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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글

'Aesthetics'라는 용어에 대해서

미독에게 보내는 편지


 

미학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들은 으레 그리스어 의미를 분석하곤 하는데... 그런 건 다 소용없습니다ㅋㅋ

진짜로 설명해야할 것은 저런 단어가 왜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등장했는지입니다.

이런 설명에서 “미학은 근대적인 것”이란 테제를 멍청하지 않게 활용할 수 있어야하고요.

당연히 고대에도 중세에도 감성의 작용을 설명하는 추상적인 담론은 있었습니다.

수준도 높았고, 학문론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이게 중요했다는 것을 모르는 애들은 걍 중세철학을 모르는 애들이에요. 프란치스코회의 학문론 전통 자체가 저런 감성적 근거에 기초해서 설립되었고, 이쪽은 비주류인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근대적인 미학 담론과 다를 뿐이죠.

그러니 근대적인 미학 담론이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태동했고, 어떤 전략을 취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일단 설명해야할 것은 ‘art’라는 용어입니다.

이 단어는 “예술”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기술이라는 의미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기술’보다 더 포괄적인 용어였어요.

기술techne은 특정한 형상을 기반으로 반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특정한 활동입니다.

이건 당연히 앎의 한 종류이고, 역량arete에 해당됩니다.

특별한 힘이 있고, 특정한 목적(형상)이 있으니까요.

근데 art는 더 포괄적일 수 있었습니다.

패턴을 창출해내는 힘 일반일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동물도 나름의 art를 가질 수 있는 거죠.

감각을 특정한 방식으로 분할하여 특정한 패턴들을 주목하고, 이에 특별히 반응하여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 변경을 창출하는 것 모두가 art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단어가 인간에 한정될 때, 인간은 지성적 존재이니 인간의 art는 기술techne이 되는 것일 뿐이죠.

근데 art가 매우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죠.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일단 18세기에는 ‘art’가 바로 예술을 의미하진 않았습니다.

‘fine’이나 ‘beautiful’이 붙어야 오늘날 “예술”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되었습니다.(이건 영어권에서 그런 것이었고, 프랑스에서 Belles-lettres 같은 표현이 사용되고, 이게 영어권으로 수입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beautiful art(s)’가 먼저 사용되었는데, ‘fine art(s)’가 이를 대체하게 됩니다. 특별한 의미 구별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통 보고 있고, 저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어감 차이 때문에 바뀐 것일 겁니다 아마. 독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조금 늦은 시기에 일어납니다)

앞에 붙는 형용사들은 단순히 일반적인 특성을 통해 적당히 경계를 구획짓는 그런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규범을 제공하는 용어들이었어요.

그냥 아름다운 모든 인공물을 묶은 게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개개인이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아무 데나 붙이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이야 꼴리는 대로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저 시대에는 아름다움은 아무 데나 붙이는 단어가 아니었어요.

고전적인 규범적인 모범들에나 붙는 단어였죠.

 

예술이라는 개념은 고전적인 규범적인 담론을 계승하면서 전복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었습니다.

“고전”이 권위를 가지고 있었죠.

근데 고전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면서 고전적이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용어가 필요했습니다.

그게 바로 ‘예술’이었던 것이죠.

“예술”이란 개념의 발명은 고전적인 규범으로 이탈하면서도, 이러한 고전성을 담지 할 포괄적인 일반 규범을 제시하려고 했던 시도였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그런데 이게 바로 “미학”이 되는 건 아닙니다.

 

미학은 저런 “예술”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미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독일에서 탄생하였고, 걔넨 좀 다른 맥락이었으니(독일은 문화 후진국이라 예술 비평이 저 시대에 불가능했습니다... 완전 사변 이론으로 등장한 거니 좀 구별해야합니다. 참고로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도 18세기 내내 다양했는데, 독일은 그런 용례가 부실합니다. 왜냐? 소설이란 것이 제대로 즐겨지지 않는 문화 후진국이었기 때문이죠. 소설은 ‘fiction’, ‘novel’, ‘roman’ 등 다양한 용어로 말해졌는데,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roman이 제일 많이 사용되었고, 영국에서는 fiction이 젤 많이 사용된 것 같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일단 영국 맥락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영국에서는 “미학”이란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쪽 담론의 선진국이었습니다.

섀프츠베리가 아름다움 개념 설명한 것과, 이에 기반하여 허치슨이 개념적 발전을 성취했기 때문이죠.

여기서 아름다움은 단순한 감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메타 감각을 의미했습니다.

아름다움 감각은 사회성을 세속적으로 설명하면서도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발굴된 것이었습니다.

원래도 아름다움은 신정론에서 많이 활용되던 개념어였는데(성 아우구스티누스에서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전통입니다...), 이를 활용하여 사회, 사회성, 문명을 설명하고 옹호하려고 한 것이죠.

핵심은 아름다움이 자연적이면서도, 매우 특별한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하는 자연을 넘어설 수 있게 하는 감각이란 것이었습니다.

