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찬 선생이 번역한 헤르더의 <독일적 특성과 예술에 대하여Von Deutscher Art und Kunst (1773)> 5장, <독일 역사>를 요약. 원문을 참조하여 수정하였음.
Möser, Justus: Osnabrückische Geschichte. Osnabrück, 1768.
Vorrede로부터 발췌
우리가 국가Nation의 진정한 구성요소인 평범한 토지소유자들에 주목하고, 그들이 겪은 변화 양상을 추적하다면, 독일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역사가 몸체가 되고, 크고 작은 인물들의 역사는 행운이든 불운이든 이 몸체에 딸린 우연들Zufalle로 고찰됨으로써, 제후들의 자율적 통치권Territorialhoheit이나 압제 따위는 행운이나 불행의 결과가 될 것이고, 서사적 진행의 힘을 통해 독일 역사에 하나의 통일성이 부여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우리는 민족성Nationalcharakters의 기원Urſprung과 발전Fortgang과 상이한 처지Verhaltnis를 그 모든 변화 속에서 보다 정돈된 모습으로 명료하게 설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의사가 실제의 병든 육신 없이도 생명과 진료를 서술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법과 관습, 통치자의 미덕과 결함, 잘못된 조치들과 잘된 조치들, 무역, 화폐, 도시, 용역, 귀족, 언어, 여론, 전쟁, 처지 등이 그 몸체 자체와 이 몸체의 지위와 재산에 끼치는 영향력, 입법권이나 국가 기구 전반이 이러한 영향관계에서 때때로 겪게 되는 전환, 인간과 정의와 권리Rechte 따위의 개념들이 점차 형성되는 방식, 인간의 성향Hang이 자율적 통치권에 역으로 작용을 가하게 만다는 저 놀라운 편협함과 뒤틀림, 독일인들의 심장Herz인 기독교와 자유를 옹호하는 윤리가 초래한 저 다행스러운 절제, 내 생각에는 바로 이러한 것들이 완전하게 그려졌을 때, 다른 잡다한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역사화Hiſtorienmahler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사는 중요한 네 개의 시대Hauptperioden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1) 황금시대: 모든 독일 농장주가 각기 자신의 재산과 군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어떤 농노와 평민도 군역제도에 예속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자유를 누렸으며, 기사들과 함께 참여해야하는 방어전 같은 유감스러운 예외를 싫어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기사계급 외에는 국가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농노와 평민 외에는 어느 누구도 단 한명의 영주를 따르도록 매어 있지 않았다. 선출된 기사가 기사계급의 통솔자가 되었으며, 그는 동등한 권리를 지닌 동료들이 제시한 판단을 확인하는 역할만 했다. 이 황금시대는 그 주된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 보다 매력적인 제도가 등장한 카롤루스 대제 치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도 이 고대의 몸체에 붙어 있는 (우두)머리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2) 두 번째 시대: 경건왕 루트비히 치하에서 서서히 시작되었다. 녹봉을 받지 않고 스스로 비용을 충당하여 자신들의 가문과 영토를 지켰던 봉신들은, 루트비히와 그 치하의 파당들에게 군역을 지지 않기 시작했다. 검소함, 신앙심, 재정적 궁핍,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루트비히는 낮은 신분의 기사들을 성직자, 신하, 제국관리들에게 내맡겼다. 이전에는 두 명의 군솔軍率Heermänner만을 휘하에 둘 수 있었던 대주교들, 그리고 직위와 가문을 지키기 위해 네 명의 군솔만을 휘하에 둘 수 있었던 백작들과 군통솔자들은 이제 제국의 토지재산을 임의로 사용하여 자신의 사람들과 종복들을 군솔로 임명하였고, 군사들에게 그들의 통솔을 강제하였다. 매사냥꾼 하인리히는 당시의 보편적인 궁핍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재산을 되찾아, 다소 변화된 형태로 군역제도를 재건했다. 오토 대제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벌인 대외 정복전쟁에서 탁월하고 뛰어난 공훈을 세운 자들에게 공통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부가금을 지불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토를 방어하는 것 외에 다른 의무를 행하려 하지 않는 수천의 군사보다 그와 함께 알프스를 넘은 한 명의 기사가 그에게는 더욱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의 위대함, 당시에 제국이 누렸던 명망, 그리고 그의 시대의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군역제도에 의해 징발된 군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리하여 군역제도는 완전히 무시되고, 억압되고, 잊혀졌다. 