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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목소리

K선생님에게 보내는 카톡


 

 

“양심의 목소리”에 대해서 이래저래 생각해보니, 제 논문에는 안 들어갈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이는 추후 설명) 논문 방향과 다른 방식으로 미리 정리해두면 좋을 것 같아 정리해보았습니다.

 

일단 양심의 목소리를 다루기 위해서는, 양심 개념을 다룰 필요가 있는데, 양심 개념을 다루기 위해서는 좀 뜬금없지만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문헌학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양심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conscientia가 유의미한 방식으로 의미를 얻는 것은 자기인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synderesis의 번역어로 여겨지면서인데,(conscientia도 자기인식이란 뜻입니다. 어원적으로) 저 신데레시스의 개념화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델포이 신전의 경구였죠.

원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가 가리키는 의미는 절제라는 덕목이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네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알라”→“신은 불멸하지만 너는 죽는다는 것을 알라”→“나대지 말라. 뒤지는 수가 있다.” 라는 의미였습니다.(이 덕목의 기원은 장-피에르 베르낭이 역사적 문헌학적 연구로 설득력 있게 제시해두었습니다... 궁금하시면 참고하심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저걸 굉장히 다른 의미로 사용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진정한 너 자신은 영혼임을 알라”라는 의미로 말이죠.

일단 이런 의미에서의 “영혼”은 그리스에서 굉장히 특이한 의미였고(강성훈 샘이 열심히 설명하지만 한국에서는 잘 통용되고 있지 않은...) 영혼을 아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플라톤이 이를 열심히 정교화하는 것이고요.

 

자신이 영혼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은, 본인 영혼에 걸맞은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근데 본인 영혼이 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자기성찰(검토되는 삶)이 중요해집니다.(답은 열려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기성찰을 한다고 해도 영혼의 정체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근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리는 3편의 대화편에서도 이게 강조되죠.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목소리를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본인이 제대로 실천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서 다른 의미로의 실천도 죽기 전에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죠.

 

여기서 다이몬의 목소리가 양심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영혼과 정신이 구별되지 않지만, 고대부터 중세에는 신체-영혼-정신 삼원론이 정석이었고(연금술도 그래서 삼원론입니다) 영혼은 보통 심리적인 것을(현대적 의미에서 의식적인 것, 즉 가시적인 것), 정신은 비가시적인 활동성의 원천으로 그려집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다이몬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말하는 “영혼psyche”과 비슷한 의미처럼 보이지만, 심리적인 것을 가리키기 위해서 다이몬을 말한 것도 아니고,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이 라틴어로 genius로 번역되었고, 라틴어의 genius 개념사에서 항상 중심을 차지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의 다이몬은 “정신”에 해당될 의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암튼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자기인식 경구는 다이몬의 목소리로 연결되고, 그것은 자기인식이자, 자기인식을 통해서 얻어지는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로서의 정신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자기인식 활동 및 자기인식의 내용이 되는 정신이라는 구도가 교부들을 통해 그리스도교 언어로 들어옵니다.

 

 

교부들이 저 개념을 그리스도교 언어로 도입한 것은 해석학적인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플라톤이 저 개념을 정교화하면서 외적인 언어와 내적인 언어를 구별하고, 진정한 정신을 표면적인 문자와 음성이 아니라 그것을 의미 있게 하는 것으로 설명하거든요. 그게 이후 철학(특히 스토아 철학)으로 계승되면서 중요한 해석/철학 언어가 됩니다.

 

일단 성서는 이상한 책이고, 당연히 그게 괴상하다고 욕하는 사람들을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반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라는 것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었고요.(영지주의가 그리스도교가 아니란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가 확정되어야하니 이는 당연한 것이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나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떠한 정신이든 그것이 구체화가 되기 위해서는 육화incarnation를 거치게 되며, 육화된 정신과 그 자체로서의 정신을 외적인 언어와 내적인 언어로 구별하고 그 간극과 이를 매개하는 방법(해석학)을 구체화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저런 정신을 자기인식이라고 말하는데(이를 표현하는 언어가 conscientia만은 아닙니다. conscientia를 직접 사용하는 주요 인물은 히에로니무스고 이는 바로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해석학의 방법 설정을 위해 신의 자기인식과 인간의 자기인식을 대비시키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신의 자기인식은 설혹 그것이 표현될 때(육화될 때) 다른 것으로서 변형될지라도 완전합니다.

