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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으로서의 역사, 기억학과 철학 (계속)

기억으로서의 역사, 기억학과 철학 (계속)

 

시간의 종합 문제에 집중하다보니 결국 기억을 다루는 20세기 후반 조류에 이르렀다. 이러한 조류를 접하다보니 꽤나 흥미로운 이상한 지점, 철학이 기여할 수 있을 만한 중요한 맥락들이 있어 글로 남긴다.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오해를 낳기 쉬운 개념이다. 이는 역사학자들 안에서도 똑같이 오해를 사는 것 같다. 기억으로서의 역사를 중요시하는 대표적인 학자인 알라이다 아스만과 크리슈토프 포미안의 입장 차이를 보면 그렇다. 아스만은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 기획을 매우 응원하는 입장에서 흥분한 상태로 포미안에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포미안은 매우 심드렁한 반응과 함께 너네랑 우리는 다르니까 제발 좀 거리 좀 지켜줄래?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여기서의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포미안은 노라와 가까운 사이이고, <기억의 장소> 기획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특정한 종류의 반응 아래에는 갈등이 있는 법이다. 포미안은 자신들의 작업이 기억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사실로서의 역사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기억을 다룬 것은 역사적 대상으로서지, 역사 자체를 기억으로 다룬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이론적으로 매우 설득력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포미안의 특정한 종류의 반응이 전부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심드렁함은 의도적인 것이고, 매우 강렬한 거리두기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학문이길 바라지 문학이길 바라지 않는다.(이 부분에서 흥미로운 저자는 도즈다. 프랑수아 도즈는 노라를 기억의 역사로 연결하지만, 동시에 19세기부터 이루어진 반-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의 역사를 통해 나락을 피해가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억으로서의 역사는 사기꾼이 되라는 얘기와도 같다. 이러한 반응은 유형적으로 반복된다. 기어츠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에 대한 리치의 반응도 비슷하다. 기어츠는 리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기술했지만, 이에 대한 리치의 코멘트는 매우 냉담하다. 그는 심드렁하게 반응할 뿐이다. 심지어 가장 심한 욕을 내뱉는다. “<저자로서의 인류학자>가 전화번호부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이 정말로 정상적인 것일 수, 혹은 공정한 것일 수 있을지 물을 수 있다. 정말로 아스만과 기어츠는 학문성을 상실시키는 작업을 한 것일까? 그들의 작업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학문성을 부정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억으로서의 역사란 개념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기억으로서의 역사우리는 이 표현을 언제인지 모르게 들은 적 있다. 이는 역사서술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 “사실로서의 역사와 대조되는 것으로 소개된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역사를 사실이 아니라 거짓으로 만들게 하므로, 우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사실로서의 역사기록으로서의 역사변증법적으로” “종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적인 설명법은 국사 교과서에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그저 한 명의 역사가의 말이 반복되고 있음을,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반복되고 있을 뿐임을 기억해야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연 거짓이기만 한 것일까? 만약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거짓, 기만에 불과하다면, 도대체 카의 역사서술은 어떻게 둘을 종합할 수 있는가? 그의 결과물 또한 역사를 기록한 것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긴즈부르그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답을 위해서는 통념을 한번 언급할 필요가 있다.

 

후대에 전해졌으면 하는 역사관.jpg” 얼마 전에 한 글을 읽었다. 역사학도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을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으로 (캡쳐를 통해) 공유한 글이었다. “충분히 상식적이다.” 이 말이야말로 그 글에 대한 나의 평가였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인 의미에서 말이다. 모 난 데 없는 글이었기에 좋은 의미에서 상식적이었고, 다만 그러한 상식이 특별한 점 없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상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글이었다. 그저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후세대에는 지금과 같은 식의 갈등이 좀 덜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뭐만 얘기하면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천지인 곳이 인터넷이라지만 굳이 이런 글에 왜 흠을 내려고 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의 글을 비난하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일 뿐이다”, “역사는 원래 사기다”,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역사는 민족주의를 위한 것이다”, “모두가 (민족주의 사관을 따르지 않고) 저런 식으로 생각하면 결국 나라는 망한다”, “그저 자신의 사관을 다른 이들과 똑같이 주입하고 있다따위의 댓글들이 쏟아졌다. 나는 이러한 반응들이 놀라웠다.

 

물론 반응들이 내용적으로 참신한 것은 아니었다. “포스트모던스러운 민족주의라는 것이 특이해보이기도 하지만, 저런 입장이 등장한 것은 최신이 아니다. 내가 놀란 것은 바로 저러한 관점이 갖고 있는 아주 명백하게 포착될 수 있는 비일관성이었고, 그런 것을 의식조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어떤 댓글들은 저런 댓글들을 반박했지만, 그들의 일관성을 비판하고 있진 않았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다.” 이러한 경구는 미취학아동들도 들었을 만한 주장이다. 이는 대단한 통찰이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들이 비난하는 바로 저 작성자도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민족주의를 이중화한다. 그들에게 있어 민족주의는 사기이다. 하지만 필요한 사기이다. 그리고 그 사기를 당하는 것은 자신은 아니다: “멍청한 인간들이 속아서 헌신해야 나라가 돌아간다. 그러니 민족주의를 활성화해야하고 역사는 원래부터 과학이 아니니 멍청이들을 속일 계획이나 잘 짜라.” 미취학아동들도 알만한 진실을 설파하는 인간이 자신과 대중을 거리 둔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그들 자신처럼 멍청한 인간들도 민족주의에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데 도대체 누가 민족주의에 속을 수 있을까? 모두가 속이려 하지만 속는 사람은 없다면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 텐데 그들의 알 수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대해서 긴즈부르그의 답변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일단 역사학은 애초부터 사실을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무엇인가를 사실로 만드는 일에, 무엇인가가 다른 것보다 더욱 사실이라는 것을 설득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조류는 현대적 조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긴즈부르그가 설득력 있게 보여주듯, 역사학자들은 굉장히 이른 시기부터 이러한 문제를 고심해왔다.(그것이 비의식적으로 수행된 것일지라도) 문제는 그렇기에 이론적으로는 단순하게, 실천으로는 복잡하게 해결된다. “우리는 진리가 아니라 그럴싸함을 다룬다.” 그리고 내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역사에 대한 회의주의에 대한 가장 큰 공격은 예상외의 것이다. 역사학이 애초부터 진리를 다루지 않다는 것. 역사는 애초부터 사실이 아니다; 기록이다. 역사는 애초부터 존재가 아니다; 기억이다. 그리고 역사학의 임무는 이러한 부정성을 단순히 부정성으로 방치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들은 이러한 부정성에서 실증성을 찾아낸다. 그들에게 사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러한 만듦은 그저 사기를 뜻하지 않는다. 그들은 합리적인 원리 원칙에 입각해서 기준을 세우고, 이에 따라 사실을 생산한다. 그러니 해석과 사실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역사학의 기원에 대한 물음과 헤로도토스의 <역사> 집필 시기에 대한 연구는 질적으로 유사해진다. 둘 모두가 하나의 사실을 만드는 해석적 작업이며, 이는 사실도 거짓도 아닌 따질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질 증거를 토대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