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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글

학문과 이데올로기

미독에게 보내는 편지


 

푸코에 대해서는 이제 불만은 없어졌고...

오히려 저랑 푸코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밝히는 것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꽤나 좋은 비교항이 떠올라서 공유합니다.

 

저번에 제가 언급한 코르뱅의 “무명의 사람들” 연구는 푸코가 원조더라고요.

푸코는 그런 인물로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한 미치광이 피에르 리비에르를 내세웠고요.

그런데 전 저런 작업이랑은 정말 안 맞습니다.

푸코는 피에르의 글이 가진 아름다움을 얘기했다던데, 도대체 그런 게 뭔지도 모르겠고, 그런 걸 왜 굳이 연구를 통해 밝히는지 모르겠어요.

또한 푸코가 피에르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피에르 리비에르를 무명의 인물로 소멸시킨 권력 기관의 기록 덕분이었거든요.

이런 역설은 저는 절대로 감내하지 않을 역설입니다.(물론 푸코가 저런 권력 기관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찬양하고 감사할 대상으로 삼지 않고, 저런 권력이 바깥으로 내몬 사람들에 더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긴장은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내세울 비교항은 긴즈부르그의 무명인 메노키오입니다.

그런데 제가 메노키오를 보는 관점은 긴즈부르그의 관점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전 긴즈부르그를 비판하는 관점들을 통해 긴즈부르그의 연구를 찬양하려 합니다.

긴즈부르그도 푸코랑 비슷한 작업을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긴즈부르그가 메노키오를 복원한 것은 역사학에서 그 시대를 대표한다고 여겨진 지식인들의 담론들과 구별될 수 있는 민중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생각해섭니다.

하지만 실제로 메노키오가 민중의 정신을 대표한다고 볼 이유는 없고, 바로 그게 흥미로움을 만들어냅니다.

일단 메노키오가 기록에 남은 이유부터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단 심판 때문에 메노키오는 기록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메노키오가 이단으로 심판 받은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민중은 이단일 수 없습니다 원래.

민중은 그냥 이교도 같은 존재에요.

신을 모르니까 헛소리를 하는 것이고, 신앙이 없는 무지한 자들이죠.

이단은 신앙을 아는 사람들에 한해서 말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민중의 경우에도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민중이 특정 신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이단이 될 수 있죠.

그런데 메노키오는 이런 케이스에 속하지 않습니다.

메노키오는 스스로 신앙을 얻었습니다.

본인이 연구를 통해서 신앙을 확립한 인물이에요.

그래서 흥미로운 거죠.

메노키오가 이단 심판을 받은 것은 때문에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메노키오의 신앙을 무시한 게 아니란 얘깁니다.

메노키오가 믿음이 없는, “변덕스러움”을 가졌다면 심판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단 심판관들은 정말 여러 번 메노키오를 설득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고, 적당한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메노키오가 그걸 거절했다는 거죠.

이단 심판관들은 메노키오의 신앙이 확고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메노키오가 그런 신앙을 “전도”하고 있고, “전도”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에 메노키오를 심판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메노키오에 대한 심판은 오히려 메노키오에 대한 인정을, 메노키오가 위험한 적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메노키오의 신앙을 살펴보면 약간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메노키오의 신앙이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긴즈부르그는 메노키오의 신앙을 최대한 메노키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설명하려고 합니다.

자연발생은 경험적으로 합당한 입장이고, 메노키오는 자신의 경험을 쫓아 자연발생을 믿었고, 이에 근거하여 자신의 신앙을 발전시켰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메노키오의 사상은 메노키오의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독창적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많은 비판가들이 지적한 것처럼 메노키오의 사상은 당대 이탈리아의 이단적 지식인들의 사상과 언어적으로도 동형적이며 내용도 상동적입니다.

때문에 메노키오를 민중의 대변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메노키오의 사상은 사실 당대에 유행하던 사상들 중 하나이며, 독창적이라고 보기 어렵거든요.

때문에 긴즈부르그의 “민중” 연구는 실패한 것이죠.

그런데 전 이 사실이 오히려 메노키오 연구의 의의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메노키오는 지식인의 언어와 민중의 언어가 괴리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메노키오는 토착 전통들과 자신의 경험과 성서 등의 고전적 텍스트를 결합하여 자신의 사상을 성립시켰습니다.