신의 자기인식은 모든 진리를 연역하는 자기명증성(현대적 의미로 완전성)을 갖고 있고, 그것이 문자화(신체화)될지라도, 그 완전성은 다른 방식으로 보존된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성서를 읽는 것은 외부적인 기준이 아니라, 성서 자신의 기준이어야 하고, 성서 자체가 스스로의 의미를 밝힐 수 있도록 해석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건 성서에 대한 텍스트 중심의 해석을 선언한 것이라 인간의 자기인식과 대비가 필요 없습니다.

인간의 자기인식이 대비될 필요가 있는 것은, 인간의 자기인식이 신의 자기인식과 구별되며, 이를 대체할 수 없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호교론적 전제에서 필요한 것이죠.

 

다만 이것이 호교론만은 아닌 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자기인식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예를 통해서 보이며 신의 자기인식과 인간의 자기인식의 대비를 정당화합니다.

 

신의 자기인식은 자기명증적입니다.

여기서 자기명증적이란 것은 그것의 내적 원리를 통해 모든 개별적인 참들을 연역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수학에서의 완전성이고, 이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학문의 이상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저런 자기명증성 이상이 불가능하다고 논증합니다.

뭐 논증은 둘째치고, 이것에서 귀결되는 현상은 이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자기인식이 자기명증적이라면, 우리의 개별적인 지식들은 지식scientia(이는 단순 앎이 아니라 명제적인, 원리적인, 자기인식의 내용이 되는 이론적 앎입니다)으로부터 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말하는 수많은 참된 언어들은 그 기원이 불명료하다 이거죠.(상식의 불가해성)

암튼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인식을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으로 구별하고, 인간적인 것의 한계를 보충하는 것이자 모든 참된 언어의 배후에 자리 잡은 기원으로 계시를 개념화합니다.(그 유명한 빛을 통해 보는 게 아니라 빛 안에서 본다는 은유)

 

아우구스티누스의 보충은 신비적인 것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여기서 신비적이라는 것은 그냥 이상하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위-디오니시오스의 저작 같은 방식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훈련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명상은 공통성을 갖습니다.

이런 명상을 통한 관조가 신의 자기인식과 인간의 자기인식을 매개하는 것이며, 이를 구체화한 것이 신비주의의 훈련법과 신비주의 서적의 내용이라고 보는 게 신비주의입니다.

 

히에로니무스도 이런 성향이 좀 있는데, 이들은 명상-관조-꿈 등을 옹호해서 가시적인 것으로 계시를 이해합니다.

다만 이 가시성은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고,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이기에 언제나 상징적이라고 말해졌긴 했지만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쪽이랑 좀 다릅니다.(다만 이러한 대립은 약간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비론 비판은 신비주의 비판과 좀 다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신비주의는 그리스도교가 아니었기 때문입죠)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체적인 시각적 계시를 선호하지 않았고, 사건과 목소리를 통한 은유로 계시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빛 안에서 본다는 은유에서 드러나듯,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특권적인 시각성은 부정되고, 신의 섭리 속에서, 여러 우발적 사건과 행위 속에서 정향되는 삶을 계시로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사실 이런 경향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최초의 실존주의자라고 하이데거 및 가다머가 떠든 것이죠)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간의 자기인식은 자기명료성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 속에서 어떤 의미 획득을 함으로써 신의 자기인식에 공명하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되고, 이런 우발성은 “목소리”를 통해서 선한 것으로든 악한 것으로든(악은 없기에 정확히는 인간의 허무를 향한 의지가 발현된....) 의미를 획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의미 획득은 원리적으로 개체적이고 실존적이라 공유불가능하며 확정될 수 없는 것이고요.(이것이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는 인간이 알 수 없으니까)

 

 

 

좀 건너 뛰어서 로크를 다뤄보죠.

