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역사를 실존, 학문, 정치를 종합하는 기예로 생각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8세기 초반 할러는 기계와 유기체를 다음과 같이 구별합니다. 기계는 형태적인 차이는 가질지라도, 각 부분이 동종적인 물질로 이루어져있는 반면, 유기체는 각 부분이 이종적인 물질로 이루어져있어 다르다는 것이죠. 각 부분의 “이종성”이 무엇인지가 중요한데, 할러는 이종성을 설명함으로써 이종성을 설명하지 않고, 결과의 차이를 통해 설명합니다. 유기체는 물질적인 상태는 똑같아도, 생명이 없어질 수 있는데, 바로 이 차이, 물질적인 상태는 변하지 않고서도 생명이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이종성 때문이란 것이죠. 여기서 “생명이 없어질 수 있다”도 결과로 설명됩니다. 신체의 파괴에서 비롯되지 않는 죽음과,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부패가 차이의 증거란 것이죠. 때문에 유기체는 부패할 수 있는 것으로 분류되고, 부패를 막아내는 “생명의 힘”을 통해서 생명을 존속하는 무엇인가로 정의됩니다. 뜬금없이 생기론을 설명했는데, 이게 중요한 유비항이라 설명했습니다. 생명이란 개념이 생기론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로 조직화하는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들은 다종다양하고, 그것들 사이의 차이가 크지만, 그것들을 동종의 것으로 보게 만드는 것은, 각각이 가진 그 자신을 조직하는 힘이란 통찰이지요.
니체는 이런 조직화가 생물계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니체가 주목한 비슷한 현상은 “자아”입니다. 인간 신체의 각 부분은 생리학적으로 구별될 뿐만 아니라, 그 생리학적인 고유성에 입각하여 발생하는 고유한 충동이 있다고 니체는 주장합니다. 그런 충동들은 (당연히도) 전체를 의식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각 충동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경쟁하고, 그것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우열이 정리되며 결과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될 뿐이지요.(그게 안 되면 죽는 거고요.) 니체에게 있어 자아는 하나가 아닙니다. 저런 고유한 충동을 가진 기관들 모두가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무수한 자아들이 있는 거죠. 저런 것들이 어느 정도 교통정리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다수성이 의식되지 않을 뿐인 것이죠.
그런데 저런 교통정리를 의식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저런 욕망들이 다른 욕망들을 억제하고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해당 욕망을 대표하는 감각이 형성됩니다. 그 감각들은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고요. 이런 이미지들을 공정하고, 감각들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면, 내적인 힘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욕망 조형술이 바로 “금욕주의”입니다. 니체가 금욕주의를 비난했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금욕주의 덕분에 가능해지는 겁니다. 저 기술들을 활용해야만 힘을 집중시켜서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니체가 금욕주의를 비난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금욕주의는 힘을 모으는 기술입니다. 수단인 것이죠. 그런데 그게 잘못 활용되면 당연히도 큰(!) 나쁜 결과가 발생하겠죠. 니체는 금욕주의가 실제로 잘못 활용되었고 그리스도교가 그 증거라고 말했죠. 니체에 따르면 금욕주의의 잘못된 활용은 수단이 목적을 대체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예컨대, 법칙은 어떤 것을 성취해내기 위한 수단이거나,(정의를 위한 자연법) 성취를 위해 파악되어야할 조건이어야 하는데,(발명을 위한 자연법칙) 법칙 자체를 숭배하는 현상이 저런 수단과 목적의 전도의 대표적인 사례란 것이죠. 니체는 이런 법칙 숭배를 극복하기 위해서 예외를 발생시키는 “위업”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역사 연구가 중요한 것이고, 역사를 실현시키려는 현재의 노력이 중요한 것이죠.