관계의 감각이고, 이런 관계의 감각에 의해 “사회성”이 추동되는 것이고, 사회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식으로 성립/형성/발전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맥락 때문에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이었고, 아름다움과 유용성 및 도덕성이 함께 말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유용성 및 도덕성이 사회의 뼈대가 되니까요.

 

저런 아름다움 감각은 근데 단일한 감각이 아닙니다.

단순히 빨강->빨간색 식의 1대1 대응이 되는 감각이 아니란 얘깁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첨부터 메타 감각으로 시작했고, 이는 반성적 감각에 속하는 내감이라 1대1 대응이 안 되는 게 본성입니다.

대상에 속하는 감각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인식 형식은 여럿일 수 있습니다.

이게 다양한 사회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 것이고요.

허치슨에 의해 성취된 중요한 성과는, 바로 이러한 다양한 미적 감각을 진보 서사로 확립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허치슨에게도 진보는 당연히 사회 구조의 변동이었습니다.

하지만 허치슨은 이러한 사회 구조 변동이 단순히 물질적인 변화일 뿐만 아니라, 저런 정신적 변화와 함께 간다고 주장했습니다.(둘의 인과 관계는 불명확합니다. 전 평행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해 사회적인 발전은 물질적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정신적인 발전은 저런 미적 감각의 변화를 통해 성취된다는 것이죠.

때문에 어떤 미적 감각이 사회에서 지배적이냐가 매우매우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게 사회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고, 사회 속에서 수행될 수 있는 관계 맺기에 “한계”를 만들어내니까요.

그래서 미적 감각, 즉 취향이 문제시된 것이고, 취향을 계발하고, 취향을 개발하는 담론들이 발전한 것이었습니다.(영국에서 “취향” 및 “비평” 담론은 18세기 중반에 폭증합니다)

 

그러면 “미학”은 무엇이냐?

허치슨의 설명은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입니다.

역시적인 과정을 발전으로 배열하면서 변동에서 포착되는 몇몇 조각들을 가지고 주장된 것이지, 이론적으로 주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현상학적으로 분석되는 작업이 뒤를 이은 것이었고요.(미적 체험의 현상적 특질에 대한 분석)

독일에서 미학은 미적 감각의 지위를 역사 속 역할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감각과 지성 사이의 역할로 제시한 것이었습니다.(제가 자주 얘기하지만 영국은 “역사적”이고, 독일은 “철학적”입니다. 이런 차이가 영국 학문을 “실증적”으로, 독일 학문을 “실정적”으로 만듭니다. 영국에서 성서가 문제되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있어서였는데, 독일에서는 그것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전자는 실증적인 정당화가 필요했고, 후자는 실정적인 규정이 필요했죠. “실정”은 내용을 확립하는, “합리적 필연성”으로 규정될 내용을 확립하는 활동이었습니다)

다만 영국의 활동이 수입되면서 이런 활동도 재배치되죠.

칸트를 예로 들자면, 한편으로는 현상적 분석에 기초한 미적 감각에 대한 철학적인 규정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규정된 미적 감각을 인간 삶 전체 속에 위치 부여하는 일이 “미학”이 되었습니다.

문자적으로 미학은 전자를 가리키긴 했습니다만, 결국 미학의 중요성은 후자를 통해서 정당화되기에 후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그래서 판단력 비판이 “미적 판단력”과 “목적론적 판단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겁니다)

결국 칸트 때메 전자만 미학이 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사실 후자가 없으면 허상이 되는 걸 대부분은 이해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들 작업했습니다.(프리드리히 슐레겔, 셸링, 헤겔만 봐도 그렇죠)

다만 “예술”이 이런 사회 속 활동에서 떨어져서, 그냥 사치-소비품으로 전락하는 것과 함께 “미학”도 인간학적, 사회적, 역사적, 철학적 맥락을 잃고 븅신 같은 헛소리가 된 것일 뿐입니다.

재미나게도 예술은 19세기에 이미 소비품이자 투자 상품이 되었지만, 미학 담론은 19세기에도 나름 규범 담론과 인식적 유의미성, 체험의 유의미성을 담지하며, 특정한 인식 활동과 특정한 사회적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하는 조건을 다루는 중요한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독일 학문론의 붕괴와 함께 사요나라가 되었을 뿐이죠....

 

하여간...

미학은 그래서 규범담론이면서도, 해방담론이고(이전의 규범을 재배치할 수 있는 새로운 규범의 원천), 사회적인 관계 맺기와, 인식적 유의미성을 담지하는 중요한 원천을 가리키는 지적 영역이었습니다.

때문에 “미학=꼴리는 것과 아름다운 것을 구별 못하는 지랄염병하는 필드or예술에 대해서 어려운 용어 써가면서 꼴리는 대로 떠드는 멍청이들의 짬통”은 철저한 반미학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미학은 당연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철학적이어야 하죠.

이를 위해서는 바로 그 “ㅁㅁ적”을 가능케 하는 장소를 정확히 규정짓고, 해당 장소를 통해서만 창출 가능한 관계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서 창발 가능한 질서를 얘기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게 어려워서 못하고 있는 것일 뿐 많은 미학 전공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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