로크가 신조어를 만들면서 개념화했던 consciousness는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자기인식에 가깝습니다.

다만 로크가 기존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양심이라는 기존의 언어가 가진 신비주의적 색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삶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정향한다는, 어떤 의미에서 “세속화된” 개념임을 명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로크 또한 그래서 의식을 시각성과는 거리를 두고, 목소리와 연결하였고, 양심의 명령은 사건으로, 전쟁과 같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양심의 목소리를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의 충돌은 전쟁을 통해서 결정되어야한다는 로크의 입장은 단순한 상황논리가 아닙니다)

 

 

양심의 목소리는 그러므로, 특정한 양심 개념에 대한 대립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학문 같은 것으로 자기인식을 실재로 구축하려는 시도(객관적 관념론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러한 시도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에 대한 대응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련해서 니체로 바로 건너뛰어서 니체와 연관된 맥락을 펼쳐보도록 하겠습니다.

니체는 일단 신의 자기인식과 인간의 자기인식을 구별하는 것이 가상적이며, 신의 자기인식은 인간의 심리가 만들어낸 가상적 구성체라는 입장입니다.

뭐 이건 특별할 거 없는 주장이었습니다.

포이어바흐가 완전히 정교화한 형태로, 심지어 매우 실천적인 맥락에서 선정적으로 선언한 주장이었으니 말이죠.

 

포이어바흐는 신의 자기인식이란 것이, 인간의 자기인식의 구축물(정확히는 자기인식이라는 활동이 만들어내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관점을 통해서 종교활동을 해석하고, 그것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유의미성(정신)과 개별 사례 연구방법론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근은 또 재미난 특징이 있는데, 저런 양심의 목소리와 신비주의적인 명상의 대립을 무력화하고 양쪽 모두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신의 자기인식이란 것은 가상을 통한 구축이고, 가상 구축을 위한 매체이자, 가상이 가진 효력으로서 계시로 저 문제에 접근하니, 양자택일이 아니라 여러 매체들을 비교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이쪽에서는 신의 자기인식이 가진 자기명증성이 학문적 연역이 아니라, 자기조직성, 생산성으로 변주되고요.(이건 이후에 계속 강조될 겁니다)

 

때문에 니체의 접근 자체는 특별할 거 없었고, 19세기에 발전한 인류학적 연구들을 바탕으로 좀 더 인류학적인 분석을 제시했을 뿐 접근 자체는 특별할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죠.

 

니체의 특유한 부분은 저런 활동을 형태적인 측면이 아니라, 가치적인 측면으로 유형화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입니다.

 

포이어바흐 같은 접근법에서 각각의 문화는 모두 인간자기인식의 산물로서, 의미창출을 실현하는 유의미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즉 문화 사이에서의 비교는 개별화의 차이, 자기인식이 구체적인 표현/상징을 통해 현현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지, 본질적인 차이, 가치적인 차이가 있진 않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는 이상한 주장도 아니고, 당대 조류에서 벗어나는 주장도 아니었습니다.

헤르더, 빌헬름 훔볼트, 딜타이 모두 이런 전략입니다. 정신은 개별화 원리를 통한 개체이고, 개별화의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있어도, 가치판단은 개별정신 내부에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들 사이에서의 가치 평가는 비학문적인 것이 됩니다.

 

니체는 저걸 극복하려고 시도한 것이고, 계보학 자체가 저걸 위한 방법론이었습니다.

 

니체는 이런 식으로 공략합니다.

애초에 정신 자체가 가상적 구축물인데, 왜 굳이 그걸 따라야하냐는 것이죠.

자신이 속한 내적 맥락에서 정신이 명하는 방향이 있고, 그것이 (약화된 자기명증성인) 자기조직적/생산적 측면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고, 이것이 가진 “효력” 강고하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의미 있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자기가 속한 특정 가상을 그 자체로 옳은 것으로 주장하는 모든 시도는 우상숭배라고 주장합니다.

