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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최근 읽은 책들, 그 책들 속에서 고민한 생각들 보유 (2)

이어서


 

어제의 고민과 관련해서 재미난 썰풀거리가 생겨서 이래저래 적어보았습니다.

 

어느 누군가의 감각에서 시작하고 싶군요.

어떤 미술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현대 미술이 “엔드게임”과 비슷하다고.

여기서의 엔드게임은 어벤져스의 <엔드게임>이 아니라, 체스의 엔드게임입니다.

체스에서 엔드게임이란 기물이 몇 남지 않아 체크메이트가 불가능한 국면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체크메이트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기가 지리멸렬해질 수밖에 없죠. 결정적인 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거니까요. 엔드게임에 이르면,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며 무의미한 움직임을 진행해가거나, 그냥 무승부로 끝을 매듭지어야합니다. 선택지는 둘 뿐이죠.

흥미로운 것은 엔드게임이 지리멸렬해지는 이유입니다.

물론 결정적인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죠.

그런데 결정적인 수가 없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기물이 부족해서 결정적인 수가 안 나오는 거죠. 그런데 기물이 부족한 것이 둘 수 있는 수 자체를 줄이는 것은 아닙니다. 기물이 적어짐에 따라 각 기물은 이론적으로 그 기물이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실행할 수 있게 되거든요. 단지 그 수들이 무의미할 뿐입니다. 근본적인 관계가 변화되지 않으니까요. 각 기물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다른 기물들이 없어지자, 유의미한 관계들이 창출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재밌는 거죠. 가능성의 실현은 한계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한다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니까요.(전 개인적으로 인류의 우주 진출에 심드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우주의 공간에는 대양을 특징짓는 강한 힘의 흐름이 부재합니다. 대양은 저 힘들에 힘입어 관계창출이 가능했죠. 하지만 우주는 빈 공간에 가까워 그런 의탁이 불가능합니다. 전 이 이유 때문에 우주는 훌륭한 통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주 진출 같은 건 헛짓이라고 생각하고요. 뭐 제가 틀렸길 바라지만, 아직 우주에서 우리가 활용 가능한 “조류”는 발견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엔드게임에 대한 우리의 평가입니다.

이 게임은 우리가 시작한 것도 아니며, 미들게임이 제공해주던 승리를 안겨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도 우리가 아닙니다. 체스 매니아라면 엔드게임에 진입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내해야겠지만, 우리가 체스 매니아일 이유도 없죠. 그렇다면 이걸 무승부로 끝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끝내고 새로 시작하는 게 낫죠. 그런데 그렇다면 여태까지 우리가 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때까지 진행되고 있던 예술이란 것의 정체를 근대와 역사로 설명하며 게임을 끝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저에게서 “역사의 종말”이란 단어를 여러 번 들으셨을 겁니다. 그럴 수밖에요. 제가 좋아하는 과거의 학자들은 “역사의 종말”이 현실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도대체 역사가 무엇이길래 종말이 가능할 수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보통 역사를 그저 과거 사실들의 총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냥 사실들일 뿐이고, 그냥 있는 거죠. 그것들은 사라진 것으로서 그냥 실재합니다. 때문에 끝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끝난다고 얘기하자면, 그냥 이미 끝난 것이고, 끝나지 않았다고 얘기하자면 시간이 흐르는 한 계속 끝나지 않는 것이죠. 역사가 끝났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까요. 역사가 이미 끝났다는 주장은 도대체가 이해될 수가 없습니다. “역사의 종말 이후” 따위를 말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것이고, “역사의 종말”을 걱정하는 것은 망상적인 것이죠.

