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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상

Grinberg의 피아노 연주, Rozhdestvensky가 지휘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이 연주의 놀라움은 지휘자의 기획과 그 기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연주역량에 의해 달성된 것 같군요ㅋㅋ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해석이 까다로운 것은 곡의 산만함 때문입니다.
일단 곡 자체가 어수선합니다. 균형이라는 게 없죠.
문제는 이 곡에 균형을 부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 곡의 광란을 억압하는 순간 곡 특유의 매력이 사라져버립니다. 맥이 빠져버리거든요.
이런 맥빠짐은 균형을 절제를 통해 달성하려 해서입니다.(뭐 다른 수가 없죠 원래는ㅋㅋ)
놀랍게도 저 연주에서는 절제가 아닌 방식으로 균형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규칙 없는 법칙성”이라고 말해야할 것 같습니다.
모든 부분이 전부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각 부분들을 연결하는 일관적인 규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분들 사이의 관계가 일관적인 통일성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부분들이 수직적인 관계만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수직성이 위계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분이 오히려 수평적이게 됩니다. 각각의 독립성이 보장되니까요. 흥미롭게도 단순한 수평적 배열은 오히려 위계적입니다. 모든 것을 수평적으로 배열하면 전체와 부분으로서, 군주와 그 노예들로 위계가 생겨버리거든요. 이 곡은 수직적인 배열들을 통해서 단순한 수평적 배열에서 비롯될 위계를 피해가고 있습니다. 이 점이 흥미롭습니다.
위계가 없습니다. 위계가 부재한 것이죠. 이런 부재를 통해 틈들이 열립니다. 그 틈들을 파고드는 다른 부분들, 그리고 그 부분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틈들... 이런 식으로 풍부함이 가능해지고요. 덕분에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산만함을 산만한 대로 두면서도, 그것이 짜증나는 무엇이 되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것만을 들으면 그 또한 통일적이고, 들리는 것을 듣다 들리지 않는 것들을 의식하게 되면, 들리는 것들의 틀이 변형되며 또 다른 통일성이 확보되고... 그런 것이죠.

다만 이런 작업은 정말 일회적일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ㅋㅋ
이런 해석은 반복 재생산도 불가능하고, 정말 하나의 작품을 위한 단 하나의 해석이자, 단 하나의 법칙인 듯합니다. 개별화의 법칙인 것이죠ㅋㅋ
그래서 제가 규칙 없는 법칙성이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게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표현하는(<캉디드>에서 교훈으로 묵살된 무엇, 디드로가 언제나 그리고 싶어 했던 무엇) 성적이고 폭발적이면서도 하나인 세계와 같을 듯합니다ㅎㅎ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이것에 가장 잘 어울릴 표현이 “라블레적”이군요.
그로테스크한 희극으로서의 세계, 세계의 악을 모두 포괄하는 신학.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이 가진 기이함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을 것 같군요.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내고, 어떻게 저런 연주로 실현한 것인지... 전 가늠조차 할 수 없네요;; 자주 듣던 곡인데 정말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가능성이었습니다. 놀랍네요.

레몽 크노의 철학, 혹은 희극적 헤겔주의


칼비노를 읽다가 알게 된 것인데, 흥미로워서 공유합니다.
칼비노가 레몽 크노를 얘기할 때 언급하는 사실인데, 비시 정부 시절 "괄호 쳐진" 삶을 살던 문인들이 이해한 헤겔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헤겔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칼비노에 따르면 크노와 바티유가 코제브를 통해서 본 헤겔, 그리고 코제브 본인의 헤겔과는 다르지만 코제브가 그 제자들의 이해를 인정하며 바라 보았던 헤겔은 예언가로서의 헤겔입니다.
역사는 고통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헤겔이 “역사의 종말”과 “그 이후”를 예언하는 철학자라고 생각했단 것이죠.
역사는 필연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라면 부정성들의 축제일 수 있다는 것이죠.
좀 놀라운 해석이면서도, 정말 의미 있는 해석이란 생각이 듭니다.
헤겔에게서 영지주의를 읽어내고, 역사의 극복(!)을 읽어내는 것이죠.
실제로 코제브의 강의와 함께 들었던 과목은 코제브와도 친했던 영지주의 연구자 푸에슈의 영지주의와 마니교 연구였다고 하더군요.

근데 저렇게 헤겔을 독해해보니 그것도 참 말이 되더군요.
“역사의 마지막 종 이후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헤겔은 분명 그 이후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죠.
정말로 크노와 바티유의 부정성들이 벌이는 축제, 현기증 나는 잔치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수학에 애정을 느낀 크노와 법칙을 쫓는 헤겔에게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단 얘기입니다.
결국 자유는 법칙 덕분에 실현됩니다. 단순한 자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일 수도 없죠. 규칙들 사이에서, 가능성이 확보되어야만 잠재성을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크노가 참여한 “잠재 문학”의 이념이죠.
하지만 규칙은 자유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크노는 앵겔스의 자연변증법에 수적 질서를 부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앵겔스가 말하는 ‘푸리에’를 조셉 푸리에가 아니라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로 변주하려고 했죠. 하지만 크노는 앵겔스의 푸리에가 조셉 푸리에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실패가 아니란 것이죠. 크노는 애초에 이런 일관성을, 규칙들이 스스로를 구축해내는 힘을 얘기하고 있던 것이거든요. 그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증명하고 있던 것이기에 “실패”하지 않은 것이죠.
크노는 이런 자기증식적 가능성들을 쫓고 있었습니다. 이것들 사이에서 비롯되는 통일성이 아니라, 통일성 이후에 형성될 무엇들로 말이죠.(물론 20세기 후반의 “역사” 속에서 크노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역사의 종말”을 “기쁜 소식(복음)”으로 여기며, 그 이후에 펼쳐질 라블레적인 희극을 기획한 지휘자가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제가 너무 틀에 박혀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칼비노가 후벼 판 것처럼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헤겔이 아니면서도, 말할 가치가 있는 헤겔이더군요.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그래서 칼비노가 말한 것이겠지만요ㅋㅋ

