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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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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연법

 

 

자연과 역사의 교차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법 개념의 변화를 참조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합니다.

 

다만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몇몇 현대적인 오해를 명시하여 의식적으로 거리두기를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 이를 먼저 언급하겠습니다. (1)

 

(1)

사실과 당위의 구별... 요즘에는 사실과 당위의 구별을 맹종하거나, 이를 부정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이 구별의 등장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했고, 17세기에 특히 중요했습니다.

 

현대의 구도는 이러합니다.

사실과 당위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도덕적인 것을 논리학의 명제처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논리학의 명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가능한 명제 체계는 무한히 많고, 그 중에서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큽니다.

사실과 당위의 구별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연주의, 과학적 환원주의자들이 이쪽에 속합니다. 보통 환원주의를 옹호하는 논증을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하는데(김재권 논증을 변용) 뭐... 답이 없는 집단입니다. “욕구=선” 구도를 가지고 공리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암튼 저런 현대적 구도 때문에 사실과 당위의 구별이 쓸모없는 논쟁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구도였습니다.

현대의 사실과 당위의 구별은 소위 “자연주의적 오류”라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특정한 자연적 사실이 규범을 내포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폭력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인간의 폭력성은 정당하다.”는 주장의 근거일 수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현대식 구도는 흄에게 소급된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흄이 자연주의적 오류를 논증한 선구자라는 것이지요.

흄이 “자연주의자”였다는 사실과 그의 회의주의가 규범 명제에 대한 회의도 유발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은 여기에 덧붙여지지 않습니다.(매우 흥미로운 현상이죠ㅋㅋ)

흄을 사실과 당위의 구별의 원조로 소급하는 서술은 제가 확인한 바로는 한스 켈젠에게 소급되는데, 켈젠의 법학이 미국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생긴 신화인 듯합니다.

 

저게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쓸모 있는 주장이었고, 켈젠 본인도 이를 쓸모 있게 활용하며 자신의 순수법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저 구별은 신칸트주의의 핵심 전제였는데, 저 전제를 얼마만큼 엄격하게 사용할 것인가가 법학자들 사이에서 논쟁되었고, 켈젠은 그 중에서 저 전제를 가장 엄격하게 사용해야한다고 주장한 부류에 속합니다. 사실 저 구별은 사실과 당위라기보다는 사실과 가치에 가깝고, 사실은 자연과학에, 가치는 역사학에 속한다는 정신과학의 구별에서 비롯된 것인데... 법학 맥락에서는 저렇게 변용됩니다. 

 

사실과 당위의 구별의 핵심은 정당한 법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법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고, 특정한 형이상학에 근거하여 주장되어야하는 “최선의 것”을 고려하지 않고서도, 정당한 법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는 독일의 체계론자들이 주장하는 테제, 17세기에 전통으로부터 법과 도덕의 분리, 법과 도덕이 각각의 자율적인 체계로 성립했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을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하나는 중세의 자연법과 근대의 이른바 세속적 자연법의 구별에 대한 오해입니다.

 

현대의 인권담론은 “인간적인 것”에 감정적이고 자연적인 성향을 많이 집어넣고 있습니다. 보통 그것이 “인권”의 요체라고 여겨지고요.

하지만 이런 주장은 행정부 비대화와 동근원적으로 이루어진 현상이고, 딱히 사상적인 맥락은 중요치 않은 듯합니다.(전 이 점에서 모인과 좀 다른 입장입니다. 저걸 왜 사상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가 제 의문입니다)

현대의 인권담론은 사실 근대의 인권담론의 핵심이었던 가장제적인 정부를 혁파하고 자율적인 영역을 강화해야만 한다는 도덕적인 주장을 잊은 듯합니다.

하버마스나 하버마스가 인용하는 아이리시 영 같은 현대적 인권담론가들은 저런 식의 인권론이 “권리”를 “재화”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저런 이론에서는 원리적으로 실질적인 도덕성을 증진을 주장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데 이건 틀릴 수가 없는 주장입니다.

사실 저런 보호적인 인권 담론은 백성을 어여삐 여긴다는 사고가 깔려 있는 것이라 근대적 시민담론이랑은 같이 갈 수가 없거든요.

 

이 얘기를 꺼낸 것은 20세기 초반에도 저런 오해가 있었고, 그래서 현대적 인권담론이 중세 자연법과 더욱 통한다는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중세적 자연법은 실질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도덕적이고, 근대적 자연법은 그저 형식적이기 때문에 세속적이며 탈도덕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근대의 세속적 자연법은 자유주의와 다르지 않은 이기주의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하였죠.(매우 끈질긴 주장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중세적 자연법은 배교자 탄압이 그렇기에 정당했고, 신성하고 정당한 전쟁을 옹호했으며, 양심을 기관의 통제 대상으로 여겼거든요.