 

중요한 것은 ‘역사’란 단어가 “과거 사실들의 총체” 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자주 썰푸는 레파토리 중 하나죠. Historia는 탐문을 뜻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히스토리아의 현재 확인 가능한 최초 용례 중 하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것이고, 헤라클레이토스는 히스토리아를 필로소피아와 대비되는 것으로 제시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진리를 직관한다는 망상가들의 허풍들에 극딜을 박으며,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실천적인 활동으로서 “Historia”를 제안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정말로 그러한지를 보고 들어야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야 무엇인가를 알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사실들을 기록한 것으로서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튀키디데스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하지만 헤로도토스와 튀키디데스는 당대의 사건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저런 작업을 수행한 것이었죠. 심지어 튀키디데스는 ‘히스토리아’라는 표현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명확하죠. 튀키디데스는 탐문을 통한 이해를 추구하지 않았거든요. 그는 신적인 앎을 추구했고, 그것을 본인이 깨달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가 당당하게 자신의 책은 인류의 책장에 영원히 자리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우리가 아는 “역사”는 고대 그리스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중세에도 없었고요. 역사는 근대에서야 등장한 장르, 앎의 형식이거든요.

 

근대의 역사는 언제나 잡동사니가 모여진 창고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자신을 내세웠습니다. 피상적이고, 파편적이며,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아둔 “연대기”나 “박물지”(이 또한 ‘Historia’로 표현되었죠.), 혹은 과거의 “이야기”(이 또한 ‘Historia’로 표현되었습니다. 프랑스어에서는 두 단어가 같은 단어였고요.)와 “역사”는 다른 것이었고, 다른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코젤렉은 역사를 뜻하는 두 단어의 의미 차이도 강조하였지만, 제가 판단하기로는 그냥 두 단어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과거의 것과 근대의 것이 구별된 것이었습니다.(사실 이런 식의 분화가 워낙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단어의 의미 자체를 내재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없습니다 원래.) 결국 근대에 역사가 탄생한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역사는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자신을 하나의 체계로서, 즉 시간과 공간에 의해 무한히 분할될 수 있는 가능성들의 위협을 극복하고, 통시적이면서도 공시적인 총체성을 이룩하는 하나의 무엇을 드러내야했습니다. 비록 바사리는 ‘역사’라는 표현이 아니라 ‘열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다들 당연하다듯이 바사리의 책을 “미술사”로 분류하였죠. 바사리가 쓴 책은 잡탕 그 자체입니다. 한 화가가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오직 달걀만을 하루에 50개 씩 먹으며 82살까지 살았다는 이야기 따위가 실려 있죠. 물론 바사리의 책은 바로 이 자질구레한 일화들을 전하는 바사리의 생동감 있는 서술 때문에 지금까지도 읽히는 것이겠지만, 그의 작업은 “역사”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모두가 바사리의 책이 체계가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겁니다. 바사리 본인 마저도요. 하지만 바사리는 그런 것은 자신이 쓰려는 책과 어울리지 않으며, 자신이 쓰려는 것은 그런 일화들의 잡동사니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기도 헀습니다. 바사리는 자신이 전하고 싶었던 무엇인가를 전할 수 있는 장르를 찾지 못했던 것일 뿐, 그는 분명 “역사”를 쓰고 싶어 했습니다.

 

이 얘기를 길게 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평소처럼 “역사”라는 단어의 역사를 말하기 위해서 썰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얘기하려는 것은 역사란 것이 매우 근대적인 개념이자, 근대적인 탐구 장르/형식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전 바로 저 역사가 창출한 다른 무엇, 즉, 근대를 얘기하고 싶거든요. 여기서 근대가 무엇이었는지를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전부는 지금 우리가 하는 게임이 근대에 시작된 게임이란 것  뿐입니다. 저 전제로부터 하나의 물음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이고요. 우리가 지금 “근대”를 전제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죠. 이 또한 제가 자주 얘기하는 레파토리지만, 현대는 근대와 다릅니다. 그리고 현대가 근대와 다른 것은 근대를 극복해서도 아니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해서도 아닙니다. 외려 저는 라투르의 주장을 그의 맥락과 전혀 다르게 활용하길 선호하죠. 우리는 근대를 살았던 적조차 없다고 말이죠. 근대는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실현되지 않은 꿈이었죠. 때문에 포스트모던이 우스꽝스러운 것이죠. 근대는 극복의 대상조차 아닙니다. 그것은 실현된 적이 없거든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과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과학은 근대 과학의 계승자가 아닙니다. 근대 과학을 근대 과학으로 규정할 수 있게 했던 태도(덕성)와 꿈은 모두 저버린 채, 근대 과학을 계승할 수는 없거든요. 저는 물론 과학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제가 존중하는 현대의 과학과, 제가 애정을 품고 여러 감정을 느끼며 발자취를 쫓는 근대 과학은 다른 것입니다. 둘 모두를 사랑하지만, 둘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과학’을 그것의 동의어인 ‘학문’으로 치환하면 제가 어제 얘기했던 문제로 넘어갑니다. 오늘날의 학문이 내가 학문론을 통해 바라보는 학문일 수 있는가하는 문제로 말이죠.

