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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을 감성학으로 부르는 것에 대하여

개선비 2019. 9. 14. 14:49

미학을 감성학으로 부르는 것이 마치 철학사적 진리로 통용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오직 독일철학사적 맥락만을 검토한 협소한 접근 방식이다. 우리는 감각적 논의의 발전을 다양한 맥락으로, 그리고 영국, 프랑스, 독일적 맥락이 혼합되면서도 구별되는 형태로 발전했음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먼저 감각적 논의의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영국을 먼저 살펴보자. 영국의 경우 감각적 논의는 피론주의적 에세이 장르의 발전과 밀접하게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3대 섀프츠베리 경은 감각적 논의를 현상적 차원에서 포착하였고, 현상적 차원에서 목격되는 관념적인 것들이 어떻게 구조화될 수 있는지를 포착한 인물이다. 물론 현상적 차원에서 목격되는 관념적인 것들의 구조화는 몽테뉴에서부터 시작된 글쓰기이며, 몽테뉴는 불확실한 현상들 속에서도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는 (유일하지 않지만 각각의 매력이 있는 여러 종류의) 삶의 형식을 추출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렇다면 섀프츠베리는 무엇이 특별한가? 섀프츠베리는 현상들을 정리하는 시각이 메타적 차원임을 주장하며, 그것들을 포착하는 것의 우월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우월한 시각을 한편으로는 미적인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인 것으로 배치하였다. 그는 현상들을 같은 수준에서 포착할 경우 미적인 것들은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미가 비례적인 관점에서 포착되기에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형식화함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는 미적 지각을 통해 주장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아우구스티누스, 혹은 신플라톤주의(플로티누스는 비례적 미론의 한계를 바로 이 사례로 지적한다.), 심지어 플라톤에게서도 포착될 수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섀프츠베리는 이러한 실례를 모던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서 설파하였고, 이러한 메타 인식에 입각하여, 도덕론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은 섀프츠베리의 이러한 입장, 한편으로는 현상적 차원에서 우리들이 지각하는 것들을 구조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구조화를 통해 얻어진 질서를 도덕적 논의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여기서 영국적 맥락의 특수성은 현상적으로 파악되는 관념들이 정서의 냄새를 풍긴다는 점이다. 물론 정서(emotion)란 표현은 흄이 영국적 맥락에 처음으로 도입한 언어고, 이전에는 분명 감각(sense)이란 의미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고, 흄 이후에도 언어가 급변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언급하는 감각이 관념적이며, 그것 자체로 어떠한 추동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기에, 이러한 논의들을 (약간의 시대착오를 감수하고) ‘정서주의(emotivism)’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먼저 영국적 맥락은 감성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은 대상들을 지각한다는 차원에서 미적 지각을 논의한 것이 아니라, 추동되는 정서들이 스스로를 구조화한다는 차원에서 미적 지각을 논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1760년대 말부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언어가 독일로 수입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독일적 맥락은 영국적 맥락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상태로 발전해온 상태이기에 영국적 맥락에 대한 오해에 기반하여 창조적으로 발전한다.
독일적 맥락의 특수성은 독일의 미학적 논의가 한편으로는 라이프니츠를 중심으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발전의 주체가 대학 내부의 철학자 집단이었다는 점에서 특수함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은 서로 구별되기 어려운데, 이는 라이프니츠 철학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감성학적 측면과 신학적 논의를 연결하는 (학문적) 기교를 통해 종합된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들은 한편으로 아직 “학문”으로 부르기 어려웠던 당시의 (수준 낮은) 학문을 쇄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논의를 신학적 차원과 결부시킴으로써 대학-철학자의 사회적 지위를 재규정하려고 시도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논리학적인 관점에서 라이프니츠의 수많은 시론들을 체계화하였고, 학문화하였다. 동시에 이러한 논의를 설교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피론주의적 에세이로 설파되지 않는다. 그들은 체계화된 학문의 언어를 통해 감각의 형이상학적 지위를 밝히고, 감각들을 고양시켜 (이 또한 약간의 시대착오를 감수하자면) 교양을 형성하는 것을 그 목적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추동되는 정념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화된 형이상학적 질서가 우선되고, 형이상학적 질서와 감각적으로 파악되는 것의 상호 결합을 통해(어떤 의미에서는 순환, 어떤 의미에서는 상호 보완) 자신들의 입장을 정교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밝혀야할 것과 추동되는 것이 독립적이지 않고, 일종의 불완전한 지각인 감각을 정교화하여 인식으로 만드는 것이 감성학의 주된 목적이고, 이는 선험적으로 밝혀질 수 있는 형이상학에 의해 지지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독일에서는 미학이 감성학이고, 지각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불완전한 인식으로 감각이 위치하며, 대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가진 순환성에 대한 비판, 경건주의의 반격으로 인해 독일적 감성학, 즉 라이프니츠-볼프주의는 대응 수단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언어가 수입된다. 그런데 이들의 반대자들 또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언어를 수입함으로써,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언어, 특히 흄의 언어가 회의적인 철학을 대표하게 된다.