저기에 반대한 사람들이 저런 것을 공격하는 세력이었고요.

중세적 자연법과 근대적이고 세속적인 자연법은 물론 구별되지만, 그것이 “탈도덕화”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고 이기주의를 옹호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는 사실, 근대의 도덕적인 관심, 인권론을 증진시킨 것은 세속적인 자연법 덕분이었다는 사실은 좀 더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 배후에는 유명론과 실재론의 대립이 깔려 있는데, 중세 신학에 관심 있는 세력이 가톨릭 실재론자들이라 항상 저렇게 해석되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근대=세속화=탈형이상학화=실재론의 몰락=유명론의 득세”라는 구도 속에서 가톨릭 신학에 기초한 인간학적 실재론 확립하기가 19세기 말 20세기 중반까지의 가톨릭 사상운동의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문헌이 정말 많습니다...)

 

뭐 암튼 이게 오해들인 것 같고 저런 오해를 염두에 두고서 자연법 문제의 핵심 열쇠가 될 사실과 당위의 구별과 이 구별에서 시작될 수 있는 학문적 기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역시 푸펜도르프가 제일 중요한 듯하니... 푸펜도르프의 성취를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제물로 홉스와 스피노자를.... (2)

 

(2)

법의 정당성이 해당 법이 최선인지와 구별된다는 것은 둘이 완벽하게 괴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이런 주장이 “주의주의”라고 불리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캄의 주장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의 모든 주의주의자들조차 동의하지 않은 오캄의 극단적인 주장은 이것입니다.

“신을 사랑하라(혹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명령조차 신께서 의지했기에 올바른 것이다.”

“신께서 만약 신을 미워하라라고 인간에게 명했더라면, 신을 미워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오캄의 주장에 대해 주의주의자들도 반대한 이유는 이 주장이 반직관적이라서가 아니라 모순적이라고 판단해서였습니다.

주의주의자들도 모순율은 받아들였습니다.

단지 모순율이라는 제한이 신의 의지가 철학자들이 말하는 합리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 자체의 전능함에 의해 전제된다고 여겼을 뿐이지만요.

하여간 주의주의자들 또한 신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라도 신을 사랑해야하기 때문에 신을 미워하라는 명령은 불가능하고 오캄은 잘못된 주장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란 게 중요합니다.

 

의지와 지성을 구별하는 작업에서 중요했던 것은 의지는 의지에만 근거한다는 논리적 완전성이었습니다.

의지가 일단 발휘되기 시작하면 “올바른 이성”에 규제됩니다. 하지만 의지가 발동하는지 여부는 오직 이성에 의한 것이었다는 게 주의주의의 핵심이었습니다.

창조는 당연히 선한 것이지만, 창조를 해야 할 의무가 창조의 선함으로부터 연역되진 않고, 신께서 창조를 행한 것은 의무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이었다가 그들이 포착한 그리스도교의 본질이었거든요.

때문에 발동 여부가 중요한데(이는 은총론에서도 핵심), 이 발동여부는 조건을 따질 수가 없다가 주의주의의 핵심 전제였습니다.

그러니 오캄의 주장은 당연히도 모순이 아니게 됩니다.

신의 명령이 설혹 그 명령을 가능케 하는 “의지”와 반할지라도, 그러한 의지의 원천은 오직 그 의지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둘은 구별되거든요.

즉, 그것을 의지하게 된 원인은 인간의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의지 자체일 뿐이고, 그 의지 자체는 그 내용의 합리성과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 층위가 구별됩니다.

신의 명령을 따르거나 따르지 않는 의지는, 그 의지를 적절하게 수행하려고 하는 의지와 구별되는 것이죠.(사실 이 구별이 lex indicativa와 lex imperativa 구별로 변용됩니다. 전자는 법의 내용을 표시하는 역할을, 후자는 법의 규범성에 의해 복종이 명령되는-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가리킵니다)

 

뭐 신학논쟁이 언제나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이 선하지 않다고 주장된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전지-전능-전선은 같이 가죠.

신은 인간에게 있어 최선의 것이 되는 법을 명하셨을 것이고, 그것을 따르는 것은 선한 것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것이라, 선한 것이라 명한 것은 아니며, 이를 따르는 것이 올바른 것은 그것이 최선의 것이라 선한 것이어서는 아닙니다.