 

간략히 말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마치 역사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의 흐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문이 이상한 것이고, 근대가 이상한 것이고, 역사가 이상한 것일 수 있습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식의 서술은 오직 근대적인 역사학 속에서만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근대가 기이한 꿈이었고, 특정한 시공간을 구획하는 “시대”란 개념도, “역사”도, “학문”도 그 꿈의 내용일 수 있습니다. 이를 전제하면 문제가 손쉽게 풀립니다. 시대 구별은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로 구별되면 되지, 흐름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수히 다양한 비근대들이 있는 것이죠. 그것들은 무한정 개념이라 경계가 필연적일 이유도 없습니다. 유용함에 따라 적당히 처리하면 될 문제죠. “근대”라고 스스로의 시대를 규정한 이들이 했던 짓거리를 수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강요되는 것은 애초에 엔드게임이 아니란 얘기죠. 본인이 엔드게임에 참여하려 하지 않는다면, 다른 게임도 무수히 많다는 것이죠.

 

이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미술사를 여기서부터 끌어들여보죠. 전 곰브리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서양미술사>는 책자체가 지리멸렬합니다. 왜 저런 게 미술사에 들어있는지 전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저 책을 펼쳐본 적조차 없습니다. 전 저런 책을 못 읽거든요. 그래도 곰브리치는 서사란 걸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 핵심이 사실주의와 환영이란 것을 알기에 <예술과 환영>을 펼쳐본 적이 있죠. 거기도 선사시대가 나오더군요. 바로 덥고 더 좋은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평가와 다르게 곰브리치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큽니다. 미술사가들 중에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좋아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 없지만, 저 책이 엄청난 베스트셀러란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요즘은 다른 책이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이 더 잘 팔리는 것에 위안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죠. 지금 여기서 어떤 책이 더 잘 팔리고 있고 그 책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원래 제목은 ‘서양미술사’가 아닙니다. “예술 이야기”죠. 곰브리치는 예술 일반, 미술 일반을 염두에 두고 저 책을 썼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의 본질인 서양미술의 “사실주의적 환영”을 염두에 두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선사시대예술이 다뤄지는 것이고, 다른 지역의 예술들도 피상적으로나마 다루어지는 겁니다. 학자들은 곰브리치의 예술 이해가 서양중심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된 것이 (국내에 번역된 책은 아닌데, 엘킨스는 한국에서 유학 오는 학생들도 이걸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더군요.) 헬렌 가드너의 <시대 속의 예술>입니다. 이 책은 곰브리치보다 더 심각하게 지리멸렬한 책입니다. 그 누구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 그런 물에 물 탄 말들로 이것 저것을 무의미하게 이야기하다 끝나는 책이니까요. 니체가 <반시대적 고찰>에서 주장했듯이, 그 누구도 화나게 하지 않는 글이 유행하는 것은 문화란 게 없다는 증거이고, 그런 이들이 존경 받고 있다면 문제가 심각한 겁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은 모두가 교양 미술사 교재로 사용하지만, 그 무엇도 배울 게 없는 책인 것이죠. 물론 이를 극복하겠다고 나온 책들이 있지만, 그 책들은 누가 더 지리멸렬한지를 경쟁하고 있고요.

