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쓰지 않은 책들을 위한 서문 – 니체 흉내내기

개선비 2020. 10. 2. 15:14

서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최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주제들을 나열해볼까 싶다. 보통 이런 얘깃거리가 생기면 몇 번 썰 풀고 끝냈는데, 그러다보니 결국 글로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라도 남겨 두어야 나중에 논문으로든 에세이로든 발전 시킬 수 있을 것 같아 흔적을 남겨두려고 한다. 이것은 쓰지 않은 책들을 위한 서문을 써서 출판한 니체의 작업을 작은 규모로 흉내내는 것이기도 하다.(나는 이처럼 모방으로써 존경을 바친다)

 

1. 분석철학의 세 독단

콰인의 <경험주의의 두 독단>을 패러디하는 글이다. 논문 형식이 어울릴 만한 주제이다. 콰인의 두 독단 비판에, 데이빗스의 세 번째 독단 비판을 역으로 뒤집는 논문이 될 것이다.

1) 분석과 종합이 독단에 불과하다는 독단에 반하여

2) 부분이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전체론(holism)만을 추앙하는 독단에 반하여

3) 개념적 도식이라는 유용한 모델이 불가능하다는 근거 없는 독단에 반하여

이러한 비판의 백미는 그들의 비판을 역이용해서 그들의 비생산성을 고발한다는 데에 있다. 개념적 도식을 활용하여 그것이 부분에 불과하지만 “전체”를 구성해냄을 보임으로써, 그것들이 분석/종합 구별을 창안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그들이 안 된다는 모든 것을 동원하면, 된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것들이 잘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가 있다. 이것은 유머든 아이러니든 높은 것을 낮은 것으로 하든, 낮은 것을 높은 것으로 하든, 뒤집기라는 점에서 참으로도 명랑한 글이 될 것이다.

 

2. 계몽이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세 번째 답변

이 글은 논문보다는 팜플렛이 어울릴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답변이도록 강제하게 한 전례들(칸트의 답변과 푸코의 답변에 이은 세 번째 답변이라는 사실)이 팜플렛 형식으로 쓰였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칸트에 대한 푸코의 비판을 토대로 문제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푸코가 칸트를 그렇게 이용했듯이, 나 또한 푸코를 이용하여 푸코를 반박할 것이다. 인간학의 선잠에서 “깨어나” 인간 없는 인간학으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푸코의 “계몽”에 빅엿을 먹여주고, 인간 없는 인간학이라는 선잠에서 “깨어나” 더욱 칸트적인, 하지만 너무나 칸트적이기에 이제는 칸트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한 인간학으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이제 레비스트로스의 이름표가 붙은 인간 없는 인간학은 끝장이 났다. 에두아르도 콘의 이름이 붙은 “인간을 넘어선 인간학”, 니체의 이름이 붙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인간학”, 퍼스의 이름이 붙은 “인간중심주의가 아닌 유사-인간중심적인anthropomorphic 인간학”이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을 내고 있다. 우리는 푸코의 잠꼬대를 바라보며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달랑베르의 꿈을 가지고 노는 디드로처럼, 푸코의 꿈을 가지고 놀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