우상숭배를 피하려면 당연히 메타접근이 필요하죠.

니체는 이것이 정신들의 형성 및 경쟁들을 비교분석하면서, 개별적인 정신들의 변천 속에서 포착될 수 있는 이해득실이 가치론적인 방식으로 유형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를 토대로 한 가치평가가 메타접근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니체의 메타 개념은 여기서 중요한데, 이는 오늘날 게임용어로 설명하는 게 좋습니다.

니체는 이런 메타평가에서 더 좋은 것을 “크다”라고 형용합니다.

니체가 말하는 크다는 것은 포괄성을 의미합니다.

즉 작은 것을 포괄하고 남는 게 있다는 거죠.

이는 전략에서의 결단과 비슷합니다.

요즘은 특정 게임에서 사용하는 전략 트렌드를 ‘메타’라고 부릅니다.(기도메타 등등...)

사실 저 표현은 일본 쪽에서 ‘형이상학’처럼 거창하게 이곳 저곳에 메타를 붙이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다만 저게 영어권 용례와는 이질적이라, 양놈들이 저걸 의미 있게 해석하죠.

메타가 그리스어 메타가 아니라 most efficient tactic available의 약자가 됩니다.

게임계에서 메타가 유행이기도 하지만, 유행을 걍 따르면 피지컬 승부만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당연히 분석도 합니다.

전쟁에서 모루와 망치가 항상 최고의 전략이었지만, 모두가 알아서 재귀적인 예상과 대응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죠.

당연히 메타는 상대방이 할 수 있는 선택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들을 놓고 비교분석해서 결단을 합리화하는 활동을 포괄합니다.

 

중요한 것은 저기서 “이용가능한”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넬슨 제독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그 전략을 모방하면 무조건 망합니다.

넬슨 제독의 전략은 졸라게 훈련이 잘 되어 있는 해군일 때만 가능하며, 제독의 전략을 실시간으로 해석하여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거든요.

저 역량이 없을 때, 저거 따라하면 40대60 싸움할 거 걍 몰살로 끝납니다.

 

니체는 요런 측면에서 이론적인 전략적 경쟁우위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고, 이런 판단은 다양한 정신의 개체화를 비교검토해서, 다맥락적인 우월성을 판단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웃긴 건 이론적으로 우월한 게 현실적으로는 망했다는 사실입니다.

니체는 이 현실이 왜 발생하고, 이게 극복될 필요가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그의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가상구축 및 실천적 가치판단을 통해 제시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이런 현상을 진화론적인 맥락에서 이해했습니다.

니체의 힘을 향한 의지도 전형적인 개별화 원리를 구현하는 매체를 개념화한 사례고, 그러니 모든 것이 힘을 향한 의지가 되죠.

근데 이러한 힘을 향한 의지는 지속적으로 자기조직을 성공해왔는데, 이것이 거시적 규모로 분석할 때 어려워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진화가 일어나는 개체군을 거시적으로 설정할 경우 진화는 불가능해지거든요.

이건 수리적으로 증명되었고, 그래서 진화는 국소적인 집단의 고립 속에서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다고 이론적으로 규명되고, 현재는 이것이 실제 연구과 부합하는 것도 입증된 상황인데, 이 문제가 19세기에 핫한 이슈였습니다.

19세기 유전 개념은 멘델주의 이후의 유전 개념이랑 다른데, 19세기에 유전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의 경계였습니다.

집단 속에서 유전이 실현되기 때문에 집단의 경계 설정이 중요하고, 이론적으로는 퇴행(regression인데, 이게 퇴행이란 의미는 아니지만, 해당 개체군의 고유한 개성이 퇴락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퇴행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가 매우 중요한 핫이슈였죠.

 

니체는 여기에 숟가락을 올려서 계보학 전략을 구체화합니다.

문화적인 것들은 자기인식을 통해서 경계설정이 되기 때문에, 역사해석을 통해 무엇을 자기로 설정하냐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전통을 통해 실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분석하는 메타분석을 통해 의식적으로 실체화해야한다는 것이죠.