카롤루스 대제 치하에서 군사들에게 휴가증을 발급하는 전권을 지니고 있었던 파견관 혹은 군사령은 관직을 잃게 되었다. 지휘권, 군사권, 명령권은 단 한 사람의 손에 쥐어졌는데, 이는 토지 소유자들이나 제국 관료들에게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3) 세 번째 시대: 낮은 신분의 기사들이 거의 모두 사라졌다. 극히 소수의 하급 기사들만이 로마법에 의거하여 제국의 토지재산을 약간 소유하고 있었다. 소유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뿐만 아니라, 단어 자체도 사라져버렸다. 제국의 토지는 도처에서 봉토, 대토, 소작지, 농장으로 변환되어, 제국의 수뇌들과 그 신하들에게 귀속되었다. 과거에는 모든 기사계급이 군역을 지었고, 토지를 소유한 하위 기사계급이 황제의 권좌를 장식하는 보석 역할을 했었다. 슈바벤의 프리드리히는 군역에 예속된 기사들을 통해 황제의 권좌가 예전에 지녔던 영광을 되찾으려 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도시연합과 그 시민들이 새로운 소유권에 대한 희망을 국가에 불어넣기는 했지만, 너무 섬약하고 부드러운 황제의 손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황제는 이 연합세력에 마그나 카르타의 은사를 베풀어 과거 토지소유자들의 몰락을 확실하게 대체할 수 있을 기반인 의회를 만들지 않았고, 도시연합과 시민세력의 뜻에 반하여 모든 것 위에 있는 제국법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후략]
[주변의 왕국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기초로 세력을 확장했으나 독일은 그렇지 못했음. 뜨내기들과 농민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어 방어하는 데 급급. 덕분에 귀족들은 파산함. 군주를 중심으로 계급화가 이루어지고 귀족들도 도시로 이주하게 됨. 신분에 기초한 의무-권리 법률이 실행되기 시작.]
네 번째 시기: 자율적 통치권이라는 행운을 얻었고, 그것이 완성됨. 베스트팔렌 조약.
이와 관련하여 황제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었을 방식으로 종교개혁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구교와 신교를 막론하고 제후들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루터의 가르침은 평민의 자유에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이 가르침을 부주의하게 사용했다면 백 명의 토마스 뮌처가 생겨났을 것이다. 황제가 최초의 봉기를 잘 이용하여, 소작, 대토, 이와 관련된 제국의 제도를 송두리째 파괴하고, 농민을 토지 소유자로 만들어, 영주와 법관과 부자들을 대적하는 데 농민들의 순진한 환상을 이용했다면, 황제는 완전한 전제정치를 이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 웅대한 사상을 품었기에 이럴 수가 없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이는 위대한 결과를 낳았거나 더없이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예전의 재산Eigenthums 개념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법적 지위를 갖는 일이라는 생각을 아무도 갖지 않게 되었다. 이는 귀족계급에게나 평민계급에게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귀족계급에게 재산은 자유Freyheit였다. 평민계급는 시민 신분honore quiritatio이었다. 시민이 되는 명예가 독일 헌정Verfaſſung의 정신이었지만, 영원히 그렇게 남게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종교와 학문들Wiſſenſchaften은 시민보다 인간을 높이 세우고 있고, 비교와 조건으로 주어지던 권리들을 인간의 권리Rechte der Menſchheit가 삼켜버렸다. 편리한bequeme 철학은, 박식Gelehrſamkeit과 통찰Einſicht을 통한 탐구보다, 보편원리로부터 연역하는 것이 더 잘 맞았다. 인간애Menſchenliebe는 기독교의 도움 덕택에 시민애Bürgerliebe와 다르지 않은 것이 되었고, 이제는 [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명예를 실추당한 인간도] 명예를 지니고 공동체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해도 이상할 것 없는 시대가 되었다.