디드로의 <부갱빌 여행기 보유>에 대한 또 하나의 보유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더욱 실망스럽더군요.
발레리가 젊은 날 다빈치의 철학을 말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했을 때, 그는 디드로의 이름을 철학자들의 만신전에 올려두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그 책을 다시 편집하던 발레리는 지금이라면 디드로의 이름을 넣지 않았을 것이고, 편집 원칙을 어기고 그 이름을 빼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발레리를 실망시킨 디드로의 얼굴을 저 또한 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디드로는 분명 철학적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그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간 후 거기서 한 발을 더 내딛으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나거든요.
끝까지 가지 못 한 이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는 거야 참을 수 있어도, 끝까지 간 이들이 더 나아가지 않는 것은 비겁함 때문이기에 참을 수가 없는 것이죠.
저에게 <부갱빌 여행기 보유>는 그런 참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책 자체는 완벽합니다. “철학콩트”로서의 훌륭함이 차고 넘치죠.
칼비노는 디드로의 작품들이 선구적인 “잠재문학”이라고 말하던데,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잠재문학’의 올바른 이름은 ‘가능문학’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바로 그 이유에서 그것에 불만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틀리지 않는 얘기만 합니다. 타히티도 자연적인 것만은 아니고, 프랑스도 문명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자연적인 것 또한 양가적이고, 문명적인 것 또한 양가적이죠. 잃고 얻는 것에서 법칙을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 또한 불확실합니다. 모두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동의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이것이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디드로에게 이것이 말할 가치가 있었다면 어떤 가치였을지 조차 가늠되지 않습니다.
디드로는 스스로의 생각을 점검하기 위해 이런 글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디드로는 이 정도의 결론을 뽑아내기 위해 실험이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그저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이 글을 고안해내었을까 전 잘 모르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타히티에게서 바라보는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일 겁니다.
물론 그건 디드로의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디드로가 본 <부갱빌 여행기>가 당대의 기준에서는 루소가 요구한 “자연적 보고”일 수 있겠지만, 오늘날 인류학자들이 생산해내는 민족지와 비교할 때 그것은 자연적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전 이런 조건의 차이로 디드로를 변론해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살린스가 그려낸 타히티 또한 결국 <쿡 선장 항해기>와 <부갱빌 여행기>로 복원한 타히티거든요.
그가 이용할 수 있었던 현대의 인류학의 풍부함이 그가 그려낸 “역사의 섬들”에 결정적인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는 현대 인류학의 풍부함과 대결해야만 했기에 그의 대륙으로부터의 이탈, 띄엄띄엄 존재하는 군도로의 항해가 더욱 빛났던 것이었습니다.
디드로가 살린스가 본 타히티를 보지 못한 것은 자료의 부족함도, 재능의 부족함 때문도 아니라고 전 생각합니다. 디드로가 그걸 보려고 하지 않았기에 보지 못한 것이란 얘기죠.

디드로는 타히티에서 자연만을 보려고 하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이건 당연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고, 당연히 얘기할 만한 것이죠. 문제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타히티에서 볼 “문명”이 겨우 그따위의 것이어야만 했는가가 의문이라는 것이죠.
물론 타히티에서 문명에서 당연시 될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전 타히티에서 성은 자연적인 것도, 기능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들은 생식을 위해 성을 찬양한 것도 아니었고,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정신”적인 “정치”였다고 말했어야합니다.
타히티의 자연성에서 문명성을 말하고 싶었다면, 그들이 이룩해내는 정치적 기념비들을 보았어야합니다.
영원성도 불멸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빛나는 기념비가 가능하다는 증거를 앞에 두고서 자연의 영원성과 문명의 필멸성을 말하는 것은 참으로도 맥빠지는 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요.

디드로의 실험들은 문체적으로는 위대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통로라면, 그리고 바로 그 이유에서 “잠재문학”이라는 이념은 비록 가능문학일지라도 의미 있을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18세기에 잠재성을 말하지 않고 한갓 가능성을 말하는 것에 전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루소는 그 잠재성을 부정하는 방식으로나마 계속해서 잠재성을 탐구했는데 말이죠.
20세기의 절망을 겪지 않은 인물이 20세기적이라는 것은, 선구자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로의 증표처럼 보입니다.
너무 일찍 늙어버린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죠.
전 아직 젊어서인지, 그런 노화를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이유에서 제가 <반시대적 고찰>에 머물러 있는 것일 테고요.
저 또한 빙켈만처럼, 슐레겔처럼, 니체처럼 회춘을 말하고 싶습니다. 늙음을 인정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거든요.

하여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