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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건축학과 도시계획 보충 +a

스마트 시티에 대하여



건축학은 건물을 다룹니다. 하지만 건축의 스케일을 작게 하면 사적인 삶을 다루게 되고, 크게 하면 도시와 국가를 다루게 됩니다. 제가 건축학과 도시계획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다루는 대상은 같고, 스케일의 차이만 있어서였습니다. 건축학자들도 비슷한 얘기들을 합니다. 건축학에서는 주택 설계를 세포-모듈을 다루는 일이라고들 합니다. 그렇기에 주택을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는 빌딩과 도시도 설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스케일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은 건축학만의 특성이 아닙니다. 스트래썬이 강조했던 것처럼, 인류학 연구에서 스케일 전환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연구에 지속적으로 침투하죠. 그렇기에 전 도시 인류학과 기업 인류학이 통할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거죠.

저런 원리적인 논의는 차치하죠. <그리드>에서 다뤄진 “스마트 시티 문제”로 논의를 이끌어보겠습니다. <그리드>에 따르면 스마트 시티는 고객을 위해서 기획된 것이 아닙니다. 이는 기술적인 필요와 정책적인 필요에 의해 강제된 것이죠. <그리드>에서 진단되듯이 오늘날 전력망 체제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전기 소비가 급증하고, 수요가 급변하는 현실을 전력망 체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래서 20세기에 드물었던 블랙아웃과 블랙아웃에 버금가는 브라운 아웃의 빈도수가 수직상승한 것이고요. 문제는 특정한 시간대에 전기 사용이 집중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전기는 수도와 다릅니다. 생산한 즉시 소비되고, 소비되어야만 합니다. 과잉과 과소 모두 문제고 전력망에 부담을 주죠. 문제는 전력망에 가해진 부담을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 따위가 아닙니다. 특정 시간대에 잠깐 사용되는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노후화되어 폐쇄가 결정된 유해한 화력발전소들을 가동시켜야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발전소 가동 인력을 고용해야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탄소와 유해물질을 배출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때문에 기업과 정부 모두 저런 현상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스마트 시티”를 기획하고 있는 겁니다. 수억의 비용을 보전해주면서까지 고객을 모집하고, 특정 도시의 인프라 설치 비용을 모두 감수하면서까지 “스마트 도시”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저것이죠.

문제는 저런 계획이 고객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공화정의 시민들이 가진 독립심과 음모론을 믿는 성향이 저런 계획을 좌절시킨다는 것이죠. 기업의 스마트 시티 계획의 기술적 핵심은 실시간 전기 사용 추적입니다. 별거 아닌 기술이죠. 실제로 아날로그 계측기와 정밀도에서는 차이도 없고요. 하지만 기업이 바보라 저런 걸 추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기 소비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관리-통제 수준이 달라지거든요. 하지만 시민들은 저걸 당연히도 원치 않습니다. 일단 저런 실시간 추적 계측기를 토대로 그 집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빨래를 하는지, 세탁기를 돌리는지, 심지어 TV로 어느 채널을 보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거든요.(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당연히도 기업에선 그런 걸 위해 스마트 시티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겠지만, 기업에 대한 신뢰가 없는 현실 속에서 기업을 믿어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시민들이 기업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스마트 시티를 통해 기업이 제공하는 것은 iot시스템입니다. 원격으로 전기 사용량을 확인하고, 전기가 어디에 사용되고 있는지 관리하고, 원하는 기구를 키기도 끄기도 하는 것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죠. 하지만 기업에서는 실제로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실시간 사용량조차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고객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심지어 그것에 대적하여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갈 때, 시원하고 쾌적해진 거실과, 본인이 보고 싶어 하는 프로 야구 경기를 방송하는 TV입니다. 하지만 아까 제가 얘기했듯이, 기업이 정말로 통제하고 좌절시키고 싶은 것은 바로 이 고객의 기대입니다. 미국의 전기 사용을 폭증시키는 수요가 바로 저것들이고, 딱 저 시점에 최고 사용량을 소비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저걸 돕고 싶어 할 기업은 없습니다. 기업은 저 시점에 더워죽겠는 고객에게 “지금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전기비를 깍아드려요!”라는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니 스마트 시티 시범 모델에 참여한 고객들이 겪게 되는 서비스가 야밤의 고요함을 깨뜨리며 돌아가는 청소기와 세탁기인 것이고요. 애초부터 기대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죠.(제가 자주 얘기하지만, 선스타인과 탈러의 <넛지>는 훌륭한 책이지만, 그들의 성과는 세상에 도움보다 해를 더 많이 가져온 것 같습니다. 전 제 삶을 증진시키고, 능동성과 역량을 고양시키는 “넛지”는 단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고, 제 주머니를 털고 제 정신을 침식시키는 “넛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겪거든요. 패스트 푸드점의 키오스크가 개같은 것은 그것들이 애초에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고객을 털어 먹기 위한 넛지들을 위해 설계되어서입니다. 기업을 믿으라는 소리는 음모론적 성향과 공화주의적 독립심이 없는 저같은 사람에게도 헛소리로 들립니다.)