니체에게 있어 역사는 1) 서로 다른 개별적인 사건들을 하나로 조직해낸 작품이면서, 2) 서로 다른 개별적인 것들을 하나로 조직해내는 기예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과거 사실들을 하나로 엮어보는, 역사 해석 및 역사 서술 활동을 수행하면 조직해내는 역량 자체가 증대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학문이면서 정치인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역사 서술 자체가 정치적 실천 행위였다는 연구는 차고 넘치고, 이를 원리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로까지 소급시킬 수 있습니다.(전 당연히 원조는 플라톤이라고 생각하지만, 플라톤은 대화편을 쓴지라 증명의 책임이 좀 커집니다ㅋㅋ) 예전에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관련해서 설명할 때 언급한 것이기도 한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라고 주장한 것이 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기서 로고스는 추상적인 이성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제가 아는 한 하이데거가 최초로 내놓은 해석인데, 오늘날 대체로 많이 인정되는 해석입니다. 물론 하이데거 이름은 지워놓고 얘기되고 있지만요ㅋㅋ 아렌트도 이걸 적극 주장했고, 당대 고전학자들도 많이들 주장했습니다.) 다만 말하기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창작(<시학>), 탐구(<분석론>), 궤변(<소피스트 논박>) 등도 말하기에 기초하고 있는 역량/기술이거든요. 정치는 그 중 레토리카라고 부른 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레토리카는 가능한 모든 설득들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궤변도 설득이죠.) 레토리카는 약식 삼단논법에 기초한 설득을 의미했고, 대화자들의 공통성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나가 되는 기술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니 이게 정치의 근거죠.(아렌트가 정치(학) 입문 수업 교재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 아니라 <레토리카>를 선정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아렌트다운 결정이죠ㅋㅋ) 그런데 저런 소규모의 도시 국가 보다 큰 국가에서는, 그리고 내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공통성이 상실되었을 때는, 약식 삼단논법으로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때 동원될 수 있는 최상위의 설득 기술이 “역사”일 수 있단 거죠.(아렌트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걸로는 실존이 설명이 안 됩니다. 저건 그냥 힘의 집약을 위한 기술이고, 그 중 인간들을 통솔하는 최상위의 기술일 뿐이란 것이죠. 역사가 최상위의 설득 기술일지라도, 그것이 올바른 설득일 이유는 없습니다. 또한 저것도 기술이기 때문에, 금욕주의처럼 엄청나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죠. 나치가 그 증거고요. 제가 생각하기로 니체는 이런 문제를 루소를 통해 이해한 듯합니다. 루소는 자신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하면서도 세상에 내놓았죠. 얼핏 생각하면 이는 모순이지만 사실은 모순이 아닙니다. 그 책들은 분명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책들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그 책이 철저하게 그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의미 있을 수 있는 것일 테고요. 개인적으로 쓴 것이고, 그 자신에게만 의미 있는 것일 수 있겠지만, 인간 실존의 공통성에 의해 그런 개인적인 것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게 모두에게 전달되지 않겠지만, 전달되면 의미가 있겠죠. 때문에 자신에게 좋았던 것이 남에게도 좋을 수 있고, 그것이 나에게 좋았다고 말하는 것으로도 남에게 그런 좋은 것을 권할 수 있습니다. 이상할 것 없습니다.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죠.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방법이니까요. 그럼에도 니체는 이게 위선적이라고 생각하려했습니다. 이건 결단에 근거하고 있는 겁니다. 또한 상황 논리에 입각한 결정이고요.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생각할 때, 그런 식의 설득으로는 기껏해야 위로만 전할 수 있을 테고, 니체는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니체는 자신의 책의 의의를 말할 때, 마지막으로 위로를 얘기합니다. 설혹 자신의 철학이 실패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테니 의미가 아예 없진 않을 거라고 말하죠.) 니체는 피해자들에게 무기를 쥐어주길 원합니다. 그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이 무기라고 생각하고요. 괴테나 부르크하르트는 대인배였으니까 남들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일 하며 관조적 삶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고, 니체 본인 같은 소인배들은 관조적 삶을 즐길 수조차 없으니 이런 “실천”이 필수불가결 하단 것이죠.(<반시대적 고찰> 3권에서 니체는 루소, 괴테, 쇼펜하우어로 세 유형을 비교하면서 이를 얘기합니다. 다만 여기서 비교되는 루소는 좀 다른 의미의 루소입니다. 사회주의 같은 쓰레기 사상을 가능케 한 루소인데, 니체는 이건 루소 사상은 아니지만, 루소의 책 덕분에 멍청이들이 떠들고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ㅋㅋ) 그러니 꽤나 적극적으로,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강요할 수 있어야한다고 니체는 생각했던 것이죠.
재미나게도 니체는 저런 강요가 매우 폭력적이고,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지와 다르게 말이죠. 이와 관련해서는 1871년 파리 코뮌이 행한 반달리즘에 대해 니체가 얘기한 것들이 도움이 됩니다. 니체는 파리의 시민들이 인류의 재산들을 파괴하는 것에 화가 나서 방방 뛰었습니다. 자기들 것도 아닌 것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냐고 비방했죠. 근데 말하고 나니 이상한 거죠. 자기 것이 아니면 그들에게 그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그러니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예술이 가난한 사람들, 무지렁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박탈된 이들에게 예술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경멸하는 수단이었던 그것들을 파괴하는 게 정당한 것일 수도 있죠. 니체는 저런 결론에 이르니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그 사람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없다고 고백하게 되죠. 또한 자신이 실제로는 그들과 동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니체 또한 평민 출신이니까요. 그러니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란 생각은 처음부터 착각일 수 있다 생각하게 된 것이죠. 편지에 그 사실을 매우 음흉하게 암호처럼 적어두었지만요ㅋㅋ) 그럼에도 니체는 루브르가 불타고, 위대한 작품들이 파괴되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요. 니체는 이 사태 자체가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왜 파괴하는 것이며(내것이 아니면 파괴할 이유조차 없을 텐데!), 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죠. 파리 민중이 옳았는지는 더 이상 니체에게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혹은 해야만 했던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이게 폭력의 위험성이랑 뭔 상관이 있는지 설명해야겠군요. 니체는 모든 의미 있는 문화는 경멸을 포함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모든 찬란한 문화 배후에는 법적으로 명시적이든 명시적이지 않든 “노예” 같은 존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니체는 이걸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니체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진실은 노예가 “필요”하다는 그런 역겨운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노예가 있을 수밖에 없다가 핵심이었죠. 그러니 자신의 폭력성을 듣기 좋은 식으로 가장하지 말라고, 그게 폭력이고 강요란 것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합니다. 폭력이자 강요니까 “말할 이유가 있어야만 말해야 한다”는 규범이 나온 것이고요. 또 니체가 후기에 이 악물고 폭력적인 주장이 담긴 저작들을 내놓은 것도 자신의 더러움을 숨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위선과 비겁 대신 차라리 악명을 원한다고, 그게 자신의 철학이라고 밝히고 싶었던 것이죠. 본인이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 느꼈으니 촉박함에 쫓겼을 테고, 그래서 더더욱 명시하고 싶었을 겁니다.(실제로 곧 그는 정신붕괴에...)