계보학은 가상구축으로서의 역사와, 역사라는 “유전적 개체군”의 경계에 해당될 문화적 개체군의 경계를 설정하는 토대고, 이를 공정함으로써 “유전을 통제한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생물학에서 이런 계보학은 1900년에 “학문적 계보학 서설”이란 이름으로 공표되고 유행하는데, 이것의 문화적 버전이자 선구자라고 할 수 있죠.(생물학 쪽 흐름이 니체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니체의 친구이자 니체가 계보학 방법론을 구체화할 때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빌헬름 루가 저쪽 조류의 선구자라 상관관계는 명확하지만요)

 

 

 

이런 설명을 들으면 역시 니체는 우생학자이고 인종주의자였구나 할텐데, 이게 좀 복잡합니다.

1870년 보불전쟁의 의미에 대한 해석논쟁과 이게 관련이 있습니다.

독일을 일찍부터 민족적인 것을 가치의 경계로 설정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헤르더 및 그 후예) 근데 민족적인 것이 성취해내는 것이 무엇이냐는 불명료하죠.

원래 헤르더 및 그 일당은 전부 저게 문화적 성취라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문화적 성취가 무엇이냐는 것이죠.

그래서 저 문화적 성취를 매우 구체적인, 즉 민족 간 경쟁에서의 승리로서 전쟁이라고 본 조류가 있고(랑케 등, 뭐 공화국의 지속성과 영광이 전쟁에서의 승리와 이를 통한 국가 유지니....), 문화적 해석을 문자 그대로, 전쟁이랑 무관한 것으로 해석하는 조류가 있습니다.

 

둘은 구별되지만 꼭 대립할 필요는 없는 게, 상호적인 선순화도 가능하기 때문이죠.

보불전쟁의 승리는 전쟁에서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승리이기도 하며, 문화적인 승리의 표현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제일 애국적인 세력이었고, 다수였습니다.

니체는 일단 저 조류 극혐하고, 비방으로 일관했고요.(저런 주장하는 새끼들은 뇌가 없다는 식으로 비난합니다ㅋㅋ)

 

그래서 뭐냐?가 그럼 문제입니다.

니체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문화승리라고 보진 않았고, 문화승리를 중시한 쪽이 분명하긴 한데, 여기서 소수파거든요.

원래 문화승리는 학문적 승리로 여겨졌고, 물리학에서는 학문적 선도를, 고전학에서는 백과사전적 기획을 통한 기준 확립으로 여겨졌습니다.

니체가 후자와 싸운 것은 분명하죠.(고전학과의 불화가 이로부터 비롯된 것)

니체는 학문적 성취를 물리학에서의 선도 같은 것으로, 새로우면서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떤 정신적 성과물로 본 것은 분명하고, 계보학을 통해서 구축해야할 “역사적 서사”가 물리학에서의 이론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니체는 이런 문화승리가 전쟁에서의 승리 랑도 통한다고 본 것도 분명합니다.(전쟁에서의 승리가 문화승리인 것은 아니지만, 문화승리는 전쟁에서의 승리란 입장)

 

때문에 니체의 계보학이 인종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것이고,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서사에 입각한 정신적 동질성이긴 한데...

니체가 저걸 인종적인 언어랑 항상 섞어 말해서 이게 인종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기도 좀 어렵습니다;;;

뭐 이때만 해도 문화와 인종적 특성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체화된다고들 보았으니... 분리하는 게 시대착오일 수도 있겠고요.(사실 그래서 인종은 species가 아나라 계보인 것이죠.... 공통적인 종들이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구축하면서 문화적인 개별화와 생리학적인 개별화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게 독일에서는 좀 일반적인 입장으로 여겨졌습니다. 칸트가 이걸 구축하고요)

 

 

암튼 전 이런 계보학 방법론의 원천과 이를 구체화하는 방식에 좀 집중하고 있어서.... 양심의 목소리는 좀 부차적으로 다뤄질 것 같긴 합니다....

