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보고
이하 카톡 복붙(J 씨에게)
어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보다가 저번에 J 씨랑 얘기한 게 떠오르더군요.
스콜세지는 확실히 과거랑 달라진 면이 있는데, 그게 연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정신”이라고 할 만한 게 바뀐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런 변화는 드 니로와 디카프리오의 차이로 상징화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아닐까 싶네요.
<더울월>의 핵심은 미국의 정체성과 현주소겠지요.
<갱스 오브 뉴욕> 이후의 미국의 정신을 집약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성공 신화를 반복하는 영웅으로서 조던 밸포드가 등장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다만 이 인물 자체가 영웅과 안티-영웅 모두를 거부하는 독특한 유형이란 게 스콜세지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인물을 옹호하고 찬양하기는 뭐하지만, 그렇다고 비난하기도 좀 그렇죠.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죠.
영화 속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언급이 되지만 그건 불교 수행자나 그런 것이고, 조던의 말처럼 “평범한 직장인”은 모두 부자가 되길 꿈꾸지요.
마지막 장면에서 조던의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토록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에게 온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도 그렇고, 조던을 잡아넣은 덴헴은 (부패하지는 않은 인물임에도) 그를 감옥에 넣고 나서 묘한 반응을 보여줍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그는 가난한 승객들을 보면서 조던의 말을 곱씹는 것 같기도 합니다.
스콜세지는 이런 사실들을 부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단 진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조던의 짓거리는 <좋은 친구들>의 주인공 마냥 “폼난 인생”에 대한 굉장히 독특한 해석, 자신의 특별함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라고 보긴 어려우니까요.
금융에 대한 복잡한 이해는 보여주지 않지만, 스콜세지가 금융을 패악질로 이해한다고 단정지을 이유는 없지요. 금융이 그토록 중요함에도 결국 굴러가는 것은 광기와 그 광기를 견딜 또 다른 광기(마약과 하루 두 차례의 딸딸이)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조던이 과한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이루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가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변질이 그렇게 기이하고 추악한 것은 또 아니죠. 그가 하는 짓거리들은 생각보다 내적 일관성이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스콜세지의 진단과 디카프리오의 삶 자체가 꽤나 공명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도 듭니다.
디카프리오가 무슨 신조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의 여성관은 조던과 비슷합니다.
조던은 이혼을 하고 나오미와 만나는데, 그의 이런 행동은 뭐라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의 그러한 선택이 도덕적으로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그른 것 같지도 않은 거 같거든요.
조던이 말하듯, 결국 부부관계는 성생활인데, 그의 본처는 매력을 잃어가고 나오미는 매력이 무궁무진한 상황이었죠.
그의 아버지는 결혼은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지만, 매력 없는, 성생활 없는 결혼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을 안 합니다.
정확히는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최근 제가 꽤나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지만 평생 연구할 일 없는 주제라고 생각되는 문제가 바로 이 주제입니다.
신화에서도 그렇고 루터의 종교개혁에서도 그렇고 결혼은 신성한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의 완성이며, 결혼하지 않는 것은 삶을 완성하지 못한다는 관점이 있었죠.
여기서 얻는 게 무엇이냐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를 긍정하는 게 사회적으로 필요했단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인구 재생산 때문이 아니라, 개개의 사람들이 그걸 원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즈맹 은 종교개혁이 결혼 관념과 맺는 관계에 대해 꽤나 주목하는데, 그의 결론은 결국 영성 생활의 보편화는 결혼의 신성함을 되찾는 일이었다는 것이죠.
그는 가톨릭은 제공하지 못했고, 루터는 제공한 것 중 굉장히 중요한 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꽤나 시사적인데, 오즈맹 본인이 사회사 연구, 그 중에서도 결혼법 연구에서 신학 문제, 사상사의 문제, 정신의 문제로 넘어간 케이스기 때문이지요. 그는 결혼 관계 자체를 연구하다가 신성함을 다루지 않고서는 이 문제가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연구를 확장한 것입니다. 온 평생 말이죠)
하지만 현대에는 결혼의 신성함은 딱히 공적으로 보장되지 않지요.
제가 자주 언급하는 것이지만 결혼을 간략히 치르고, 동거와 결혼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사실 결혼을 부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혼이 같이 사는 것, 애를 같이 키우는 것 이상이 아니라면 딱히 개념적으로 특유할 이유가 없거든요.
법적으로 결혼관계를 규정하긴 하지만 이는 과거의 “결혼” 관념의 잔재에 불과한 것이지요.
조던은 이런 사고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실제로 이에 대해서는 별 답이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디카프리오처럼 능력이 있다면 외적으로 완벽한 애인을 갖고, 그 완벽성 유지를 위해 애인을 갈아치울 사람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남녀불문하고 말이죠)
사실 그런 점에서 조던의 외침은 꽤나 설득력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얻을 것은 다 얻지 않았냐면서 브레이크를 밟길 원하는데,
이때까지 브레이크 밟지 말고 푹악셀 밟으라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들이 위선자라는 걸 모르는 것이죠.
조던은 위선자가 되기 싫어서 끝까지 간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것은 조던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가 그렇게 말하면서 정작 문제가 터지면 위선을 행하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의 덕목 사전에 창조성은 있어도 겸허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스콜세지는 결국 이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욕망의 잡탕 사태가 현실인데, 이 현실을 비난할 근거 또한 없다는 것을 말이죠.
꿈을 꾸고, 정신을 지키라고 하기에 그것은 거짓이거나 위선이거나 광기인 것이죠.
맥도날드에서 푼돈이나 벌면서 할인마트에서 산 할인상품들을 끌어 않은 못생긴 마누라를 가진 자의 정신승리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덴햄이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실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사회적 정의가 있을 수가 있을까요?)
이런 현실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게 <더울월>이고, 이런 시대의 영웅(혹은 영웅의 부재)을 보여주는 것이 조던인 것이죠. 그의 천박함과 우스꽝스러움은 그를 영웅으로 보기 어렵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그는 결국 우리 모두의 꿈을 성공시킨 장본인이고, 꿈을 성취할 공간(미국과 미국을 재현하는 스트래튼 오크먼트)을 제공한 장본인이니까요.
게다가 그의 우스꽝스러움은 그를 범죄자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미성숙이라면 모르겠으나, 정작 성숙이 무엇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죠.(매드 맥스인 아버지는 성숙한 건가요?)
아마도 이 상황을 극복할 묘안을 발견하지 않는 한 스콜세지가 갑자기 놀라운 정신을 재현하는 영화를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 애초에 그런 성향의 사람도 아니니....
무튼 이런 해석을 하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조던 벤포드의 화신 같은 우리의 디카프리오 형님에게 경의를 표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