스마트 시티 중 유일하게 말이 될 기획은 건축가 유현준이 주장하는 무인 자동차 운영을 통한 교통량 감축과 물류 전용 터널 사업 정도뿐입니다. 그 외의 것 중 우리 삶에 도움이 될 것은 없을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일단 뭐든 “스마트”하면 편의성을 증대시키고, 소비를 증대시키는 건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일단 인류에게 그런 것들은 너무 많아서 문제이지 적어서 문제인 것은 아니거든요. 외려 세상에 필요한 것은 불편함과 절제, 메가폴리스로부터의 분리-이탈입니다.

암튼 저의 심드렁함이 다시 등장했는데ㅋㅋ

원래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렇습니다. <그리드>에서 다뤄진 “스마트 시티”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전형적인 기업 문제입니다. 기업에서 평소에 일어나는 일이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사례 중 하나란 얘기입니다. 게임 회사에서는 왜 고객들의 기대를 철저히 분쇄하는지, 왜 대기업과 좆소기업 모두 내부 소통이 개병신 그 자체인지 따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 안에서 특정 세력이 갖는 기대와, 그 기대를 부응시키기 위해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일이, 기업 밖에서는 고객으로, 좀 더 거시적으로는 외국으로, 최종적으로는 전지구적으로 확정되는 사례란 얘기입니다. 안에 멀쩡한 사람들이 많지만, 왜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지, 혹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염세적이게 되는지, 문제를 해결할 시작점이 어디여야만 하는지 따위를 다루는 문제가 “스마트 시티”란 사례에서도 반복되고요. 또 여기서 멀쩡한 사람들의 개혁을 위한 노력들이 해당 체제의 복잡성에 의해 좌절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그리드>에서 주장되듯, 전기 시스템 전체를 아는 전문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뭐 근데 유행 따라 가는 거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 제가 연구한다면, “전기망”을 “용광로”로 바꾸고 포스코를 연구하기 위해 포항으로 달려갈 거 같긴 합니다. 그냥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만 제대로 관찰하고 기록해도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거 같거든요. 잘 되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안 되면 도대체 왜 이 모양인 것인지...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을 사건입니다. 아무도 기록 안 하겠지만요. 뭐 애초에 접근이 안 되겠죠. 기자들도 못 들어가는데 말이죠ㅋㅋ


뭐 간단히 요약하자면 "도시의 삶"은 다수적이고, 결국 도시의 삶을 다룰 때는 특정한 삶들을 선택적으로 다루게 되는데, 그때 선택할 만한 "관계"가 기업에서 동형적으로 발견된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도시에서나 기업에서나 기대되는 삶의 형식들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기대의 일치를 성취해낸 삶의 형식을 어떻게 조형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단 얘기고요. 하여간 그렇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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