그와 비슷한 사상을 제시한 지식인들처럼 말이죠!

메노키오는 민중과 지식인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중도 지식인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메노키오가 보여준다는 거죠.

재미난 것은 역도 성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저 당시 저런 이단적 사상이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저런 사상에 공감한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란 얘깁니다.

딱히 특정 도그마에 갇혀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민중이든 지식인이든, 저런 사상에 동의를 표할 수 있었을 거란 얘기입니다.

즉, 메노키오는 지식인의 언어가 민중의 언어와 괴리되어 폐쇄적으로 굴러가던 게 아니란 것과, 지식인의 언어가 민중들에게도 납득, 설득, 선동이 가능했던 이유를 보여준다는 얘기입니다.

루터의 사상은 신학자들만 공감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학자들은 반대를 많이 했죠.

민중들이 더 많이 공감했습니다.

민중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시간이 없고, 생각할 기회가 없고, 정교화할 자원이 마땅치 않을 뿐이지 다들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때문에 민중을 설득해내는 것은 우연의 소산이 아닙니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 충분한 관심, 충분한 토의만 주어지면, 정교한 사상을 동원하는 것이 민중에게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래시가 지적한 것처럼 노동자들은 충분히 현명하기에, 그들을 개돼지로 취급하며 적당히 만족스러운 환상을 제공하는 지식인들의 사상에는 동조하지 않습니다.

래시 말마따나 굉장히 정교하고, 굉장히 수준 높은 덕성을 요구하는 소렐의 비전에 많은 노동자들이 동참한 것은, 소렐의 사상이 제일 일관적이고 제일 정교했기 때문인 것이죠.

메노키오는 이런 현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말이 안 되면 민중도 안 믿는 거죠.

말이 되기 위해서는, 토착 전통 속에서 물려받은 사고들, 경험을 통해 확인 가능한 사실들, 권위를 지닌 텍스트 모두 동원될 수 있고, 꼭 배운 사람이 아니라도 저런 다양한 조류들을 종합해낼 수 있고, 종합한 것을 선호합니다.

톰 페인이야말로 이러한 종합의 가장 좋은 모범일 테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의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사례는 힘 있는 사례입니다.

단순히 특정 개인에게 끌릴 사례일 뿐만 아니라, 많은 개인들 사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례여야하고요.

그리고 전 이게 사회-정치 담론의 “구조”랑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학 담론은 현대 정치제도를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학 담론은 대체로 계급 같이 거창한 주제를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두 학문의 교과서 첫 장, 첫 문단에서는 반대의 얘기를 하죠.

인간이 두 명이나 세 명이 있을 때부터 정치/사회는 시작된다는 소리로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거창한 얘기들만 다룹니다.

그런데 이게 전 “오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일단 맑스로 얘기를 시작하고 싶군요.

맑스가 <자본> 같은 책을 쓴 이유가 전 48년 파리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고 생각합니다.

30-48년은 혼란스러웠죠. 덕분에 48년에 보나파르트가 귀환합니다.

당연히 이 사태는 수많은 공화주의자들에게 충격적일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공화주의자들이 이를 지지했습니다.

자유주의적인 의회가 사실상 식물정부를 뜻한다는 것을 몸소 겪으니, 차라리란 생각이 든 것이죠.

콩트 같이 진성 공화주의자들이 보나파르트 정부를 지지한 것은 의회의 무기력에 큰 문제를 느껴서였던 것이죠.

그런데 맑스는 보나파르트 정부에 지지를 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게 반동 아니면 뭐겠어요.

맑스는 그렇다면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지를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저런 의회 토의가 왜 암 것도 못하고 문서만 뺑뺑이 돌리다가 호기를 놓치고 시궁창에 쳐박히는지를 고민했습니다.

핵심은 지배적인 사회 담론이 부재해서란 게 맑스의 답이었죠.

맑스는 물론 이를 좌파에만 적용시킵니다.

맑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을 분류하고, 이들에 대해 비판한 것은 이런 맥락이 큽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하나로 묶일 이유가 없어요.

같은 담론적 근거를 갖지도 않고, 정치적 결속의 필연적 근거도 없죠.

맑스는 이 상황이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했고, 강한 결속을 가능케 할 지배적인 담론을 창안할 필요를 느꼈던 겁니다.

