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요즘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다.
이왕 블로그를 하는 김에 주인장 소개나 올릴까 싶다.
예전에 블로그 이른을 정한 이유는 밝혔지만, 그때 자기소개는 올리지 않았다.
뭐 블로그를 소개하는 글만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날 것이라고 믿어서 그랬던 것이지만(역시나 정신은 어디에나 살아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고, 이런 글이라도 써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역시 ENTP는 타고난(생각해보니 mbti는 후성설이라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여튼) 관종이다.
가난한 집안의 죄 많은 학생으로 자라나 대학원에 수감 중이다.
만으로 2년을 다녔지만 수료도 하지 못하였다.
언제 출소할지 모르겠지만, 딱히 출소할 마음도 없다.
지와타네호를 찾으면 그때서야 나갈 생각이 날 듯하다.
전공은 철학. 세부전공은 철학사이다.
하지만 말이 철학사이지 그냥 이론철학을 연구한다.
철학사를 연구하는 것은 이론철학을 더 잘하고 싶어서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역사가 이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계몽철학자들에게 받은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습속을 넘어서는 법이 권위를 읽는 것처럼
역사를 넘어서는 이성은 존엄을 잃는다.
물론 요즘은 반역사주의가 유행이고, 역사주의의 고향 독일에서도 그렇다지만
하여간 난 역사주의자라 철학사를 공부한다.
나의 계파와 나의 계보가 정확히 일치하진 않는 것 같다.
연구대상도 계몽철학이고 나 스스로도 계몽철학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낭만주의의 뽕을 많이 먹은 계몽철학인지라
낭만주의적 계몽철학인지, 계몽철학적 낭만주의인지 잘 모르겠다.(게다가 계몽철학과 낭만주의가 그렇게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굳이 따지자면 전자인 것 같은데,
이는 순전히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믿고 싶기 때문이지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공부를 때려치우게 되면, 그때는 계몽철학 딱지를 뗄 수 있을 듯하다.
하여간 내 계파는 계몽철학이다.
반면 계보는 고대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 모두를 나의 계보에 넣길 좋아한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성 보나벤투라, 무적의 오컴, 데카르트, 루소, 칸트, 헤겔, 니체, 들뢰즈, 세넷.
저들 중 플라톤과 루소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듯하다.
계몽철학이랑 아무 상관없어 보이지만, 나로 인해 저 계보의 인물들이 한 집안을 이루게 되었다고 믿는다.
칸트의 말마따나 결국 종합함으로써 종합이 이루어진 것이지, 먼저 종합이 있는 게 아니다.
하여간 내 가계도는 이렇다.
종교 또한 나를 소개할 때 뺄 수 없을 거 같다.
일단은 로마 가톨릭의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스테파노.
하지만 나이롱 신자고, 실제로는 자연신학과 초월신학 사이 즈음에 있는 것 같다.(혹은 장세니즘과 제수이트 사이)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신앙심은 깊지 않다.
마음이 얕아서인 듯하다.
믿음은 역시 은총의 결과 아니겠는가.
철학과 종교가 뭔 상관인지 물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종교와 철학은 하나이다.
종교는 역사적으로 상거래였다.
그리스도교는 그런 점에서 태생부터 철학이었다.
세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완벽히 식지 않는 이상, 내가 종교성을 잃을 것 같지 않다.
스스로를 영웅으로 볼 수 있지 않는 이상 그리스도교를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
지금도 “말씀”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잘 읽지도, 잘 쓰지도 못하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감동을 느끼니까.
하여간 그리스도교 비스무리한 사이비 종교를 믿기 위해 은총을 기다리는 (유사)신자이다.(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는 이들은 신자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참 어렵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원래는 그저 잡담할 때 도움이 돼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영화 없이는 말하기가 어려워져 버렸다.
좋아하는 영화가 쌓이자 얘기할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비극이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별로 없는 것 같다.
예술 영화 따위는 보지도 않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이마무라 쇼헤이, 에드워드 양,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좋아한다.
이안의 <색,계>, 이창동의 <시>, 임순례의 <아이키키 브라더스>, 장-피에르 주네의 <아멜리 풀랑의 믿지 못할 운명>,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좋아한다.
따지고 들면 목록이 너무 늘 것 같다.
좋은 영화인지와 상관없이 그냥 좋아하는 영화들이 많다.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화를,
살아 있는 정신을 그려내는 영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 생각하곤 한다.
영화관에서야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니까.
역시 난 괴테와 보들레르 빠돌이인 것 같다.
물론 플라톤 빠돌이가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지만.
하여간 영화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사람은 떠나도 이야기는 남는 법이다.
다른 것들은 요즘 즐기지 못하게 된 것 같다.
타락한 시대에는 타락한 유희가 어울리는 법이란 걸 알면서도,
음악과 언어는 잃지 않길 바란다.
세상에 돌덩어리만 가득하단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일테니까.
루소의 말마따다 갈라테이아를 닮은 돌덩이는 숨을 쉬지 않는다면 부숴져야 하는 법이다.
하여간 정신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피그말리온 또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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