 

 

여기서 좀 현대적인 것들을 고려하면 좀 재밌는 게 많으니 이걸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저 두리뭉실한 문화가 확정된 한 형태가 “언어”였습니다.

그레마스가 소쉬르 언어학의 의의로 이런 맥락에서의 언어가 가진 중요성을 꼽았고요.

소쉬를 통해서 아담의 언어 같은, 자기명시적인 자기인식이 사실은 현실 속의 언어이고,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괄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개별화하는 원천으로서의 “언어”라는 걸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여기서도 자기명시성은 자기조직성으로 축소)

 

여기서 좀 사변적인, 신의 자기인식에 해당되는 게 전체로서의, 이론으로서의, 공시적 언어이고, 신의 자기인식을 계시로서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게 개별발화행위죠.

뱅베니스트랑 가다머 모두 이런 개별발화행위를 화용론적으로 이론화하는데, 뱅베니스트는 저런 발화행위들의 일상성과 지속성을 강조하는 입장이고(뱅베니스트는 그래서 랑그는 번역되지 않지만 파롤은 번역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강조 포인트도 아니고 그냥 사실로서 저렇게 서술하죠ㅋㅋ) 가다머는 변형들이 개입되는 사건들, 발화와 사건들 속에서 현현하는 “진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이죠.(이런 차이는 옳고 그름과 무관합니다)

 

재미난 것은 데리다의 입장입니다.

전 처음에 데리다가 목소리 어쩌구하면서 근대 비판을 한다는 여러 연구자들의 인용이 그냥 오류인줄 알았습니다.

구송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행이 매체사적인 상식인데, 근대가 음성주의라는 건 그냥 상식에 어긋나는 소리니까요.

 

근데 데리다는 저걸 진지하게 주장하고 있고, 그게 참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데리다의 기본 입장은 플라톤과 완전 똑같고요.(물론 전 플라톤빠라서 플라톤이 더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말하겠지만요)

플라톤 또한 음성중심주의를 비판하고, 문자주의를 주창했는데, 이런 문자주의가... 책을 거부하는 문자주의라는 게 핵심인데 데리다도 똑같은 입장입니다ㅋㅋ

 

전 이런 데리다의 비판이 히틀러랑 관련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헤블록은 문자성과 구송성을 단순한 이행으로 보는 사고들이 편협하고 문제적이라고 말하면서, 이게 복잡하게 섞이고, 다양하게 개별화되는 사례로 히틀러의 연설을 제시합니다.

 

헤블록은 매체학적인 연구가 매체가 가진 현시능력의 위엄을 체험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냐고 추측하면서, 이니스, 스넬, 레비스트로스(레비나스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월터 옹, 그리고 본인이 비슷한 세대이며, 히틀러의 연설을 직접 들어본 세대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독일어를 알든 모르든, 그리고 연설내용과 무관하게, 히틀러의 연설을 방송을 통해 들었던 사람들이 겪은 특유한 체험이 있었고, 그것이 자신들을 이러한 연구로 이끈 것 아니냐는 뭐 그런 썰입죠.

 

데리다는 아마 이런 맥락에서 목소리의 현현을 다루고, 이를 비판한 게 아닐까 싶네요.

로크의 사례에서도 그렇지만... 목소리를 강조하면 전쟁으로 흐릅니다... 광신이 될 수 있죠.

니체가 “양심의 목소리”를 공격한 것도 저런 광신성 때문이라고 전 이해하고요.(니체는 나름 제정신을 찬양한 사람입니다. 양심에 목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정신병이며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쓰레기라고 떠들고 다니죠ㅋㅋ 니체는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까도 플라톤에게는 리스펙을....)

암튼 그래서 양심의 목소리르 신의 자기인식과 인간의 자기인식을 매개하는 영역에서 개입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학문적인 방법보다는 사건과 활동 속에서 얻어지는 유의미성을 옹호하는 개념체였다... 그리고 이게 현대에도 중요한 맥락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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