[중략]
독일의 역사를 주의 깊게 연구하는 학자는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 어떤 높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국에 대한 유용하고 실용적인 역사를 획득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제국의 국토와 토지재산과 관련된 이러한 모든 변화 및 그 원인과 결과를 독일 제국의 개별적인 모든 부분에서 굽어보고, 이를 하나의 작품 안에 통합해 서술할 수 있는 높이, 덧칠이나 칼질하지 않고 힘차고 순수하게 저술할 수 있는 높이에 그는 이르러야 하다. 하지만 역사가가 그러한 높이에 올라 그의 영역 전체를 완전한 빛 속에서 굽어보기 전에, 가터러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정당하게 요구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작업은 독일인의 천재Genie와 근면에 적합할 것이며, 그 노고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군주제Monarchie를 통해 민족을 통합하려는 강렬하고 격렬한 성향에 조응하는 명예를 향한 노력, 그리고 이러한 성향에 조응하지 못 한다면 무너질 기둥을 더욱 빨리 안전하게 붕괴시킬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자유를 향한 노력, 이 두 가지 덕분에 독일 역사는 사람들에게 경탄과 교훈을 선사하는 장엄한prächtigſte 드라마Schauſpiel가 될 것이다. 이처럼 양쪽에서 작용하는 힘들과 그것이 가져올 결과, 이것들이야 말로 철학자들에게 중요한 진리들이다. 그것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자들은 예측Berechnung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변화의 원천들Bewegungsgründe이 우리를 깨닫게 할 것이고, 우리 민족에게 명예를 가져다 줄 것이다. 위대한 역사가Geſchichtsſchreiber가 그것에 참된 빛을 비춤으로써,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Provinz에서 진가를 알아 볼 수 있게 될 테니까. 시대의 관습들Coſtume, 다양한 법률들Geſetzes과 여러 헌정들 각각의 양식Stil, 고전적인antiken 가르침들Worts, 이 모든 것들이 예술애호가들Kunſtliebenden을 만족시킬 것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종교와 법학설Rechtsgelehrſamkeit의 역사Geſchichte, 기예들Künſte과 ſchönen순수 Wiſſenſchaften학문들에 대한 철학은 정치사Staatsgeſchichte와 분리불가분의 관계를 맺기에, 앞의 계획Plan과 잘 결합될 수 있다. 물론 장인의 손Meiſterhänden에서만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리슐리외 공작의 전갈과 연애편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공물들Künſte은 고유한 관계Verhältnis 속에서 양식Stil을 갖추고 있다. 모든 전쟁은 고유한 음조Ton를 지니고 있으며, 국가의 정치행위는 종교 및 학문과 결합된 나름의 색채Colorit와 의상Coſtume과 방식Manier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는 우리에게 일상적인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적인 성급한 정신Genie이 소설Roman에서처럼 정치Staatshandlungen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광맥을 조사하고 시추하는 지하에서조차 그 자태Linie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는 이런 것들을 느낄 줄 알아야하며, 학예와 학문의 역사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만큼 충분히 탈취해내어, 정체Staatsmoden 변화Veränderungen의 경위Rechenschaft를 설명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조약을 작성한 사람들이 마음에 품고 있던 원칙들Grundſätze에 대한 방대한 지식Kenntnis을 갖추어야만 한다. 토마지우스를 언급하지 않고, 그리고 그가 얼마나 조심성 없이 자신의 시대를 이성적 사고로 이끌려 하였는지에 대한 앎wiſſen 없이는, 훗날 공적öffentlichen 행위가 나아간 방향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Rechenſchaft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 후반부의 양상Stil 또한 각 파당들이 그로티우스보다는 바로 그 직전의 학술 세계에 만연했던 학자연한 편리한 철학에 기댔다는 사실을 통해서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로티우스처럼 역사학Geſchichtskunde, 법학, 철학을 긴밀히 결합해낸 슈트루베가 독일적 사고방식에 열어준 새로운 변화Wendung는 여러 다양한 정치행위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궁정Höfe에 대한 공공의 신뢰는 그러한 원칙들과 그러한 인물들에 달려 있기에, 그들의 이름 또한 가장 위대한 장군들의 이름과 함께 언급될 가치가 있다. 종교적 견해로부터 내전이 발발할 수 있기에, 종교의 역사는 국가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다. 인간들의 자기애Eigenliebe는 그것의 정당성Rechthabung을 위해서라면 명예와 재산을 기꺼이 희생시킨다. 승자는 언제나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간다.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승자는 구교와 신교를 막론하고 그 모두를 자신의 마차에 사슬로 묶고 끌고 간다...... 이렇게 묶인 이들을 위해 손을 뻗지 않는 역사가들에게 화가 있기를! 그 결과들에 가까이 다가갈 역량을 지니지 못한 역사가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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