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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철학에서의 감각이란 문제

개선비 2022. 9. 6. 16:34

제목이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만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올림.



근대가 시각 중심주의라는 식의 서술이 꽤나 히트를 쳤지만,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관련된 문헌들을 제대로 읽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조너선 크래리가 <관찰자의 기술>에서 정말 박살을 내주죠. 애초에 문헌 확인조차 하지 않을 때만 할 수 있는 소리거든요.(비슷한 걸로 근대가 수사학을 탄압했고, 이제 수사학을 부활시켜야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도 멍청하니까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다만 근대에 감각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고, 이 사실은 자세히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근대에 감각이 중요해진 것은 감각이 중요하지 않게 되어서, 혹은 감각을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려고 시도되어서입니다. 원래 감각은 각 기관의 고유한 역량으로 설명되었습니다. 판단이 정신의 최종적인 심판자가 된 것은 근대 철학의 성취입니다. 원래 최종적인 역량은 기억 능력이었고, 판단은 감각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것들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작은 판단들은 “자연적인 것”의 질서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자연에 각각의 종들이 고유한 자리를 차지 하듯이, 감각들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적인 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대상에 좀 더 의존적이든, 감각기관에 좀 더 의존적이든, 감각기관이 가진 고유한 역량에 의해 “판단”된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즉 감각에서부터 자연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으로 변환/도약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런 감각론이 근대 과학과 대립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이런 감각론은 “정상적인 것”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정상적인 것들이 실체-형상 같은 것들과 과학적 추론을 가능케 하는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는 상식들이죠. 그런데 근대 과학은 바로 이 실체-형상과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는 상식들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보이는 것 배후에 신적인 것이 있다는 식의 초월적 대립관계를 부정하고, 보이는 것과 배후를 대칭적인 것으로 파악한 뒤, 보일 수 있는 것들을 중 선택하라는 식으로 근대 과학은 감각을 다루었죠. 또한 감각이 아니라 사고실험이나 망원경 같은 독특한 관찰 도구를 내세웠고요. 이것들 모두가 감각에 대한 신뢰를 부정합니다. 망원경이 나왔을 때, 이게 감각기관과 어떤 관계를 맺기에 “관찰”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특수한 방식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그림이나 마술램프 같은 환영이지 “자연적인 상”이 아니란 논리었죠. 갈릴레이나 데카르트는 이를 정명으로 돌파하려고 합니다. 애초부터 “자연적인 상”은 존재하지 않고, 감각기관도 망원경과 같은 기계장치라고 주장해버리거든요.

데카르트는 망원경의 원리를 분석합니다. 그는 반사망원경의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굴절 망원경만을 다루죠. 보통 이게 뉴턴과 데카르트의 차이로 소개되는 것들 중 하나고, 데카르트의 멍청함을 얘기할 때도 사용되는데, 그런 식의 해석은 데카르트가 왜 이 문제를 다루는지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겁니다. 데카르트는 눈과 망원경이 원리적으로 동일하며, 그 양태에서만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망원경은 눈의 연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눈이 작동하는 원리에 따라 단지 안구가 수행할 수 있는 작동을 증폭시키는 기계장치거든요. 이건 망원경에 대한 공학적 분석이 아닙니다. 오히려 데카르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눈과 기계장치의 등질성이고, 그 등질성이 기하학적 원리에 의해 확보된다는 주장이었죠. 망원경을 신뢰해도 되는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 성능 증대는 보조적이었습니다. 그러니 반사 망원경을 얘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저런 전제를 받아들이면 과학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위기에 처하게 되죠. 그래서 오퍼 갤이 “바로크 과학”이라고 표현한 탐구들이 등장하는 겁니다. 감각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도대체 우리가 탐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의미 있을 수 있냐는 물음 속에서, 과학자는 피카로가 되고 과학적 탐구는 피카레스크적 방황으로 그려지죠. 데카르트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자신의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고요. 데카르트는 감각에 대한 신뢰 자체도 최종적인,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판단에 의해 “확신”되는 것으로서 여겨져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데카르트가 <성찰>에서 감각에 대한 회의를 말하는 것은 매우 의도적인 작업입니다. 그건 단순히 회의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식의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데카르트가 극복하고 싶었던 회의주의는 광신적 자연주의자들이었고, 그가 감각에 대한 회의를 다루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과학에 대해 사람들이 의심하게 되는 문제 지점이라는 것을 알아서였습니다.) 데카르트는 물리적 작용들을 일종의 패턴형성으로 설명하고, 신체 또한 패턴 인식과 패턴 창출의 매체로 설명합니다. 이런 설명 와중에 데카르트는 끊임없이 산출된 패턴들은 자연적인 상이 아니라고 강조하는데, 데카르트가 이를 설명하는 이유 자체가 자연적인 상에 대한 호소 없이 이를 대체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런 강조들은 의미가 있는 것들인데, 데카르트에게서도 신체는 외부의 패턴들에 적절한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여겨져야했고, 그것들이 “판단”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기에 그랬던 것이죠. 데카르트는 판단은 언제나 정신적인, 보편적인 인식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그런 인식은 세계 자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통해 형성해낸 세계 독립적인 구조물이어야만 했습니다.

