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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근대 시기 연구들의 한계에 대한 지적

강연을 듣다가 문득 든 생각.

 

국내에는 문학 및 철학사 연구가 특정 인물에 대한 연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학계에서는 시대 연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즉 흄 전공자라고 할 경우 18세기 영국(잉글랜드+a) 전공자로 보는 것이다. 이런 식의 관점(?) 전환의 장점은 특정한 시대의 독특성을 연구자들이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뭐 독특성 인식이 강해지면, 구별할 필요가 없는 것도 구별하게 된다는 게 흠이지만, 뭐가 되었든 시대의 고유성, 독특한 문제의식들, 독특한 단어 사용에 주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철학과가 특히 이런 문제에 둔감한데, 철학사를 가르치는 교양 수업의 병크가 거진 여기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과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하니 멈추기가 어려워 조금 더 말하자면, 원어 원어 어쩌구 하면서 외국어 공부를 강조하지만(내가 독일어 공부를 안 한다고 욕먹는 이유는 근거 없는 외국어 강조 때문이다), 당대 용례도 제대로 모르는 인간들인 경우가 허다하고(솔직히 말하자면 난 국내 철학사 연구자 중 당대 용례 연구를 확인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다), 그러니 회의주의”, “이성”, “법칙등에 대해서 현대의 인상을 가지고 당대의 논쟁을 이해하고, 그러니 븅신같이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뭐 암튼 말이 헛나갔는데, 보통은 세기 단위로 연구하고, 해당 세기의 특수성을 인식하는 것에 주목해서 연구를 한다는 아주 평범하고 상식적인 학계의 사정을 얘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세기의 특수성이 자신의 연구 영역을 벗어나면 사라진다는 것에 있다.

최근 목격한 일을 과학사에 대한 것이었다.

 

철학이나 문학이나, 역사학이나, 근대 시기 연구의 최신 경향성은 당대 학적 동향에 대한 이해에 있다. , 무엇이 학적이었고, 어떤 것이 학적으로 이해되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고, 당대에 새로운 학문적 성과와 이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당대의 다양한 담론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18세기 연구들은 화학 언어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18세기에 화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니 꽤나 당연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학사적 상식이다. 화학에 대한 기본 이해가 깔려야 썰을 풀 수 있는데, 여기서 깔려야할 화학에 대한 기본 이해는 현대 화학이 아니라 당대 화학이고, 이는 당연히 과학사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전제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화학이 연금술과 달라진 시기 어쩌구 하면서 썰을 푸는데, 모두 추상적이고 근거 없는 소리뿐이었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고 지적할 수도 없었다. 여기에 화학사적 지식을 전제해야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연구자들이 기본을 안 지키게 되는 것이고, 제대로 된 토의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족으로 기본을 말하자면 이러하다.

화학이라는 학문의 발생은 적어도 세 시기를 인식해야 한다.

첫 번째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으로 이때 연금술과 화학이 분리된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18세기 중반으로 화학적 문제들과 화학적 기술들이 정립되는 시기이다.

세 번째는 19세기 중반으로 이때 분과학문으로서의 화학이라는 것이 학문론적으로 제대로 성립된다.

 

이러한 세 시기에 대한 인식은 매우 중요한데, 화학의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느 시기에 주목하냐에 따라서 논제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무튼 저런 이해는 적어도 18세기 화학 언어를 이해하는 데 있어 당연히 전제되어야할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저런 구별법을 내가 이해는 것만 봐도 이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화학사 책, 과학사 책을 몇 권만 봐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물론 국내에 제대로 된 화학사 학술교양서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저런 것들을 모르고 떠드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충 이런 얘기를 하고 나니 바로 철학 연구들을 까고 싶어진다. 이는 최근 본 흄 개론서를 직접 분석하면서 얘기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