 

제가 여기서 고민을 제안하는 것은 저 현실이 아니라, 저 현실의 원인입니다.(전 미술사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으니까요. 제가 정말 사랑하는 미술사는 이미 “역사의 종말”로 끝이 났거든요. 옛날 책들을 발굴하면 됩니다 전.) 엘킨스가 진단한 것처럼, 저것들은 오늘날 전제되고 있는 문화다원주의의 결과물입니다. 예컨대 성별, 인종, 시대 등을 모두 공평하게 다뤄야한다는 식의 전제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죠. 엘킨스는 뇌피셜로 이런 진단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양반은 교육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미술사 교양 과목을 논의하는 학회에도 참석했죠.(엘킨스는 거기에는 교사들만 참석하고 미술사가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보고 합니다. 그가 지적하듯, 미술사와 미술사 교육은 심각하게 분리되어 있고, 그 속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때 제안된 기준들을 근거로 진단한 것입니다. 그때 제안된 기준들에는 성별, 인종, 시대 등을 공평하게 다루고, 전통적으로 숭배되던 고전을 상대화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고요. 엘킨스는 저것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있고, 미술사가들은 그렇게 말하며 교육자들에게 저런 기준을 강요하지만, 정작 교육에는 도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술가들 중 그 누구도 지키지 않는 원칙들이라고 지적합니다. 엘킨스가 지적하듯이 정말로 다원주의를 존중한다면 지금처럼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진정으로 다원주의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원리적으로도 불가능하며, 현 다원주의 숭배는 그들의 위선을 가리는 덮개에 불과합니다.(이것도 연구로 밝힌 저작이 있더군요. 연구로 밝힐 만한 것도 아닌 상식이지만 그런 연구들이 세상에 필요합니다.)

 

엘킨스는 이런 문제가 단순히 위선과 몰상식에서 발생했다고 진단하지 않습니다. 엘킨스는 좀 더 원리적으로 파고듭니다. 그 또하 저처럼 역사를 근대적인 것으로 이해합니다. 엘킨스는 이를 ‘헤겔’의 이름으로 대표하고 그것이 극복 가능한 것인지를 검토하죠. 엘킨스는 극복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죠. 엘킨스는 제시된 기준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미술사”를 유형화하여 검토합니다. 하지만 그의 검토는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때로는 “이건 좀 써볼만한 책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본심이 아닙니다. 사실 그런 책이 나와도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고, 만약 저 기준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었다면, 비유럽에서 출간된 미술사 서적(예컨대 러시아의 <만국미술사>)를 교재로 삼고 있을 것이라는 거죠. 애초에 그런 책은 팔리지 조차 않습니다. 관심조차 못 받고요.(엘킨스는 실제의 예들을 적절하게 써먹습니다.) 엘킨스는 완벽한 미술사는 불가능하다고 진단합니다만, 그의 진심은 단순히 불가능한 현실을 지적하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역사”란 장르 자체가 저런 기획과 어긋나는 것이란 걸 엘킨스는 인식하고 있거든요. 헤겔주의는 극복해야죠. 이상한 소리니까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헤겔적일 수밖에 없는 게 역사서술인데, 역사서술이면서 역사서술이지 않게 서술하려고 하니까 망하고 있는 거죠. 중립적이고 공정한 서술이 어떻게 가능한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미술”로 무엇을 가리치려는지가 정말로 중요한 문제죠. 그걸 고민하지 않고 미술이라고 불리는 이것저것 전부를 다 미술로 포용하고 섞어대니까 자기파괴적인 작업물만 나오는 거고요. 엘킨스는 사실 이걸 지적하는 것이죠. 물론 그가 검토한 가능성들 속에서 이 기획을 추구할 경우 이런 것들이 보이게 되고,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 또한 공유될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런 검토 자체도 바로 저 고민 속에서만 의미가 있을 수 있죠.

 