하여간 데카르트는 감각들의 내용을 그 자체로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세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 활용될 정보들로 여겼습니다.(데카르트는 ‘information’ 용례에 중요한 선구자입니다. 실제로 정보이론 개설서들 중에 데카르트를 정보 이론의 선구자로 소개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각 감각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감각들은 상상력을 통해서 유의미한 방식으로 조작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이니까요. 또한 그 결과물에 대해 우리가 가타부타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게 되고요. 따라서 데카르트에게는 어떤 특정한 기관이 우위에 있다는 주장은 의미가 없습니다. 데카르트는 시각만을 숭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촉각이 비의식적으로 판단에 얼마나 많이 개입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주장했습니다. 거리감은 단순히 올바른 시각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양안시를 통해서 수행되는 기하학적인 측량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거든요.(이 경우에도 신체는 계산을 하고, 이게 “판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데카르트는 이건 자기가 판단이라고 부를 종류의 정신적 활동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상기 시킵니다...) 그러니 데카르트에겐 죄가 없는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 논의들입니다. 이전 시대에야 감각들은 고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오감이 완전한 것이며, 이를 종합할 때 완전한 실체-형상을 인식한다고 여겨졌지만, 이제 그게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오감 이외의 감각들이 고민될 수 있고, 오감에서 무엇인가가 부족할 때 결여되는 “정보”가 무엇일 수 있는지, 우리가 정상적인 판단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동원되는 정보들이 무엇인지가 고민될 수 있게 됩니다. 덕분에 “몰리뉴 문제”와 같은 흥미로운 문젯거리가 등장한 것이죠. 맹인이 개안하게 되었을 때, 대상의 형태를 별도의 훈련 없이 인식 가능한지는, 결국 감각들이 제공하는 정보들의 질적 차이 유무에 대한 문제거든요. 맹인이 촉각을 통해서 인식하는 “형태”가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형태”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다르다면 도대체 어떻게 비슷한 인식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지, 같다면 어째서 개안 수술 후 별도의 훈련을 거쳐야하는지 따위가 고민되었습니다. 결국 소득 없는 물음이지만, 덕분에 <맹인에 대한 편지>과 <농아에 대한 편지> 같은 명작들이 나온 것이죠. 그리고 교훈은 간단히 요약될 수 있습니다. 디드로의 말마따나 결국 중요한 것은 같은 정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효과의 차이인 것이죠.

