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 과학철학이냐 실용주의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걸 일상에 올려야할지 쪽글에 올려야할지 잘 모르겠다.
블로그를 비망록 정도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요즘에는 좀 더 공개적인 공간으로 여기게 되었고, 나름 내 생각 자체에 형식을 부여할 공간으로 이 공간을 사용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분류에 신경이 좀 쓰인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고의 대상뿐 만 아니라, 사고의 형식과 기능도 알 필요가 있다.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본 이후로 퍼스에 꽂혀서 퍼스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읽다가 현타가 와서 글을 쓰고 싶어졌다. 퍼스는 실용주의의 아버지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 사람의 철학은 완전 사변철학이다. 뭐 본인도 “사변”이란 단어를 여기저기 붙이면서 신나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사변철학이기도 하고, 칸트의 문제의식을 연장했다는 점과 사실상 헤겔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사변철학이기도 하다. 헤겔의 정반합이 여기서는 삼원구도로 바뀌었을 뿐이다.(뭐 둘 다 결국에는 사원구도라는 점마저도 같다... <티마이오스>의 첫 문장은 여러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암튼 졸라 사변적인 논의들로 모든 정신의 동근원적 형식을 따지는 통에 질려버렸고, 이후로는 논리학을 분석하면서 추론의 형식들을 검토하니 논리실증주의의 악몽이 떠올라 더욱 질려버렸다. 어디 가서는 항상 논리실증주의를 옹호해주고, 그들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 못한 채 비난할 뿐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다고 열을 올리지만, 적어도 논리실증주의자들의 글이 읽기 싫은 종류의 글이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게 뭔데?”라고 물으면 5분 안에 답변을 들을 수 있는데, 그걸 위해 수백 페이지를 읽어야한다는 것은 언제나 끔찍한 일이다. 그런 긴 증명과 복잡한 분류는 무조건 못 믿겠다는 놈들에게나 늘어놓아야할 종류의 것이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영업질에도 전략은 필요한 법이다. 무튼 질리도록 추론들을 분석하고 있는 것을 보고 기운이 다 빠졌고, 이것들이 뭔 쓸모가 있나 하는 현타에 빠졌다.
현타에 빠진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풀어놓자면 이러하다. 논리실증주의자도 그렇고 퍼스도 그렇고 추론을 최대한 고정시켜서 합리성을 보장하려고 했다.(사실 퍼스는 법칙 대신 태도를 중시했다고 이빨을 까던데 그런 거면 이딴 작업을 왜 했는지가 설명이 안 된다. 그도 분명 이런 꿈을 갖고 있긴 했다. 그가 말하는 “가설”에 속하는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뭐 이런 시도야 이해가 간다. 당장 안아키가 득세하고, 진화론을 부정하는 세력이 교과서를 수정하기도 하는 현실이라면 충분히 이런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뭐 당대에는 나치즘 같은 게 이런 예였겠지만... 무튼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무자르듯 잘라서 대가리 깨진 것들은 좀 봉합 수술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저런 작업을 했다고 생각하면 참 이해가 가는데, 문제는 그들의 실질적인 연구성과가 그래서 무엇이냐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인지과학에 어느정도 기여한 점이야 있겠지만, 대체로 참 도움이 안 되는 작업을 늘어놓았다. 뭐 추론 규칙을 열심히 분석한 것은 좋긴 한데.... 그들이 제공한 올바른 추론 규칙은 과학 활동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긴 하다. 대체로 20세기 초반까지 과학의 완벽한 승리는 담보되지 않았었다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철학적 정초 작업이 과학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그러니 과학자들도 철학자 비슷한 작업을 한 것이었을 테니까.( 못 믿겠다면, 마흐와 라이헨바흐의 작업을 비교해보아라. 다른 버전으로는 푸앙카래와 바슐라르가 되겠다) 뭐 하지만 일단 그런 시대가 지나갔는데 그런 작업이 뭔 도움이 되었겠는가. 일단 과학이 성공하고 나면 합리성을 설명해줄 수 있다고 하는데, 합리성이 설명이 안 되어도 오늘날처럼 과학이 합리적이라는 게 상식인 사회에서는 그런 정당화는 별 시덥지 않은 소리일 수밖에 없다.(모들린은 그런 점에서 시덥지 않은 소리만 일삼는다. 프리드먼의 후예란 것을 생각해보면 위인이 자기 자식조차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플라톤은 오늘도 가뿐히 1승을 적립한다)