여기서 약간 제가 반대하는 저런 조류가 이상적으로 추구되는 가능성을 잠깐 검토해보고 싶군요. 물론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백과사전이어야만 합니다. 호크니의 책과 비슷한 것이어야 하고요.(호크니는 전통적인 미술사 서적 비슷한 것을 썼지만요.) 호크니가 한 작업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호크니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크니는 유명한 미술가입니다. 그는 미술사가가 아닙니다. 호크니는 문헌을 붙잡고 씨름하는 사람이 아니죠. 실력 좋은 그림쟁이입니다. 자신의 그림 솜씨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고요. 호크니는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다르게 그림을 보고 고민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그림은 무슨 의미일까?” 따위를 고민하겠죠. 호크니는 “시발! 도대체 이건 어떻게 그린 것이지?”라고 고민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호크니는 실력 좋은 그림쟁이입니다. 그러니 그림을 볼 때 이걸 어떻게 그렸는지를 읽어냅니다. 그리고 무엇이 가능한지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파악하죠. 호크니는 애초부터 미술사가들이 제안한 제작 방식 추정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의 논증은 이런 식입니다. “누구는 그걸 그렇게 그렸다고 추측하던데, 말도 안 되는 추측이다. 나조차 그런 방식으로는 저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자신이 기준입니다. 본인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쌓아올린 실력을 믿기에 저렇게 논증할 수 있죠. 게다가 다 맞는 얘기입니다. 실력 좋은 그림쟁이답게 호크니는 다른 이들의 영업비밀을 추적해서 폭로해냅니다. 어떤 보조 장치를 썼을 때 남게 되는 흔적들을 가지고 확증하고요. 그러니 호크니는 그림 전체를 보지 않습니다. 주제 따위에는 관심이 없죠. 그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도 그렇게 설명하고요. 호크니는 수영장를 꽤 많이 그렸는데, 비평가들은 그걸로 이래저래 “정신분석”하곤 합니다. 하지만 호크니 본인에 따르면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물결에 의해 이그러지는 타일선들은 너희는 어떻게 보고 있지?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려보라고 하면 도대체 어떤 것들을 감각해왔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거야. 내 그림을 봐. 이건 사진 같은 걸 베낀 게 아니야. 내가 감각해서 그려낸 거라고. 그래서 사진이랑 달라. 하지만 분명 넌 내 그림을 보고 ‘내가 여태 보아왔던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라고 외치게 될거야. 내 실력을 좀 알겠어? 이보다 잘 그리는 새끼 본 적 있어? 있으면 한번 가져와봐. 내가 검토해줄테니! 물론 미켈란젤로를 가져오진 말고, 그건 반칙이니까!” 호크니는 자신의 그림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림도 그렇게 봅니다. “새끼... 이걸 이렇게 그렸다 이거지? 하참 골때리네. 졸라게 멋지고 말이야!”

 

제가 좀 우스꽝스럽게 묘사했지만 호크니의 접근은 이상한 게 아닙니다. 저 또한 호크니를 알게 되고 그림 보는 눈이 엄청 늘었습니다. 호크니는 그림 또한 만들어지는 것이고 보는 것이란 진실에 근거하여 말하는 양반이죠. 틀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호크니의 방법은 역사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전통에 따라 대충 시대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그림들을 분석했지만, 그렇게 안 써도 괜찮고, 안 쓰는 게 낫습니다. 호크니 식으로 그림들을 다룰 거면 작가는 지워도 괜찮습니다. 작품도 총체로 다룰 필요조차 없죠. 배열을 위해 작품의 이름들을 기준으로 삼아야할 수는 있겠지만요. 호크니의 방법은 보편적인 접근일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림 자체만을 분석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그렸는지만 얘기하죠. 호크니의 방법으로 동굴벽화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하면서도 의미 있는 분석일 수 있습니다. (호크니 본인이 직접 동굴벽화를 분석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냥 제 방식대로 썰풀자면) 동굴벽화의 그림들은 놀라운 인식을 보여줍니다. 동물을 적당히 보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것으로서, 움직이는 것으로서 보고 있죠.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그것들이 가진 잠재성과 자신의 감각을 형태를 통해 종합해내고 있습니다. 그게 사진과 비슷하진 않지만, 그들은 현대인들과 다르게 그들이 그려 낸 동물의 신체를 다수의 감각 속에서 종합하고 있었단 것이죠. 호크니는 샤머니즘이나 토테미즘 같은 것을 말하지 않고도, 그리고 추상이나 표현이니 그따위의 미학적 용어를 말하지 않고, 정말 그림들을 가지고 저런 얘기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었기에 이렇게 그린 것인지 콕찝어 말할 수 있으니까요.