하지만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남게 됩니다. 정상적인 것이 무엇일 수 있느냐는 물음은 계속될 수밖에 없으니까요.(디드로는 어떤 의미에서 정상성에 대한 고집으로부터 탈피하자고, disponibilité를 발휘하자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잘 파고든 게 버클리죠. 버클리가 주교가 된 것부터 이 문제랑 관련이 있습니다. 버클리는 미적분에서 사용되는 무한소 개념이 모순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하며 뉴턴-로크적인 광교주의 연합(마가렛 제이콥의 연구를 참조)을 공격합니다. 뭐 당대 과학자들은 버클리의 비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과학사가들도 뭘 모르는 놈이 헛소리했다고 생각했었고요. 하지만 현대의 과학사가들이 따져 보니 버클리의 논증이 맞는 거였고, 19세기에 수학자들이 인식한 미적분의 개념적 문제를 버클리가 컴토한 게 밝혀졌습니다. 뭐 버클리의 공격에 다들 신경 안 썼지만, 덕분에 버클리는 주교가 됩니다. 버클리의 재능을 알아본 양반들이 대항-광교주의의 새로운 타자로 버클리를 키우려고 한 것이죠. 버클리는 하나만 공략합니다. 감각의 다수성 같은 것을 부차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리죠. 버클리는 감각이 다수적이지 않더라도, 즉 하나의 감각 안에서도 정상성의 문제는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입니다. 즉 눈으로 보는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동의 가능한 것부터가 신비로운 것임을 보입니다. 실제로 감각들 사이에서의 종합 가능성 문제(공통감각의 문제) 만큼이나, 자연적인/정상적인 감각의 문제는 심각하죠. 버클리는 이런 문제는 결국 자연성과 정상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죠. 의심도 결국 신뢰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한 것이고요.(결국 버클리가 “공통감각”을 “상식”으로 만든 장본인이란 해석입니다. 뭐 상식으로서의 ‘common sense’는 이전부터 말해졌지만, 그것의 철학적 의미와 진정한 함의를 밝힌 일은 버클리의 공로인 것이죠.)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면 옛날 사람들이(자주 얘기하지만 정통적 해석이 결국 맞는 해석입니다 보통... 어설픈 수정주의는 모두 어떤 것을 몰라서 나온...) 칸트를 근대 철학의 정점으로 꼽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저런 종합의 조건을 말하는 것과 정상성을 말하는 것을 구별합니다. <순수이성비판>은 정상성에 대한 담론이 아닙니다. 칸트가 증명하려고 한 것은 판단이란 것이 작동하는 원리를 밝힘으로써, 우리가 말하는 것들이 다르고 이질적이라도 그것이 “하나”의 “세계”에 “대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이 해소될 수 없는, 딴 세계에 있는 그런 것은 아니란 것이죠. 약간 클라인의 에어랑엔 프로그램과 비슷합니다. 이토록 다양한 기하학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을 “기하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식적 조건을 탐구한 것이죠. 칸트는 정상성의 문제는 일종의 역사의 문제로 여겼습니다. 철학자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많은 과학사가들이 인정하 듯 칸트가 자연사 및 역사학에 큰 기여를 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칸트는 정상성을 해석의 문제이자, 역사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광기는 그에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죠. <최종 유고>에서 칸트는 “우리 모두가 미친 게 아닐까?”라고 묻습니다. 그 자신이 미쳤는가를 묻고 있지 않습니다. 미쳤다면 우리 모두가 미친 것이죠. 그는 사회적인 것을 전제하고 있었던 것이죠. 상호주관으로 환원되지 않을 층위의 것으로서요.

뭐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이긴 합니다. 무엇을 신뢰할 것인지가 결국은 중요하고, 사회나 역사를 신뢰해야하지만, 그것에 대해 비판 해야만 하는 순간을 잘 결정해야하는 것이죠.(디드로의 교훈은 그래서 지금도 유용합니다.) 나의 감각, 나의 신념과, 세상의 이치 사이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요. 말하고 나니 교양소설에 대한 모레티의 해석이랑 같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근대에 교양소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제 얘기는 헤블록의 <플라톤 서설>처럼 교양소설에 대한 서설일 테고요.(헤블록의 위대한 연구서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허접하지만, 하여간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