보통 이것이 얘기될 때 논해지는 사례가 이집트인들의 재산을 빼앗아 도망가라라는 출애굽기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오캄은 신께서 그것을 명했기 때문에 올바른 것이고 복종해야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신께서 명한 바를 탐욕에 의해 행한자들은 올바르게 복종한 것이 아니며 그것이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신께서 명했기에 행한자들만이 올바르게 복종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여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당성과 그 내용의 합리성이 구별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런 주장은 언제나 둘이 괴리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논해집니다.(저도 그렇게 논했습니다)

하지만 신은 그렇게 괴리시키지 않을 것입니다.(신은 완전하기에)

그러면 저게 어떻게 논해질 수 있었을까요?

 

오캄의 화법에서 그 기술이 드러납니다.

“만약 ~~했더라면, ~~였을 것이다.”

이는 반사실적 조건문입니다.

신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지만, 신께서 그렇게 하셨더라면 그럴 것이란 얘기죠.

이게 가설 추론법의 한 형태인데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기교가 발전합니다.

바로 “만약 신께서 존재하지 않았을지라도” 가설 추론이죠.

 

사실 이 가설 추론은 유명론 비판 과정에서 발전한 것입니다...(스페인의 후기 스콜라 철학의 성취...)

그들은 의지가 언제나 지시 내용을 포함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보여주기 위해 저런 논법을 사용했습니다.

의지의 실현은 명령된 내용을 쫓는데, 그 내용은 “올바른 이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하기 위해서였죠.

신께서 자신을 미워하라고 명했다면, 그것을 명한 것을 알아야하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인식이 요구되고, 그것은 올바른 이성의 판단에 맡겨진다는 것이죠.

이들은 신께서 그런 불합리한 명하실 일 없다는 것을, 단지 신의 완전성이나 그런 것을 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우리의 본성에 근거하여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이 그런 명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말이죠.

 

이런 주장을 증명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주장들이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동일한 것을 따를 것이라는 주장이 말이죠.

여기서 중세 후기의 자연법이 나옵니다.

신께서 직접 명하시지 않았지만, 인간의 이성에 의해 그 자체로 요구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규칙들은 매우 형식적이었고, 그래서 실질적 내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형식이라는 실질은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 실질이 십계명이라는 계시와 잘 통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으니 문제는 없었습니다.(근친상간 금지, 일부일처제 등이 형식적으로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 주장되었을 때 문제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주의주의의 핵심 전제는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 주장을 받아들여도, 따라야할 법의 내용과 법을 따르는 의지는 독립적입니다.

때문에 이 둘의 괴리 가능성이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홉스가 이걸 잘 파고든 것이고요.

 

홉스는 자연법과 사회계약을 의도적으로 괴리시킵니다.

사회계약은 물론 자연적인 조건 때문입니다.

사회계약이 설사 자연적 조건에 의해 동기부여 될지라도, 사회계약 자체는 자연과 독립적입니다. 순전히 의지의 산물인 것이죠.

홉스는 그러니 둘을 구별해서 생각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당성은 사회의 현존 여부에만 근거합니다.

사회계약은 사회의 현존을 위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정당성이 선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모든 사회는 선하지 않고요.

중요한 것은 현실 속 사회가 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정당하다는 사실입니다.

사회계약이 단순히 자연적인 것에 종속되었다면 그것은 애초에 사회계약이 아니었고, 정당성 따위를 여기에 종속시킬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란 것을 홉스는 논증을 통해 보여줍니다.

정당성은 의지의 문제이지 자연-본성의 문제가 아니고, 자연-본성의 문제는 합리성의 문제지 정당성의 문제는 아니라는 단순한 전제를 통해서 말이죠.

법이 이상하다면 그것이 멍청하고 비합리적이며 좋지 않다고 비난할 이유는 되겠지만,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될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따르지 않을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닌 것이죠.

바로 이 두 영역의 명시적인 구별이야말로, 신학에서 적당히 논해지고 있던 것을 홉스가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보여줌으로써 얻어낼 수 있었던 성취였습니다.

 

스피노자는 이걸 완전히 뒤집습니다.

스피노자는 정당성 문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저 문제를 뒤집어 버립니다.

 

뭐 저 둘이야 극단에 가까운 것이고...

그러니 답은 언제나 가운데에 있는 것이죠.

푸펜도르프가 그런 주장을 했던 것이고요.

 

푸펜도르프의 기교는 홉스식 구별을 영역별로 심화하는 데 있습니다.