이런 뻘짓의 발전된 형태가 퍼스의 꿈이자, 오늘날 분석형이상학자들의 꿈이 되시겠다. 존재자들을 결정해놓고 그것들로부터 상상 가능한 모든 것들이 추출되는지를 검토하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꿈같은 일들을 반복하다보면, 진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데, 그 꿈에서는 아주 제한된 몇 개의 존재자들로 세계 전체가 설명이 된다. 뭐 이런 가정을 할 거면 기분이라도 좋게 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추출하면 될 텐데(라이프니츠는 그런 점에서 참 현명한 사람이다), 그것도 아니라서 이들의 꿈은 악몽이 된다. 지들이(퍼스는 그래도 현직 과학자였으니 빼자...) 발견한 것도 아닌 남들이 이런 것 같다고 말해서 탄생한 목록을 가지고 북치고 장구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이 안락의자의 철학자들을 공격하는데, 누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서로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고 욕하면서 자신이 맞다고 우기는 것은, 현직 과학자가 아니니 현장의 앎이 달라지면 의사소통부터 안 되어 생기는 코미디일 뿐이다. 자신들의 짓거리가 희극의 한 장면(능력이 없어서 아쉽다. 내가 몰리에르 같은 인물이었다면, 현대판 <상상병 환자>를 집필했을 텐데 말이다)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석철학 밈으로 너드들을 모집하여 재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 분석철학계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퍼스도 비슷했다면 너무한 소리 같기도 한데(퍼스는 그래도 이것저것 잘했으니), 그 놈이 꿈꾼 최종이론은 비슷하게 말이 안 된다는 소리다. 그런 꿈이 실현된다고 뭐가 기분 좋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종이론이 생겨난다고 과학은 끝이 나지도 않는데 말이다.
최종이론이 확립되어도 과학은 끝나지 않는다. 반 프라센도 이런 소리를 했고, 포퍼도 이런 소리를 했다. 포퍼가 의외의 인물일 텐데(반 프라센이야 원래 저런 말을 하는 놈이니까), 포퍼가 생각보다 참 괜찮은 사람이었음을 언급하고 싶다.(인간적으로는 좀 병맛이었어도, 과학에 대한 입장에서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소리다) 포퍼는 자서전 제목도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고 붙였는데, 나름 이유가 있다. 포퍼가 과학/비과학(혹은 사이비 과학) 구획 문제에 골똘한 것도 있지만, 결국은 태도 문제로 나아갔고, 결론은 매우 단순하다. 결국 우리에게 과학철학이 부족해서 “과학적” 활동이 부족한 게 아니란 소리가 되겠다. 그의 답은 더욱 나아가는데, 우리가 앎이 부족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란 소리까지 나온다. 이게 무슨 의미냐?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이 이미 있어도 소용이 없단 소리다. 그 문제가 그 이론으로 해결될지 모른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똑같다는 소리다. 이때는 이론적 앎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이 부족해서 문제가 된다. 나는 이것을 “배치 문제”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배치 문제의 한 예는 이런 것이다. 국내에는 은퇴 연령이 있어서 노인이면 우리가 생각하는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노년 인구에 매우매우매우 좋은 앎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그들이 고학력자고 유명 기업에서 높은 자리까지 갔다는 그런 소리가 아니다. 특정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서 특정한 방식의 앎을 다루는 데에 능숙한 사람이 많단 소리다. 이런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재)배치하는 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노인을 죽이는 것은 노화가 아니라 은퇴라는 속담을 기억하라. 또한 이는 복지비용을 뽑아내는 신묘한 방안이다) 문제는 이 능력들을 분류하고 배치하는 게 졸라게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즉, 이미 널려 있는 것을 배치하는 것도 졸라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소리가 되겠다. 앎도 마찬가지이다. 무엇이 진짜 과학인지라는 물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앎이 무엇인지를 묻는 게 현망하다
문제는 지금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합한 앎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위치에 있는 책임자에게 없다는 사실이다. 당장 코로나 사태만 봐도 그렇다. 코로나19가 판데믹으로 번지고 나서 부랴부랴 이 얘기 저 얘기 뽑아내는 놈들은 대체로 믿음이 안 간다. 부랴부랴 짜낸 얘기들이 뭐가 제대로 되었겠는가. 판데믹 이전에 이미 관련된 문제를 분석한 것들을 찾는 게 낫다. 프레드릭 켁이라는 프랑스 인류학자는 홍콩 사스 사태를 분석하면서 이 문제를 이미 다뤘다. 그는 판데믹의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려할 것을 촉구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판데믹을 그자체로 막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불가능하고(위험사회니, 이벤트X니 하는 것들을 생각해라), 중요한 것은 이에 대응하는 자세라는 것을 지적했다. 뭐 뻔한 얘기였다. 국제 공조를 통해 극복해야한다는 그런 소리다. 재미난 것은 그가 가장 우려했던 가능성이 현실이 되었단 것이다. 국제 공조는 둘째 치고 서로 이상한 소리하면서 븅신짓 하다가 사태만 심각해졌다. 중국 같은 나라의 븅신성은 둘째 치고(사실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문제다. 중국에는 똑똑한 사람이 많은데 중국의 국제정책은 왜 이상한 것일까? 이것은 사회주의의 역사와 중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특성이다) 미국도 병크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서는 아연실색하였다. 뭐가 되었든 켁은 예언을 했고, 필요한 역량들과 정책들을 제시해놓았지만 아무도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책가 중 책임 있는 사람들 중 켁의 책을 읽은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 올바른 진단이다.
