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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예술을 향하여 (2-1)

저번부터 후속 편을 예고했었는데, 이래 저래 안 쓰게 되었습니다. 썰로 풀고 나니 김이 빠져서 딱히 쓰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뭐라도 써야할 것도 같단 의무감을 느끼던 중 졸라를 보다 뽕이 올라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가 이어가고 싶었던 문제를 반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예술의 재현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바보짓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흔적은 결국 “재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의 재현성으로는 그 어떤 중요한 얘기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술 특유의 재현성은 물론이고, 예술을 통해서 실천할 가치가 있는 정치적 개입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재현하는지 유무가 아니라 좋은 재현 예술, 좋은 정치적 예술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물음에 졸라는 답합니다. 단순하고 명료하게 말이죠. 예술은 사실을 밝히는 진리의 매체일 때 좋은 재현 예술이고, 사실은 정치의 근거이기에 예술은 정치적입니다. 그의 “자연주의”는 예술이 사실을 밝히는 진리의 매체이며 그래야만 한다는 주장과 직결됩니다. 그에 따르면 이전의 예술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관습과 위선으로 사실 대신 허구를 그려냈기에 오류였고, 그것이 쇠퇴하고 자연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죠. 그는 이러한 시대변화를 정치와 연동시킵니다. 인간성이라는 오류에 의해 공화국이 아니라 왕국이 세상에 있었고, 왕국을 지탱하던 오류가 정화되며 공화국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죠. 그에 따르면 공화국은 사실에 근거하기에 자연주의는 사변이나 미신과 광신으로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거짓 공화주의자가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의 요구입니다. 공화국은 사실을 존중하기에 사실을 밝히는 예술을 보호할 것입니다. 예술이 밝힌 사실들은 다시 공화국의 토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테고 말이죠. 그러니 그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주의면 재현과 정치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연주의는 재현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사실을 밝힙니다. 그러니 두 뿔을 단번에 잡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것은 하나였으니 말이죠.

  제가 졸라에게 어떤 불만을 가질지 쉽게 예상할 수 있으실 겁니다. 제 불만은 중대한 것만 따져도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일단 그가 예술이 재현조차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부터 빡이칠 겁니다. 물론 저는 졸라와 함께 과학과 예술의 분리를 거부할테지만, 그것들이 한 목소리로 말해질 수 있는 것은 과학또한 재현하기 때문이지 예술이 재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전 졸라에게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의 주장이 저렇게 단순할 수 없다는 것을 졸라 또한 알고 있다는 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졸라는 “자연주의”가 새로운 조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게 새롭지 않다는 것은 19세기의 과학의 발전을 문학에 이식했다는 졸라의 또다른 주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자연주의”라는 표현이 새울 뿐 자연주의는 사실 문학, 심지어는 이 세상만큼 오래되었다는 졸라의 주장이었습니다. 졸라에 따르면 자연주의는 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류의 심연”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졸라는 이런 인류학적인 진단을 차치하고서도 아리스토텔레스나 부알로 또한 작품은 사실에 근거해야한다고 주장했으니 자연주의인지 아닌지는 논쟁의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술이 한 사람의 망상이나 한 집단의 광기가 아니라면 당연히도 예술은 사실과 자연에 근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주의는 오래되었다는 졸라의 주장은 물론 모순적입니다. 졸라의 자연주의는 이전의 예술에 부정함으로써 자연주의로서의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졸라의 주장이 모순적이기만 한 것은 또 아닙니다. 졸라는 여기서 역사를 도입하기 때문이죠. 졸라는 사실과 자연이 영원한 것이라는 이전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고, 본질은 영원하되 양태는 시대와 문화에 다양할 수 있다고 수정합니다. 그에 따르면 호메로스 또한 오늘날의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지만, 같은 방식으로 자연주의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군가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즉 태초부터 자연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게 내 의견이다. 바로 그날부터 사실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온갖 역경과 나약함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쟁취하고자 시대를 가로질러 전진하는 군대가 인류라면, 최전방에 선 자들이 학자와 작가다. 절대적 이상이나 터무니없이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미학의 잣대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 문학사가 기술되어야할 것이다.

 

졸라에 따르면 (사실과 자연은 바뀌지 않더라도) 사실적인 것과 자연스러운 것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를 만드는 요인들로 졸라가 거론하는 것은 “풍속”, “사건”, “사상” 등이고요. 그러니 자연주의는 오래되었으면서도 새로울 수 있습니다. 그가 특별히 다른 이름을 붙이며 옹호하는 자연주의는 풍속, 사건, 사상 등에 의해 유발된 새로운 변화를 가리키니 말이죠.

 중요한 것은 언제 무엇이 변화는지일 겁니다. 그의 답은 이러합니다. 언제? 18세기에. 무엇이? 실험이. 물론 실험의 등장은 18세기보다 앞섭니다. 졸라는 “모든 게 연관되어 있는” “문화”에서, “완전한” “변화의 바람”이 분 때로 18세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죠.

 

문학처럼 상상력을 발휘했던 과학은 자연으로 돌아오기 위해 환상으로부터 벗어났다. 문학도 과학을 뒤쫓아 실험적 방법을 채택했다. 18세기의 굵직한 철학 흐름은 광범위한 조사에 있었다. 지난한 모색의 과정이었지만, 목적은 한결같았다. 인간의 모든 문제를 검토하고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역사와 비평은 스콜라 학파의 낡은 법칙 대신 현상과 환경을 연구한다. 순문학 작품에 자연이 등장한다. 곧 루소와 루소 추종자들이 성공을 거둔다. 나무, 물, 산, 울창한 숲이 존재감을 내뿜으며 다시 중요하게 자리매김한다. 인간은 더 이상 지적인 추상물이 아니다. 자연에 의해 결정되고 완성되는 존재다. 디드로는 특히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는 사실성이 구현될 수 있음을 엿보고 관례와 규칙 같은 낡은 체계에 끊임없이 맞서며 시대를 앞서갔다. 장대한 도약과 탁월한 업적이 있었던 18세기로부터 19세기가 탄생한다. 인류가 자연을 토대로 삼고 방법론이란 연장을 채택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그렇다! 나는 이 변화를 자연주의라고 명명한다!

 

이보다 더 확고할 수는 없을 겁니다. 졸라에게 자연주의는 명백합니다. “자연으로의 회귀”, “물질과 현상 연구에서 시작해 실험에 근거하여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작업 방식”. 이것으로부터 주어지는 규범은 단순합니다. “있는 것들에 대한 수용과 묘사”, “정확한 해부”, “직접적인 관찰”. 이것들의 문학으로의 적용 또한 분명하죠. “추상적 인물이나 꾸며낸 이야기”를, “절대적 잣대”를 몰아내고 “사실의 인물”, “실제 이야기”, “일상에서 일어나는 개인들의 삶”을 그리는 것. 졸라에 따르면 이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작업”을 요구합니다. “인간 유형을 만드는 관념가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들과 달리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인간이란 존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이해”해야만 하며, “건물을 짓듯”이 “다양한 인간 사례”를 “연구”하여 사건을 “논리적으로” “설계”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따위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