맑스가 바쿠닌의 아나키즘을 가짜 아나키즘이라고 비난하며, 진정한 아나키즘 사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들이 권위적인 국가를 타파할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국가의 발흥을 탄압할 힘을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인 것이죠.(참고로 맑스는 행정기구로서의 정부는 부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무정부”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죠)

결국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을 창출하고, 이들의 결속에 근거하여 역사적 변동을 추진하고, 이를 수호해야한다고 맑스는 생각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할 “지식” 혹은 “이데올로기”를 <자본>을 통해 제공하려고 한 것이고요.

 

정치에서나 사회에서나 미시적인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미식적인 것들을 따지다보면 거시적인 게 안 보입니다.

그렇다고 미시부터 거시까지 전부 연속적으로 연결 가능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사실상 미시와 거시는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 기능분화로 별도로 작동하는 겁니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이 거창한 담론들에 집착하는 것은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애초에 해당 학문이 수행하길 기대되는 “기능”이 그러한 거창한 담론들을 경유해야만 가능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정치학은 제도정치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는 전문적인 기능을 담지하는 것이고, 사회학은 소위 “사회문제”라고 여겨지는 문제들을 발구하고 해결하는 전문적인 기능을 담지하는 것이란 소리죠.

첨부터 미시로 시작해봤자 거시로 포괄할 수 없고, 기능분화적인 사고를 염두에 두면, 이는 인식적인 한계 때문에 불가능한 게 아니라, 애초부터 단절이 그것들의 성립 조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맑스와 기능분화, 그리고 저의 메노키오론을 가지고 할 얘기는 이런 겁니다.

거창한 담론은 문제입니다.

멍청하게 사용되고 있으면 문제인 것이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문제인 것이죠.

하지만 어떤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창한 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해선 안 됩니다.

김경만에 따르면 자기변화, 차이 만들기 따위로 “비판”이 국소화된 결과가 바로 후기 자본주의라고, 차이의 무한 생성만 있을 뿐 의미 있는 차이는 못 만들고 미끄러지기만 하는 게 바로 “액체화”라고 바우만이 진단했다는데 허접하지만 전 동의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의미 있는 차이는, 가능한 차이화들을 억압하고, 특정한 차이들에 주목을 집중할 때만 현실화가능하거든요.

저항을 각자에게 떠넘기는 건 안전하지만, 그래서 문제라고 전 생각합니다.

“실험”은 실패를 감수할 때만 가능해지는 것이니까요.

 

하여간 제가 거창한 담론에 아직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솔직히 미학-정치를 얘기하면서 다른 감성화 어쩌구 하는 애들은 칸딘스키부터 좀 읽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우하우스는 중립적인 감각훈련을 교육했습니다.

학생들이 전통 같은 것을 경유하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훈련하며 감각적 차이를 발전시킬 수 있게 교육했거든요.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신체 그 자체, 그리고 신체적 감각을 발전시키는 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거 매우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훌륭하죠.

중립적이고, 계몽적이고, 자율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엘킨스가 지적하듯이, 저거 훈련 받은 사람들은 죄다 추상주의 작품을 내놓게 됩니다ㅎㅎ

웃기게도 저런 훈련을 받으면 그런 작품들을 만드는 데 특화되어버리는 거죠.

감각의 물질성, 그것들의 감각적 배치가 저쪽 필드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런 훈육도 중립적인 것은 아니란 얘깁니다.

때론 전통이 더 중요할 수 있어요. 그것으로만 힘을 창출할 수 있고요.

마네는 다른 “역사화”를 시도했지, “역사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역사화가 아니라면 힘이 없을 것을 안 것이죠.

하여간 전 그래서 전통 만들기에 관심이 많고, 그것들로 강한 결속을 만드는 거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냥 다르게 되는 게 결국 이 모양 이 꼴 만든 거 아니냐? 인디오의 변덕스러움은 찬양할 것이 못 된다, 현대인들이야말로 변덕스러운 존재아니냐?라는 게 제 생각이라서요.

전 거창한 담론, 권위, 전통도 충분히 민중적이고, 충분히 경험적이며, 충분히 통속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름 전 스스로를 메노키오나 그쪽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것이고요...(우리 사랑스러운 광신자들...)

 

암튼 그러합니다ㅋㅋ

과거 화두로 던진 “구조” 담론의 의의랑 적당히 연결해보았는데, 말이 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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