홉스는 자연법은 자연적인 것들로 치부하였습니다.

때문에 그의 논의에서 꽤나 중요한 조건을 이룸에도 상세함은 떨어집니다.(인간학적인 전제이자 사회계약의 한계 조건을 창출하는 근거가 이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푸펜도르프는 저걸 끝까지 갈 때 무엇이 나올지를 보여줍니다.

“사회성”은 “도덕성”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것에 불과하죠.

신께서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고려될 무엇인가고요.

때문에 신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이고, 자연적 질서에 입각해서 자세히 다뤄질 수 있는 무엇이죠.

푸펜도르프는 그것을 체계화함으로써 일관된 법질서를 성립시킵니다.(이는 법제사에서 푸펜도르프의 공로로 돌려지는 성취입니다)

 

푸펜도르프가 이를 성취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영역 구별 기교 덕분이기도 합니다.

푸펜도르프는 자연적인 자연법이 자꾸 무너진 것이 신앙과 자연법을 구별하지 못해서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법에서 다루어야할 자연적인 것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는 것을 몰라서였다고 (옳게) 판단합니다.

저도 선을 추구하고 선생님도 선을 추구할지라도, 둘은 조화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선한 것들”이 다를 수 있을테니까요.

푸펜도르프는 이 부분을 잘 공략해냅니다.

본성에 의해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싶어 하는데, 그 이룸에 있어서 각자의 자의가 중요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 자의들은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를 다르게 하고 분란의 씨앗이 되지만, 적어도 지향에 있어서는 같기에 통일성은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푸펜도르프의 핵심 기교입니다.

 

푸펜도르프는 홉스의 논리를 정말 잘 뒤집습니다.

홉스는 정당성과 자연성의 구별된다는 사실로부터 각자의 “명예”가 존중되어야한다는 자연법을 도출해냅니다.

정당성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지만, 자연적으로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권력의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평판=권력=힘=생존이란 논리)

때문에 정당성은 자연적인 것이 아님에도, 자연적인 것을 고려할 때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명예=권력->명예를 침해하는 행위=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금지되어야 함)

푸펜도르프는 명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이러한 논리가 성립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자연적인 사회성이 고려하게 되는 요소들이 어떻게 질서정연하게 합법칙적 체계를 이루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펜도르프는 이러한 자연법이 정당성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푸펜도르프는 “자연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의 구별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하죠.

푸펜도르프가 이러한 구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은, 그의 자연법이 도덕과 구별되는 덕입니다.

저러한 자연법을 따르는 동기가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지라도 법의 내용은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죠.(이것이 “신이 없을지라도” 논법의 성취인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을 따르는 동기 영역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독립적일 뿐인 것이죠.(물론 이 덕분에 자연법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당대에 욕을 먹은 것이고요....)

푸펜도르프에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그것이 체계적으로, 학문을 통해서 제시될 수 있는 만큼, 전적으로 자의에 맡겨질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었으니까요.

홉스는 자연법과 국가의 관계도 독립적이라고 주장했지만, 푸펜도르프는 그것이 학문적으로 확인될 수 있으니 (적어도 홉스가 주장한 다른 학문의 규제력만큼이라도) 규제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즉, 실질적인 “평가”의 기준(비난과 동의의 공통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독립적이진 않다는 것을 보인 것이죠.

 

 

푸펜도르프의 기교는 훌륭하지만 그의 자연법론은 고정될 수 없는 것이긴 했습니다.

자연적 사실에 기초하여, 그것들에 대한 형식적인 탐구를 통해 자연법을 규정하는 기교는 훌륭하지만, 자연적 사실을 한정할 수가 없었거든요.

너무나도 당연히 이 부분이 지적됩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을 모범으로 여러 자연법들이 난무하게 됩니다.

 

푸펜도르프의 자연법은 체계적이고 많은 실질을 담보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전 시대에 요구했던 실질과 다르다는 것은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까 언급했던 문제, 일부일처제나 근친상간금지가 자연법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게 바로 푸펜도르프였거든요.(그래서 욕을 엄청 먹은....)

물론 푸펜도르프는 근친상간을 허용하자 주장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자연법이 아닌 방식으로, 특정한 조건 속에서 저 법률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음을 보이는 방식으로만 옹호했습니다.

물론 법의 합리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멍청한 선택도 가능할 테지만요.

푸펜도르프가 보여준 체계적 규칙은 “국제법”적인... 교역 등에서 기본적인 관계 맞기를 설명하는 데에서 엄청난 강점을 가졌습니다.