프랑스적 맥락은 굉장히 특이한 면모가 많다. 이들의 언어가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 원자론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어느 쪽이 우세한지 모르겠다.) 그들의 글쓰기는 물론 에세이 방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과학적인 언어를 전제하고 현상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즉, 기계론적 세계관이 항상 전제된 상태에서 현상으로서의 감각이 덧붙여지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저자들의 특성에 맞게 정신의 우선성을 중요시하냐, 아니면 물질의 근본성을 중요시하냐에 대한 입장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재조직된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어느 쪽을 택하든 물질세계의 지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이는 영국/독일에서처럼 ‘기계’로만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확히 특징지어진다.) 물질들은 분명히 정신과 밀접한 작용을 한다. 때문에 정신적 작용 또한 물질적 작용과 따로 논의될 수 없고, 물질 상태와 물질 상태 사이 즈음에 정신이 자리 잡는다. (그것의 인과적 역할에 대한 입장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때문에 감각론적 논의는 물질적 논의이기도 하며, 메타 지각으로서의 미에 대한 논의 없이도 얼마든지 도덕적 논의로 발전될 수 있다. 물질적 작용의 근본 원리로서의 (섀프츠베리가 부정하려고 했던 저급한 수준의 지각인) 쾌로 모든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적 맥락에서는 때문에 진리가 초월적. 추상적, 관념적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프랑스적 감각론은 정서주의적이지 않으며, 형이상학적이지도 않다. 그것이 설사 특정 세계관을 전제할지라도 말이다. 때문에 이 경우 미적 논의는 인간이란 동물의 특수한 감각 기관의 작용으로서 경험적/실험적으로 접근된다.(몰리녹스 문제를 논의하는 프랑스 저자들의 입장을 상기하라)
영국적, 독일적, 프랑스적 맥락이 다 다른 상황에서 미적 논의를 단순히 감성학이라고 고정하긴 어렵다. 물론 독일에서 미학적 논의가 학문적 형태로 확립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미학과’라는 특수한 분과가 전세계적으로 일본에서 제일 먼저 제도화되었으며, 일본이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그들이 대학 조직의 본보기로 삼은 독일의 학문론의 구별에 입각하여 분과학문을 구별했기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독일적 감성학 이전의 수많은 미적 논의들과 미에 대해 접근하는 미묘하게 다른 접근 방식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이들의 기여를 축소해석해서는 안 된다. 독일적 맥락으로 환원되지 않으면서도, 근대 사상사에 중요한 인물을 한 명 뽑아서 해석해보자. 애덤 스미스가 바로 이러한 인물이다.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맥락에서 정서주의적 접근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법학적 전통과 이론 철학적 측면을 통해 정서주의적 접근을 셰련된 방식으로 일반화하였다. 그는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정서적 반응을 구조화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포착될 수 있는 질서로서 이론화하였고, 이것은 독일의 형이상학적 전통과 구별되는 방식으로 논증된다. 만약 애덤 스미스가 정말로 근대 경제학의 선구자라면, 그의 기여는 독일적 경로를 거치지 않고, 감각과 미적 논의를 국가 수준에서 파악될 수 있는 도덕, 법률, 합리성의 수준으로 고양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특별함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감성학과 다른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