 

호크니의 방법을 통해서 다양한 지각-표현들을 나열할 수 있겠죠. 놀라운 백과사전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걸 쓰는 사람이 호크니만큼 대단한 그림쟁이여야하겠지만요. 또 여기에 포함될지가 적당히 한계적이어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특정한 그림을 반드시 넣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유명하다고 넣고 유명하지 않다고 안 넣고 할 필요도 없고, 어느 민족의 것인지, 누가 그렸는지, 언제 그려졌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이 알고 있는 멋진 것들만 넣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이건 역사가 아닙니다. 애초에 역사로 기획하는 게 멍청한 거죠. 전 호크니가 대체 미술사 서적으로 자신의 책을 내놓은 게 아니라고 확신하고요.(애초에 그가 말하고 싶은 건 미술사 따위가 아닙니다. 알못들의 멍청한 소리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자체가 원래의 동기였을 겁니다. 일단 시작하고 나니 본인에게도 재미난 것들이 많아 진지하게 쓰게 되었겠지만요.)

 

미술사는 이쯤하면 다 얘기한 것 같습니다. 미술사에서 부족한 것은 “이념적 역사”를 대체할 “유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디디-위베르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는 문제도 답도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뭐 그래도 얜 “역사”가 뭔지 대충이라도 알고 있으니 양반입니다. 대충만 알고 있어서 그걸 극복하려해서 문제지만요.) 애초에 “역사”일 것인지를 결단할 필요가 있죠. 제가 자주 얘기하는 것이지만, 사회사적으로 미술사를 서술할 거면 미술사학과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이유는 정말이지 조금도 없게 됩니다. 사회사가들과 문화사가들이 미술사를 다루면 되죠. 미술사가 처음부터 양식사였고, 뵐플린이 “시각 형식”에 기초하여 개념들을 구축한 건 우연이 아닌 거고요.(엘킨스도 뵐플린을 좀 잘못 이해하고 있던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미술사학과가 독립적인 학과일 수 있기 위해서는 무조건 뵐플린을 쫓아야합니다. 뵐플린은 겸손한 사람이라 자신의 부족함을 얘기하며 자신의 기획을 후대의 학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켜 객관적인 수준일 수 있길 희망했는데, 그게 유일한 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디디-위베르만이 바르부르크를 통해 꿈꾸고 있는 망상도 뵐플린의 언어로 환원해서 기획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게 지금의 결과물보다 훨씬 의미 있을 수 있었을 겁니다.) 미술사학과의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으니 할 수 있는 헛소리들이 많은 것이죠.(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이 미술사학자지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회사적인 접근, 사회적 접근 따위를 주장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이란 게 없는 존재라고 전 말할 겁니다. 진심으로 말이죠.)

 

약간 빡치는 얘기들이 나와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각설하고 돌아와 얘기하자면 이것을 말하고 싶어서 저 얘길 꺼낸 것이었습니다. “미술사”란 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미술사학과”란 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건 당연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 곳곳에 “미술”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기똥찬 인공물들이 있다고 해서 그것들을 “미술”로 부를 이유도 없는 것이고요. 애초에 “미술”은 서양의, 근대적이고, 역사 의존적인(이중적인 의미에서) 개념이거든요. 다른 세계의 것들을 굳이 미술품으로 포괄하면서부터 서양중심주의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걸 포괄하는 게 존중인냥 떠들면 뇌가 없는 거고요. 이건 반대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엘킨스는 인도의 암리타 쉐르 길의 <인도와 서양의 순수미술사>가 두 부분으로, 하나는 서양으로 다른 하나는 인도로 나누어져 있고, 그 사이에 어떤 것도 없는 것처럼 그리며 이를 대등한 분량으로 병렬하고 있는 것이 분열증적이라고 진단합니다. 엘킨스는 길의 저작에 대해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지만,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길은 서양의 미술이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고,(길은 유럽에서 그림을 훈련 받았습니다.) 그것이 근대-문명의 이름으로 인도에 침투하는 것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 현실 속에서 “인도적인 것”을 구제하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죠. 잘 되든 잘 안 되든 그 자체로 훌륭한 기획이고, 제가 보기에는 꽤나 수준 높게 수행되었습니다.(솔직히 말하자면 조선 반도에서 저런 작업을 수행한 사람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전 오히려 길 같은 작업을 “전통”으로 삼을 수 있는 게 부럽기까지 합니다.) 결국 “미술”을 다룰 것인지는 역사적으로 “미술”과 무관한 사람들의 몫이란 얘기죠. 물론 제도적으로 이미 침투되어 있는 현실을 비추어 생각해보면, 독립적인 결정은 어렵겠지만요.