이것 덕분에 로마법에서 독립적인 실질적인 보통법을 탐구하는 길이 열립니다.(보통법은 예나지금이나 법학식인데, 그전에는 로마법으로 대충 퉁쳐졌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상호작용의 구성요건으로서 다뤄지게 되고, 이런 의미에서의 “보통법”이 법학식의 분야가 됩니다)

 

 

법제사에서 주장되는 바와 같이 푸펜도르프 이후의 자연법은 “역사주의”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기본적인 자연법은 사회성이 가능할, 구성적으로 무모순인 체계로 한정됩니다.

나머지는 전부 조건적인 것이 되죠.

그들은 비교법학과 역사법학으로 갈리면서 자연법이 그럼에도 보편적이란 주장을 보이는 것에 집중합니다.(18세기 말까지의 경향)

 

 

아마도 여기서부터는 루소를 얘기해야만 할 것 같네요.

물론 이를 위해서는 라이프니츠의 푸펜도르프 비판을 경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푸펜도르프가 문제를 너무 분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자연법과 도덕은 어느 정도 구분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러한 자연법조차 좋은 것을 추구하려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아예 도덕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 구체적이고 세세한 의지들을 얘기할 필요는 없어도, 적어도 최소한의 의지는 개입되어야 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라이프니츠는 지적합니다.

라이프니츠는 언제나 욕구와 믿음과 의지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푸펜도르프를 비판하죠.

물론 이것들은 맞는 지적이지만, 라이프니츠답게 대안적 법학체계를 제시해주겠다고 공언만 하고 결국 아무 것도 남은 것은 없습니다.

(사실 이게 맞는 비판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게, 푸펜도르프는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까지 자연법의 조건으로 전제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은 가치 판단의 자율성이고요. 푸펜도르프는 이것이 계시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는 특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것이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닐 거 같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 즉 “최소한의 의지” 따위를 얘기하는 부분에서 루소나 칸트가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최소한의 의지로 도덕의 조건을, 최소한의 의지와 최소한의 본성으로 법의 조건을 다루는 것이지요.

이 흔적에 대해서는 이런 것들을 지적할 수 있을 듯합니다.

 

1) 루소의 일반의지는 언제나 옳다는 주장은 홉스와 같은 주장입니다.

정당성 문제는 합리성과는 구별되고, 일반의지는 현존하는 한 올바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비합리적일 수 있고, 멍청할 수는 있겠지만요.

중요한 것은 구성요건일 뿐입니다.

2) 일반의지를 보충해주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됩니다.

루소가 풍속과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홉스에게 있어 일반의지에 해당될 단일한 의지는 주권체(개인 혹은 단체)의 의지입니다.

정당성은 명령에 대한 복종이고, 그렇기에 의지에서만 비롯됩니다.

홉스는 그래서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라고 해석했습니다.

루소는 재미나게도 이것이 개인이나 집단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홉스에게서 벗어납니다.

법이 의지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는 재미난 시도지만, 홉스가 지적한 문제를 해결해야만 가능한 주장입니다.

의지는 확정적이어야 하는데(개별사례들 모두를 포괄해야한다는 의미, 즉 개별 사안들에 대한 판단. 의지=개별자 사랑 구도에서 비롯되는 이론적인 전제이자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요구되는 전제),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판단을 법이 어떻게 제공해주냐는 것이죠.

루소는 저런 판단을 제도-학문을 통해서 가능케 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일반의지의 내용이 (푸펜도르프가 보인 것처럼) 한정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적용도 한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 “한정”을 강하게 읽으면 안 되긴 합니다.

이건 학문적으로, 말이되기 위한, 설득이 가능한, 합리적 이성에 근거할 때의 조건일 뿐입니다.

비합리적인데 엄청난 사태로도 저런 조직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루소는 그런 걸 부정하지도 않고 이조차도 탐구 가능한 영역으로 넣었던 것으로 보이고요(베버도 이러한 가능성을 사회 연구의 영역으로 잘 받아들이고 있죠)

하여간 중요한 것은 “논고”로서 가능한 것은 이것뿐이란 생각이죠.

현실적으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무튼 루소의 성취는 푸펜도르프의 후예들이 열심히 하던 작업(비교법학->풍속, 역사법학->역사)을 의지의 관점에서 유의미하게 배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작업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전체의 관점에서 보임으로써 말이죠.