문제를 뒤집을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정말 문제인가? 당장 인류학자들 중에서도 켁의 연구를 안 본 사람이 수두록하다. 현대 학계에서 쏟아지는 연구들을 모두 따라갈 사람은 없고, 그가 진단하는 문제와 해결책을 마음 속에 항상 새겨두는 사람은 더욱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할 일 많은 행정가들과 정치가들, 즉, 정책가들이 그런 걸 모르는 게 뭐가 이상하냐는 소리다. 즉, 이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책가들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고, 그들이 모든 것을 알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매우매우 바보 같은 해결책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앎들을 빠르게 재배치하는 것이다. 이미 쌓여 있는 수많은 것들을 속에서 뭔가를 쏙쏙 빼내야한다. 문제는 이것이 졸라게 어렵다는 것이다. 학적인 것이야 그나마 좀 쉬운 편이다. 직관력 좋은 학자들을 고용해서 그들의 직관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인재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언어적인 앎들을 동원하는 일은 이것도 불가능해서 더욱 어렵다. 즉, 문제가 터지고 나서 전문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다는 소리다. 시작부터 손해를 보는 것은 덤이다.
가장 좋은 답변은 역시나 뻔한 소리다.(항상 느끼지만, 진리는 뻔한 것이다. 상식적이지 않은 소리를 하는 놈들은 대체로 머리에 나사가 빠진 놈들이다) 즉, 알고 있는 사람들이 책임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는데, 창구를 열어두면 수십만이 달려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즉, 자격 없이 “누구든 알면 찾아오세요” 라고 하면 졸라게 귀찮게 할 뿐 도움 되는 답은 1도 내놓지 않는 사람들로 득실거리게 된단 소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렇기에 뻔하지만 중요한 기획일 수밖에 없다. 바로 계몽이란 프로젝트이다. 사람들이 대체로 수준이 높아지면 자가검증과 교차검증이 쉬워진다. 와서 뻘짓하는 사람들도 줄 수 있고, 교차검증된 상식들에 의해 앎들이 다른 곳으로 잘 전파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도 계몽의 진중한 기획인 자기표현의 기술 증대, 암묵지를 명시화하기, 말로 전달되지 않던 것을 말로 전달하기라는 훈련을 통해서만 성숙할 수 있다. 뭐 다른 소리가 아니다.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면 국가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상식적인 소리가 되겠다. 반대로 국민을 개돼지로 만들면 정책가들 모두가 하고 싶지 않은 결정을 하게 되는 븅신 같은 경우도 생긴다.(태평양 전쟁을 원했던 고위 정책가는 없었지만, 결국 그들이 국민을 전쟁밖에 모르는 개돼지로 만들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전쟁을 하게 되었다는 가토 요코의 분석을 참고해보아라) 대학에 있다 보면 근대가 문제고 계몽이 문제라는 주장을 들을 일이 많아지는데, 사실 대부분의 문제는 비근대, 비계몽이 문제다. 쓸데없이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들의 목록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배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빠른 형식 체계를 고안하는 것이 세상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퍼스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그런 문제에 매달렸는지 알면서도 참 모르겠다.(뭐 나도 그랬으니 퍼스도 그랬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