나 중세의 논의들로는 당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근대인들은 당연히도 전통적인 자연법들을 참조했고, 많은 부분을 차용했지만, 자연법을 통해서 설명해야하고 정당화해야하는 문제들은 완전히 달랐던 것이죠.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는 근대의 “자연법칙”이 그 이전의 “자연법”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고요.(저자도 이를 직접 언급하고, 근대 자연과학의 “자연법칙”을 모범으로 삼아 근대 자연법학이 창안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세부 사항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 경우 이런 주장은 당연히도 좀 찝찝함을 남기는데, 저자가 멍청한 사람이 아니니 허황되게 생각하고 있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국가이성”, “자연법” 등으로 얘기된 단어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가지고 법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개혁하고, 변경하는지, 법학을 어떤 식으로 정당화하고, 그것의 “일반성”을 확보해내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죠.

저자는 이를 잘 알기에 당대 법학자들이 어떤 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를 꽤나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이고요.

 

“국정”에 대해서는 별도로 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제가 ‘국정’이라고 번역한 것이 번역서에서는 ‘치안’으로 번역됩니다.

원어는 ‘policey’라는 단어고요.

미하엘은 공법의 구체화에 “Gute Policey”란 용어가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Gute Policey’는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훌륭한 질서”의 번역어였습니다.

‘Policey’라는 단어는 ‘oeconmy’와 비슷하게 쓰이며, ‘Hauspolicey’ 등으로 가정술의 의미로도 사용되었죠.

저런 책들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이 다뤄집니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의 이상적인 모습과 서로 존중해야하는 영역 구별이 설명되는거죠.

마찬가지로 저게 정치로 확장되면서, 국가에서 수행해야하는 업무들이 나열되고, 그것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행정법”이라는 영역이 생겨납니다.

저자는 이런 것들이 “국가”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업무를 규정하고, 그것의 한계를 규정하는 일이기도 했고, 이러한 활동들을 구별해내야지 “국가”에 대해서 제대로 논의될 수 있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일단 국가들이 구별되고, 각각이 존중받아야 할 영역이 정해져야 국제법이 의미가 있듯이(실제로 국제법 얘기를 하며 저자는 이것이 중요했고, 그래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중요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이를 단순 “사상”으로서의 중요성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지적하듯, “법전”이란 게 없는 상황에서 독일 전역에 통용될 의미가 있는 문서라고는 “금인칙서” 뿐인 상황에서, 황제선출이라는 드물고, 대체로 크게 와닿지 않을 문제를 다루는 문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들에 효력을 발휘할 문서로 저게 등장한 게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당 문서가 바로 “기초법률”이라고 불리면서 금인칙서 다음의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여겨진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고, 로마법을 매개로 한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서를 통해 “공법”의 영역을 실험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이 문서 덕분이었던 것이죠), 국가가 수행해야할 “행정들”을 목록화하고, 이를 처리하는 관료제 및 행정제도 전반을 확립하게 한 것이 바로 “국정” 개념 덕분이었다는 것이죠.

 

책은 요약정리가 잘 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문제 같습니다.

저런 사안들 하나 하나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데 말이죠...

뭐 애초에 그런 책은 이미 내놓았고, 이건 대중을 위한 축약본인 것이라 문제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걸로 사람들이 저런 사안들의 중요성을 제대로 의식할 수 있을지 전 의문이 듭니다ㅋㅋ

하여간 헌법(Verfassung 및 constitution 모두), 행정, 공법, 국가, 국가이성, 자연법 등이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며 특정한 영역을 구축하고, 이를 조작하는 담론 체계를 성립시켰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의, 그것을 잘 설명해주진 않는 저작이라 생각합니다ㅋㅋ

그래도 “헌법” 등의 용어 사용이 언제부터 어떤 의미를 가졌고, 그때, 공법 일반에서 해당 영역을 어떻게 구별했는지 따위의, 정말로 법학을 잘 알고, 그러면서도 역사 연구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집어내지 못할 서술들이 등장하는 멋진 책입니다.

걍 용어 사용으로 대충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건을 매개로 해당 용어를 매개로 어떤 사유체제가 상상 가능했고, 이를 다룰 담론체계가 무엇이었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여 활용했는지, 그게 어떤 효과를 창출했는지 따위를 서술합니다... (그게 매우 간접적으로 드러나서 너무 아쉽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