중요한 것은 저러한 작업들의 위치입니다. 저러한 작업은 제도와 학문을 통해서만 이 문제에 들어옵니다. 저러한 문제를 다루는 출입 경로가 그래서 한정되는 것이죠. 덕분에 문제들이 구별되는 것이고요. 이것이 합리성의 문제인지 정당성의 문제인지, 합리성의 기준이 되는 검토 내용이 관습의 문제인지, 역사의 문제인지, 법의 정교화의 문제인지, 학문적 문제인지, 관료의 덕성의 문제인지 따위가 구별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루소는 이를 항상 종합적으로 다루지만, 그럼에도 그의 종합안에서 세부들은 모두 구별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러한 작업들은 해석 방법론의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바로 그러한 방법론 덕분에 “후기 자연법론”이 가능했던 것이고, 방법론적 한계 때문에 이후의 법학 조류가 등장한 것이기도 했죠.

 

(3) 잡설

하버마스는 이런 논리변천을 멀쩡히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사실성과 타당성> 2-3장 참조)

슈미트도 이런 구별을 정말 잘 이해하고 있고, 이를 가지고 현실법학의 조건들을 제시한 것이었고요.(하버마스도 이걸 잘 아는 것 같더라고요. 슈미트를 현실주의나 실증주의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본인도 인정하듯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하버마스 논리는 슈미트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직접적인 비판이 불가능합니다)

 

법제사나 법철학사 등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 제가 주장한 바가 꽤나 과거부터 상식으로 여겨져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또 그런 것은 아니기도 합니다.(언제나 그렇듯 합의는 없고... 이상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식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그런 상황입죠.... 사비니가 학문수준은 잘난 놈의 뛰어남이 아니라 못난 놈들이 얼마나 설치는지로 평가되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게 참 맞는 말 같습니다...ㅠㅠ)

 

하여간 중요한 것은 사실 문제와 당위 문제를 구별하면서도 이것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접속 경로를 제한하여 학문화하였다는 역사적 성취이고... 접속 경로의 제한은, 판단되어야할 구성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한정하고, 그것들을 통해 설명해야할 복잡한 현상을 구체화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 이게 학문사적으로 중요합니다.(하버마스는 바로 이 구별을 전제로, 이 구별을 긴장으로서 잘 다루는 방법으로서의 법학을 논의합니다. 합리적인 선택이죠. 루소적인....)

 

이것이 17세기 후반에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인 듯한데...

철학을 경로로 이걸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런 성취를 위해 요구될 구별논리들은 철학에서 제공해줄 수 있겠지만요.(그걸 안 해주는 문제인 것이지만....)

 

뭐 암튼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많이 연구되어 있는 것도 같고 너무 적게 연구되어 있는 것도 같은... 그런 느낌이네요ㅋㅋ

 

P.S. 푸펜도르프의 성과를 내재적으로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대충 외적인 방식으로 뭔가 다르다고 주장했던 것 같아 보충합니다.

 

일단 이 문제를 위해서는 또다시 중세 신학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중세 신학하면 토마스 아퀴나스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합니다.

중세는 아퀴나스식 “숨마”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퀴나스 이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논리학 교과서는 반아퀴나스계로 분류되는 유명론자들의 것이 사용되었습니다.(오컴 및 브뤼당)

정통 가톨릭 신학을 옹호하는 질송 같은 학자들은 의도적으로 아퀴나스주의를 강조하는데, 그들의 서사는 아퀴나스 이후 시대를 몰락의 시대로 규정합니다. 즉 아퀴나스 이후 아퀴나스주의는 망했다는 얘기죠. 때문에 중세 신학을 아퀴나스주의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스페인의 신스콜라주의가 아퀴나스주의를 부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부활시킨 아퀴나스주의는 이전의 아퀴나스주의는 다른 아퀴나스주의였습니다. 현대의 정통 가톨릭 신학자들은 스페인의 신스콜라주의에 대해서 평가가 박한 것도 이 때문이고요... 이들의 성과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면서 근대적 방법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페인의 신스콜라주의는 유명론과 실재론의 종합 및 화해를 표방했습니다.

이런 구호는 현실적으로도 필요한 것이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중세 후기 신학에서 유명론이 훨씬 입김이 셌기 때문이죠.

 

유명론을 여기서 다시 설명해보록 하겠습니다.

유명론과 실재론을 구별 짓는 것은 보편자에 대한 태도입니다.

보편자는 일반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라는 종, 인간이라는 보편자, 인간 자체는, “인간들”에 속하는 개별자와 구별될 수 있습니다.

이런 구별은 임의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개의 인간은 각자의 특수성을 갖지만, 일반적인 특성도 갖기 때문이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만 해도 이런 현상 중 하나이죠.

