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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국민"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윌리엄 마짜렐라William Mazzarella의 Censorium: Cinema and the Open Edge of Mass Publicity을 놓고 미독과 떠든 잡설



아까 언급된 단어들이 머릿속에 맴돌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이게 모짜렐라 아저씨가 선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구도 중 하나일 거 같아서 공유해봅니다.

일단 “국민”이란 단어가 가리키는 바가 불명확하다는 것은 잘 이해하실 겁니다.
저 단어가 가리키는 바는 존재론적으로 불명확합니다. 때문에 저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 단어를 매개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국민’으로 코퍼스 검색하면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코퍼스 검색도 유용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사회 담론으로서 코퍼스 검색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규범을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죠.
‘국민’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모든 발화가 중요한 게 아니란 얘기입니다.
보통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정치 연구자들은 쉬운 선택을 합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발화로 여겨지고 있는 것들에 권위를 부여하는 거죠.
예컨대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담화 같은 것들이 특권을 갖는다고 전제하고, 그것만을 가지고 국민관 어쩌구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건 당연히도 말도 안 되는 접근이죠.
물론 저런 연설/담화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저런 개별 발언에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미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쩌라는 건데?”라는 물음을 가지고 모짜렐라 아저씨의 작업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것이 보입니다.

예전에 모 관료가 국민은 개돼지라고 발언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런 발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저 발언이 맥락 상 부적절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내용 자체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거든요.
요즘은 잘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정몽주니어 오늘도 1승 추가” 따위의 밈이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고요.
대놓고 얘기하면 모두가 비난하지만, 사람들은 저런 생각을 은연 중에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자신이 비난의 대상이 될 때에만 발작하는 것이지, “나”나 “우리”를 제외하고는 “개돼지”로 사고합니다 보통.
그러니 “맘충”, “이대남”, “좆팔륙”, “진보대학생”, “김치녀” 등등의 혐오발언이 지속될 수 있는 거고요.
문제는 이게 뇌피셜이 아닌지 어케 아냐입니다.
재밌게도 이 때 “검열”이 중요한 인식의 매체가 됩니다.

“검열”은 오늘날 꽤나 무의미합니다.
그 자체로 환영 받지 못하기도 하고, 우회도 쉽기 때문이죠.
인도의 검열관들이 표현의 자유 자체에는 부정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검열 자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열이 만연하죠. 이상하게 말이죠.
이게 가능하고 현실적인 것은 “국민”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 덕분입니다.
사람들이 검열에 대해 딱히 반대하지 않고, 동조하거든요.
그런 동조가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별거입니다.
국민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 반영되어 있거든요.
검열이 시행될 때, 특정한 개입으로 통제가 이루어질 때, 사람들은 통제를 환영합니다.
자기가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도 그냥 환영해요.
왜냐? (우리가 아닌) 국민은 개돼지고 통제가 필요한 존재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는 것이고, 반대는커녕 찬성하며 반대자들을 비난합니다.(마약하려고 찬성하는거지? 음란물 중독자임? 성범죄자임? 따위의 무적의 논리 등장)
놀랍게도 이게 “국민”에 대한 통념을 제일 잘 보여줘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위의 권위 있는 문서에 쓰여있는 기록이 아니라, “검열” 주변을 맴도는 말들이 더 잘 보여준다는 얘기입니다.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국민에 대해 갖고 있는 “본심”이 잘 반영되거든요.(입으로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아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검열과 통제를 환영한다면 이 사람의 본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검열의 장소/기관censorium”이 “감각의 장소/기관sensorium”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적어도 “국민”에 대한 인식, 그리고 “국민”과 관련된 실천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장소/기관인 것은 분명하거든요.

여기서 “국민”과 관련된 실천이 이루어지는 장소/기관이란 것은 좀 더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전 부정적으로 서술했지만, 검열을 통해 드러나는 통념을 부정적이기만 한 것으로 볼 이유는 없거든요.

검열을 둘러싼 “국민관”에는 올바른 국민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고, 국민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또한 이를 매개로 실천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감각의 장소/기관일 뿐만 아니라, 실천의 장소/기관이기도 한 것이죠.

모짜렐라 아저씨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전부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일단 이게 중요한 얘기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틀릴 수 없는 얘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얘기기 때문이죠.


하여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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