 

이것은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도 근대 특유의 무엇입니다. (동아시아 사람들의 자의식과잉의 냄새가 나는 용어지만 그냥 사용하자면) 동양철학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동아시아 사람들이 멍청했고, 심오한 사상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똑똑했고, 심오한 사상도 구축했죠. 하지만 그게 철학인 것은 아닙니다. “철학”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따지지 않고, 대충 철학으로 분류하며 연구하고 있지만, 애초에 동양철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한국철학사>를 강의했던 허남진 샘이 첫수업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가르치라고 하니 대충 남들이 한국철학으로 분류해둔 것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지 한국철학도 없고 동양철학도 없다가 허남진 샘의 지론이죠. 그 양반이 지적하듯, 철학이 처음으로 중국에 소개되었을 때, 중국인들은 그것이 굉장히 특이한 서양인들 고유의 활동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음차하여 ‘비룡소’로 표기했습니다. “근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되고 나서야, 신칸트주의의 학문론 도식에 따라 (명)철학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번역되기 시작한 거고요. 철학이 원래부터 있었으면, 중국인들은 멍청한 짓거리를 한 거겠죠. 근데 그 누구도 저들이 더 잘 알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소위 “동양철학”이든, “철학”이든 말이죠.) 근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철학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 되죠. 그걸 받아들이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얘기될 수 있을 것이고요. 제가 있는 곳이 여기입니다. 대충 남들처럼 할 거였으면 애초부터 남들처럼 취업했을 겁니다. 대충 남들처럼 하지 않고, 정말로 뜻 깊은 걸 찾고 있는 거죠. 뭐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게 미스터리한 현상은 아니고, 예술에서도 그대로 일어난 꽤나 일반적인 현상인 것은 분명합니다.(뭐 저에겐 예술과 과학과 철학이 모두 하나이고, 그게 “근대”의 정체성이라 더욱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겠지만, 형태학적으로 접근해도 유사성은 분명할 겁니다ㅋㅋ)

 

뭐 암튼 엘킨스 책 같은 걸 철학을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드는군요. 이번에는 <학교 안의 미술, 학교 밖의 미술>이 아니라, <과연 그것이 미술사일까?>이지만요. 엘킨스 글 참 잘씁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체죠. 단순명료하고 신랄합니다. 의미들이 명확하고 그 연쇄들이 일관적이고 힘 있습니다. “논증”이 아닌 글이 이럴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말이죠. 엘킨스는 스톡스태드의 책을 분석하면서 “와타라는 미술의 내재적인 영성을 강조함으로써 아프리카의 전통 가운데 가장 끈질긴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로 끝난 장 바로 뒤에, “웨지우드라는 이름은 2세기 동안 섬세한 영국 도자기와 동의로 사용되어왔다.”로 시작하는 장이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거든요. 딱 봐도 엘킨스는 무지성으로 글을 쓰니 이딴 배치가 나오고, 글이라고 할 수 없는 이따위 것이 유행하고 있고, 아무도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거에 빡이 쳤을 겁니다.(니체가 모 글에 대해서 딱 이 이유에서 지랄염병을 하는 것처럼요.) 물론 학생들을 위해, 학생들이야 다른 주에 읽으니 전 주에 읽은 것은 기억조차 못해서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변명해주지만요. 엘킨스는 그럼에도 매우 소박하고 단순명료하게 지적할 뿐 판을 어지르지 않습니다. 절제되어서 더욱 신랄할 수 있는 것이죠.(이게 니체가 취했어야 할 무엇이라 전 생각합니다ㅋㅋ) 정말 멋집니다. 이 사람의 글쓰기를 모범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