종들의 구별적인 특성과 섞이지 않는 특성(혼종 및 잡종은 그래서 신학적인 문제가 됩니다)은 현실적으로도 경험되기에 그것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우리의 언어 자체가 실체-속성 이원론적이기도 합니다. 교육학 책에서 본 아동들의 물리 현상에 대한 이해도 매우 아리스토텔레스적이더군요... 교육학자들은 그런 얘길 안 하고 아동들은 이렇게 생각한다고 서술하는데... 전형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사고법이었습니다)

 

보편자는 실재합니다.

이런 보편자들은 real한 것, reality를 갖는다고 말해졌습니다.

하지만 분명 개별자들도 존재합니다.

이를 보편자 실재론자들은 개별자가 보편자를 예화한다고 말하고, 이렇게 예화된 개별자들이 exist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재론의 관점에서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real한 것, 즉 보편자고, 개별자들은 부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유명론자들은 바로 이게 문제라고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게 보편자일 경우 개별자 창조는 무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보편자가 영원히 실재하게 되니(논리상 특정 시점의 창조가 불가능) 창조 자체가 부정됩니다.

물론 실재론자들은 자신들은 창조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 실패합니다.

그래서 이단 심판된 것이었죠.

유명론자들은 개별자들의 존재, 즉 existance가 더 중요하고, 보편자들은 exist한 개별자들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신께서 피조물(개별자) 하나하나를 사랑으로 창조하신 것이란 주장과, 신께서 세상의 질서를 다르게 만드실 수도 있었다는 전능 주장이 잘 조화되죠.

그래서 유명론이 득세하는 겁니다.

 

유명론이 극단으로 갈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전지 전능 전성은 일치하기에 다 조화가 됩니다.

그러니 개별자 중심으로 다시 보편자들을 설명하는 게 중요해집니다.

바로 이런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 스페인의 신스콜라주의입니다.

 

신스콜라주의자들은 개별자들이 관계 맺는 것이 임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관계들에 실재성을 부여합니다.

다만 이러한 실재성은 과거처럼 실체가 우선하는 식이 아니라, 관계 맺음들이 존재함으로써 관계가 실재하는 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 둘은 상호적이라 우선적일 수 없다는 식으로 주장되었지만요.(예정조화 같은 거...)

결국 신스콜라주의도 유명론의 전제를 받아들인 것이고, 그들은 일반적인 현상이 그 자체로 어떤 실체(보편자)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특수 체계와 일반 체계(특수 형이상학/일반 형이상학, 특수 논리학/일반 논리학 등등)의 구별은 바로 이 한계에서 비롯됩니다.

보편적인 것들을 범주들로서 그려낼 때, 범주 자체를 실체화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의 맥락을 구체화해야만 했고, 그래서 “특수 범주”가 강조된 것이죠.

설혹 일반 범주 강조가 그들의 목적일지라도, 그것이 전처럼 당연시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작업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여간 이런 맥락에서 근대적 방법이 발전합니다.

근대적 방법도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시도에서 등장합니다...

보통 분해-결합법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러한 시도입니다.

분해-결합법은 현대에는 환원주의라고 불리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탐구하는 현상을 한정된 요소들로 설명하는 방법이죠.

여기서 한정된 요소들을 한정하는 것은 요소들의 단순성이고요.

 

이러한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게 코페르니쿠스주의에 대한 평가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에도 몇몇 신학자들은 지동설이 옳다고 주장했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우주의 질서가 실재일 이유는 없다.(유명론적 전제)

우주는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중심일 수도 있다.

그런데 태양이 중심일 경우 천체의 현상들은 지구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 된다.

모든 천체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신은 효율적인 선택을 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가 움직인다.

 

물론 이런 주장은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신학적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재미난 점은 그들이 개연성 판단과 확실성을 교묘하게 조합한다는 점이죠.

 

그들은 일단은 개연주의입니다.(불가능하지만 않으면 가능하고 그러면 개연적이다)

문제는 가능한 것들 중에 무엇이 올바른가이죠.

여기에서 선택지는 두 개로 갈립니다.

1) 인간은 미천한 존재, 신께서 계시한 것이 아니라면 알 수 없다

2) 인간은 존엄한 존재, 신께서 계시한 것이 아닐 경우 신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이성으로 알 수 있다.

유명론자들 중에는 2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컴이 주장하지 않았지만, 오컴의 것으로 알려진 “오컴의 면도날” 같은 원리가 그래서 중요했던 것입니다.

