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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한국 철학?

한국 철학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어제 얘기했듯이, 한국 회화 연구를 얘기하며, “한국화”는 말하기 어렵지만, 특정 화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특정 화가가 한국을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 “한국화”를 의미할 수는 없고, 그래서 좀 회의적이라고 얘기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는 문제가 아니라 정공법처럼 느껴집니다.

게임을 얘기하면서, 전 중국 게임의 “중국 게임다움”이 단순히 중국풍의 컨텐츠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포켓몬과 마리오가 일본풍은 아니지 않냐고 지적하면서요)

중국풍 컨텐츠와 무관하게 현재 중국 게임들은 중국 게임다움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설혹 컨텐츠 자체는 일본이나 북미, 한국 게임을 모방했을지라도, 게임의 방향성이나 운영방식에서 중국 게임은 분명 다른 지역 게임과 구별되거든요.

전 이런 차이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로컬적인 특유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중국 게임들이 저러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능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특수성 때문이거든요.

저런 차이는 유저들의 니즈, 개발환경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차이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되며(혹은 적응으로 수렴진화하며) 특유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거죠.

지금은 저런 차이가 개성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개성이 될 수 있습니다.

저런 방향성, 운영 방식의 노하우가 누적될 경우 모방이 어려운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김실장이 리니지의 정교함을 얘기하는 영상을 보시면, NC 또한 모방이 어려운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표절에 가까울 정도로 출시되었을 때, 김실장은 우스갯소리로 NC는 당장 업데이트 노트를 비공개로 전환해야한다고 지적했는데 이게 우스갯소리만은 아닙니다. 언제 어떤 업데이트를 내놓아서 돈을 뽑아 먹는지 또한 결정적인 역량 차이일 수 있기 때문이죠)

결국 진정으로 중국적인 게임은 의도되지 않고서도 실현되는 겁니다.

그들의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작품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을 모방하고 능가하기 위해 경주하는 개발자들이 중국적인 게임을 실현시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중국성은 단순히 개발자들의 몫이 아니라, 그런 게임들을 선택하고, 그런 게임들에 익숙해지고, 그런 게임들에 대해 누구보다 정교한 취향을 이룩한 중국 게이머들에 의해서 공고해지는 것이고요.

 

한국 철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 철학이 어떤 것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무지는 한국 철학의 정체성에 대한 무지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현대 한국의 독자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거죠.

한국 철학의 정체성은 관조되거나 직관할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그것은 발전을 통해 완성해야할 것이지, 선험적으로 선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내놓고, 그것이 상호작용 속에서 정체성으로 인정받고 단단하게 뿌리내려야하는 거죠.

이런 게 무엇일 수 있는지를 미리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어떤 것을 내놓아야합니다.

그리고 내놓아야할 것은 적당히 한국 사회, 한국 독자들의 입맛을 예상해서 전략적으로 짜여진 무엇인가일 수 없습니다.

그런 건 적당한 수준의 것일 수밖에 없고, 적당한 수준의 것은 철학일 수 없기 때문이죠.

높은 수준의 것은 결국 본인이 제일 자신 있는 것으로만 성취 가능합니다.

그러니 내놓아야할 것은 한국 철학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이어야 하는 거죠.

그게 먹힐지, 그게 한국 철학이 될지는 모릅니다만, 일단 그런 걸 내놓아야합니다.

적어도 그런 것만이 한국 철학이 될 수 있는 후보일 테니 말이죠.

 

결국 고민해야할 것은 한국 철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바로 “나의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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