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클로트, <선사 예술 이야기>
번역 직후 바로 읽고 쓴 코멘트. 늦게나마 올린다.
<선사 예술 이야기>… 기대했던 것에 비해 실망스럽더군요.
일단 이 책 자체가 가진 장점이 있기 합니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가 “예술”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거든요.
저런 동굴 벽화들의 유의미성을 축소하는 해석들의 결점들을 정말 잘 보여줍니다.
자의적으로 그렸을 것이라거나, 능력의 부재 때문에 저렇게 그렸을 것이라거나, 우연적인 요인(우발적인 천재성, 광기, 장애에 의한 효과)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그런 식의 해석들을 모두 격퇴시킵니다.
구체적인 제작 방식들을 연구해보면 저런 말이 안 나온다는 거죠.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설명되지 않을 요소들을 잘 제시해주고 있고, 임의성이나 불완전성으로 해석될 말한 특징들을 양식적 일관성으로 재구성해냅니다.
다만 저런 재구성이 일관적인 양식-정신을 제시해주고 있지 못하기에 문제입니다.
저자는 “샤먼 가설”을 통해 저런 일관성을 사유해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사고 가능성만을 제시하지 정확히 구체적인 일관성은 제시하고 있지 못합니다.(그가 제시하는 “창작 원리”는 너무 일반적이라 충분한 답변일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저자의 저런 한계는, 단지 연구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구체적인 오류 때문에 발생한 것 같습니다.
일단 그가 생각하는 샤먼 가설이 꽤나 문제적이거든요.
저자가 여러 사람을 인용하면서 샤머니즘에 대해서 이래저래 얘기를 하는데, 도대체 저런 바보 같은 얘기를 현대 학자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지가 좀 의문입니다.
저자는 샤머니즘적 사고라고 하면서 복잡성, 유동성, 변이가능성 따위를 얘기하는데, 이건 샤머니즘의 종차가 아닙니다.
저자도 맺음말에서는 샤머니즘은 그런 게 아니라고 운을 띄우지만, 그러면서도 저런 사고가 샤머니즘과 모순되지 않고, 수렵채집 사회에서 샤머니즘은 일반적이라는 이상한 소리로 대충 마무리합니다.
이건 오류 그 자체입니다.
샤머니즘은 수렵채집 사회에 일반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샤머니즘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특정한 방식의 종교이며 꽤나 엄격하게 경계 지을 수 있습니다.('샤먼' 자체가 민족지학적으로 특수한 언어이니까요)
샤머니즘은 구체적인 상징 논리에 기초해서 자연 세계 일반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샤머니즘은 추상적인 논리를 사용하며, 현세와 분리된 초월 세계를 다루는 종교였습니다.
게다가 샤먼들은 특정 부족에 귀속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유랑하며 자신들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 전달은 “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줌으로써(기적을 보여줌으로써) 설득시키고, 특정한 요구를 제시했습니다.
입문자와 비입문자는 절대적으로 구별되고, 사제와 신자도 절대적으로 구별되었죠.
샤머니즘은 대충 허접한 사고가 아니었고, 매우 보편지향적인, 세계종교적인 성격을 가진 종교활동이었단 얘기입니다.
도즈는, 샤머니즘이 특정 시기에 그리스로 유입되었고, 그들에게 매료된 그리스인들에 의해 그들의 구체적인 언어들이 그리스 사상에도 유입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부터가, “샤머니즘은 매우 특수한 사고이며, 독특한 언어로 조직되어 있고, 그들은 이동 속에서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죠. 도즈는 저런 주장을 할 때, 구체적인 상징 언어들을 가지고 그리스 사상에 새로운 언어가 유입되고 있다는 것을 보이고, 사료 속에서 언급되는 표징을 행하는 놀라운 마법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샤머니즘의 그리스 유입을 주장합니다.
도즈의 견해가 고전학계의 정설인지와 무관하게, 적어도 샤머니즘은 특수한 조류라는 것이며, 특정한 시기에 형성되었고, 전파를 통해 전달된 조류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장 클로트가 주장하는 샤머니즘은 걍 애니미즘입니다.
그것도 매우 느슨한 의미에서의 애니미즘이죠.
그러니 장 클로트는 자신이 주장하는 샤머니즘이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과 모순되지 않으며,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는 겁니다.
애니미즘과 토테미즘, 샤머니즘은 그 경계가 명확해야할 조류인데 말이죠.
샤머니즘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명사입니다.
샤머니즘을 일반명사로 쓰는 것은 은유와 비교여야 합니다.(엘리아데가 샤머니즘은 좀 일반명사스러운 의미로 사용하였는데, 사실 엘리아데는 일반명사로 사용한 적 없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영원회귀의 표현과 수행으로서의 종교의 대표주자일 뿐이지, 엘리아데는 이를 무분별하게 확대해서 언어화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은 일반명사이죠.
그래도 둘은 매우 다른 조류입니다.
일단 묘지 방식이 달라요.... 토테미즘은 엄격한 공동체 묘 시기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특정한 동물로 자신의 부족을 상징한다고 해서 토테미즘인 것은 아니란 얘기입니다.
상징 논리적 사고가 구체화-정교화되면 당연히도 서로 다른 방식의 논리형식 체계가 나옵니다.
토테미즘은 그 중 하나이며, 특유한 논리를 가진 조류입니다.
복잡성, 유동성, 변이가능성은 그냥 상징 논리적 사고 일반의 조건일 뿐입니다.
저걸로 구체를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클로트는 구체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방법론적인 정당화 부분에서 본인이 주장한 장점을 본인이 사례 연구를 통해서 못 보여주는 책인 듯합니다.
뭐 그래도 재미도 있고... 구체적인 현장 인터뷰와 본인의 경험을 기술하는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 현상학적이라고 해야하나? 체험적이라고 해야하나? 문학적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강점이 있습니다. 제가 저 책과 같이 보는 <선사시대 사회들의 과거 인식>의 영국적이고 역사학적인 서술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문체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클로트는 본인이 민족지학자는 아니라는, 그런 정체성 인식이 있더군요.
사실 서술 방식에서 전 민족지적이라고 생각했는데(경로부터 설명하며,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났고, 무슨 얘기를 듣고, 무엇을 질문했으며, 그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를 설명하는….) 그걸 부정해서 좀 흥미로웠습니다.
민족지는 특정 현장과 지속적이고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는 반면, 자신은 뜨내기이며 비교연구자라는 자기 인식이 있더군요ㅋㅋ
저것이 민족지학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수사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좀 흥미로운 자기진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