개연적인 것에서의 선택을 돕는 수단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런 원리 및 수단은 통일되지 않았고, 중구난방이어서 문제적이었던 것이죠. 저걸 체계화한 것이 근대적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근대 철학이 확실성이 아니라 오류가능주의를 표방한 것도 이 때문)

 

근대적 방법은 다음과 같이 문제를 분석합니다.

설명이나 옹호가 필요한 현상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현존exist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가려냅니다.

특정한 요소들로 해당 현상이 구성될 수 있음을 보입니다.

해당 현상의 배후의 본성은 바로 해당 구성물의 관계 맺음으로 결론내립니다.

 

이런 방법을 고려하면, 홉스나 푸펜도르프의 작업이 쉽게 이해됩니다.

푸펜도르프가 일부일처와 근친상간 금지를 자연법에 넣지 않은 이유도 명확해지고요.

사회의 구성에 필요한 것은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출산 및 양육 제도입니다.

설명되어야할 것은 현존과 지속이지 “좋음”이 아닙니다.

때문에 사회적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제도면 그것으로서 끝입니다.

특정한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부가적이지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필수적인,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닌 게 됩니다.

(이러한 구별은 필수적인 것necessary와 부가적인 것accessary이라는 중세 신학-도덕의 구별과도 상통합니다. 필수적인 것인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기에, 좋은 일은 부가적인 것이라는 그런 논리죠)

 

홉스와 푸펜도르프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현존입니다.

이는 루소에게서도 마찬가지죠.

사회, 일반의지는 일단 현존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좋음”은 부가적인 것이죠.

홉스처럼 좋음에 대해서 아예 부정하는지는 부차적입니다.

저 부차적인 것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 그것이 요구되는 조건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은 다른 맥락이죠.

일단 주장되어야할 것은 현존을 위한 구성 요건입니다.(이는 칸트의 “선험적 종합 판단”의 툴과 같습니다)

 

푸펜도르프 이후의 작업은 때문에 저 부착적인 것을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질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제도가 현존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 삶이 현존하고요.

저 다양성을 포괄하면서도, 공통의 원리가 무엇인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이전에는 공통의 원리가 구성요건으로서 먼저 중요했다면, 이후에는 공통의 원리 또한 바로 저 다양성 포괄의 관점에서 평가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 포괄 때문에 이후의 방법이 미학적, 인류학적, 역사학적이게 되는 것이고요.

미학적인 것은 다양한 것의 통일을 다루는 형식을 다룹니다.

아름다움은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의 속성이란 것은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주장되고, 고전적 저작에서도 반복되는 테제입니다.(비트루비우스 등등)

이를 활용하여 미를 관계 속성으로 두면서 다양한 것의 통일을 다루되, 이성, 즉 개별자가 의지를 실현하는 데 있어 자신을 규제하는(regulate) 올바른 이성(“자연의 빛”으로 불림)의 인도로서 미를 다루는 것이죠.

인류학과 역사학은 모두 일차적으로는 “다양성” 수집이고, 이것을 학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로 저 미적인 틀입니다.

다양한 것들을 통일하는 미적 원리(정신, 천재)까지 제시될 경우 인류학과 역사학이 학문일 수 있다는 것이죠.

 

허치슨이나 퍼거슨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미스는 이러한 입장을 정말 잘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스미스의 철학적 논고들, 그의 과학철학적 저작이 이러한 입장에서 “추론”의 발전을 논하거든요.

스미스는 천문학의 발전사와 인간의 감정적 경향성을 결합시켜서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철학(학문론)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철학을 시작시키는 경이감이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테마를 예측 가능성과 불안의 문제라는 루크레티우스의 종교관과 결합시켜, 인류의 문명사를 종교와 학문의 문제로 환원합니다.

저러한 감정의 문제로 종교에서부터 과학으로의 이행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러한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저러한 이행, 진보를 막는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17세기에 <미신의 자연사>란 대중 종교서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죠.

스미스와 흄은 광신과 미신을 설명함으로써, 진보와 퇴보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광신과 미신이 부정적이기만 하진 않다는 것입니다.

17세기에도 나온 논리지만, 광신은 발견을 이끌고, 미신은 안정을 이끈다는 논리를 둘은 잘 활용합니다.

그들은 저것들의 과잉이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면서 진보와 퇴보 가능성을 동일한 근거에서 이끌어냅니다.(흄의 <탐구> 11장이 이러한 입장을 잘 보여주죠)

 

암튼 유명론의 주관주의가, 주관들의 구성론으로 발전하고, 이것들이 포괄적인 설명 가능성으로 발전하는 그런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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