그런데 문제는 이게 역사랑 뭔 상관이 있냐는 것이죠. 니체에게 있어 폭력을 감수할 것인지, 악명을 떨칠지라도 폭력을 감수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원리는 영원회귀였습니다. 다만 이걸 구체화할 때 역사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먼저 자신이 수행하려는 행위를 매우 거시적인 차원에서 바라봅니다. 그럼 뭐 대체로 모든 것은 의미가 없죠. 그것을 중범위에서 다시 바라봅니다. 이때는 어떤 유의미할 수 있는 맥락들이 보이겠죠. 그리고서 자신이 수행 가능한 행위들을 바라봅니다. 이때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확인해보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해보라는 것이고요. 꽤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무엇인가입니다. 니체는 그게 역사 탐구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전형들(삶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불합리함과 비합리성을 의욕 가능케 하는 사랑의 대상이죠. 그래서 역사가 중요해집니다. 다만 그의 역사에 근거한 동기부여는 역사의 의의, 역사의 목적 이딴 거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니체는 저걸 제일 조심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의 진보를 말하면서 승자의 편에 의탁하려는 놈들이 제일 쓰레기고, 그게 바로 헤겔, 슐라이어마허, 하르트만이며, 다윈이자 니부어고, 그것의 천박하게 대중화된 것이 슈트라우스와 르낭이다가 니체의 레파토리입니다. “역사 진보의 법칙을 말하는 놈들은 일단 좀 꺼져라!”가 니체의 입장이었던 것이죠. 니체는 진보하든 안 하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명성을 얻든, 이름 없이 죽든(니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 악명을 얻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일을 하라는 것이고, 그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얘기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그럼에도”를 품을 수 있게 했을 찬란한 역사적 전형들과 비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뭐 이런 기준을 내세웠습니다. 이게 철학자의 기준이고요. 철학자라면 저 기준을 받아들이고서도 말할 수 있는 게 있어야한다는 것이죠.(그래서 니체는.... 의기소침해져서 자신이 진정한 철학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저번에 얘기했듯이 니체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비애와 쥐어짜내는 고통이 담겨져 있죠.)
암튼 뭐... 그래서 역사이다... 혹은 역사였다... 좀 맥 빠지는 얘기긴 합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서 설명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애초부터 설명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니체의 선택, 혹은 착각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죠... 하여간 그렇습니다.
“무기를 쥐어준다”하니까 생각난 건데...
예수회에서는 입회자에게 순결과 순종만 서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성의 희생도 서약시킵니다.
근데 이게 참 말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전 요즘 가톨릭에서 순결과 순종을 서약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그게 가톨릭적인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걸 비방하는 사제들이 이단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뭐 저에겐 남 얘기지만요ㅋㅋ)
예수회는 태생부터 예수의 군대를 표방했습니다. 그들이 군대라면 무기도 갖고 있겠죠. 학식과 환영(광신이든 미신이든 아니면 스펙터클이든)이 그들의 무기였습니다. 이런 무기들을 그들의 군인들에게 쥐어주고 훈련시킨 병영이 바로 예수회가 세운 학교였고요. 군인을 양성했고, 그들에게 위험한 무기를 쥐어줬는데, 그걸 마음대로 쓰게 방치하는 건 당연히 무책임한 것이죠. 그래서 예수회는 지성을 희생할 것을 맹세시킨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무기를 가진 군인들이 개인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하여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말이죠.
예수회가 뻘짓을 많이 했고, 지금도 많이 하고 있지만(예수회는 지금도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ㅋㅋㅋ), 예수회의 저 희생 맹세는 참으로도 말이 됩니다. 적어도 최소한의 책임 의식은 갖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ㅋㅋ 역시 가톨릭...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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