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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블루>에 대한 감상평

이하 카톡 복붙


 
어제 본 <퍼펙트 블루>에 대해 간단히 코멘트 남깁니다.
 
이 영화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붕괴하는 과정과 그 붕괴로 초래하는 파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진정으로 흥미롭게 만드는 점은, 한 개인의 내면 안에서 환상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상호 작용하면서 그 환상이 작동하는 것을 그려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게 뭔지 설명해보죠.
 
영화는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한 미마(링)의 삶을 다룹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미마링은 아이돌에서 은퇴하고 배우로 전향하죠. 하지만 배우의 길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 마미는 겁탈씬을 찍어야했고, 꽤나 충격적인 역할을 소화해야만 했죠. 이 과정 속에서 미마의 정신은 붕괴합니다. 미마는 본래 가수(아이돌)가 되고 싶었고, 가수를 꿈꿔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현실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었죠.(이는 조금 있다 설명) 아이돌로서 어느정도 인기를 끌었지만, 그녀는 사장에 의해 배우로 전향하길 요구받습니다. 여기서 사장이 나쁜 사람이라 이런 요구를 한 것도 아니고, 그는 단지 권유했을 뿐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게 중요합니다. 사장은 합리적인 인물로서, 그녀에게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것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미마 또한 바로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 길로 나아간 거죠.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세뇌시킵니다. 하지만 그녀의 욕망은 가수로 향해 있고, 이는 부정한다고 사라질 수 없는 욕망이죠. 그런 상황에서 극심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아이돌로서의 정체성, 자기 이미지가 자신에게서 완전히 소멸하게 되자, 아이돌로서의 정체성, 자기 이미지가 독립되어 나가면서 그녀는 정신분열 상태가 되는 겁니다.
 
이런 걸 표현할 때 굉장히 섬세한 연출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이돌은 환상을 주입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환상 주입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되죠. 아이돌을 지망하고, 그러한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환상에 기초하고 있거든요. 그 감각을 표현하는 연출 중 하나가 무대에 대한 시각적 재현입니다. 아이돌 시절에 대한 회상에서, 아이돌의 무대는 배우의 무대와는 완벽히 다른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돌의 무대에서 팬들은 검은 그림자가 됩니다. 스포트라이트가 무대를 쏘면서, 아이돌을 제외한 인물들은 빛을 잃고 아이돌의 정체성에 종속된 존재가 됩니다. 더불어 그들은 카메라를 아이돌에게 향함으로써, 끊임없이 그 빛을 반사시켜 다시 아이돌에게 돌려주는 존재이죠. 하지만 배우의 무대는 다릅니다. 배우가 연기하는 공간은 수많은 부분들로 분리되어 있는, 하나의 무대가 아닌 (루만의 사회와 비슷한) 복잡한 공간입니다. 자신이 촬영을 하고, 카메라가 도는 순간에도, 주변에서는 다른 일들을 진행합니다. 수없이 많은 부분들이 있고, 그들 각자가 자신의 소임을 독립적으로 수행하면서 배우의 무대는 완성이 되는 것이죠. 여기서 주인공은 극에 종속된 존재, 이 시스템 자체에 종속된 존재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미마는 바로 이 차이에 적응하지 못합니다.(미마가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것 때문일 것입니다. 미마는 카메라가 돌 때에만 극-환상에 열중하는 배우들을 신기해 합니다. 미마는 현실과 환상이 항상 혼동되는 인간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연출은 아이돌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감독의 감각을 잘 드러내주죠. 아이돌 또한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지만(이는 이후 설명), 아이돌은 시스템과 무관한 환상을 생산하고, 사람들을, 팬뿐만 아니라, 아이돌 자신도 그 환상에 종속시키는 독특한 시스템이기도 하죠.
 
환상의 공유, <파프리카>에서는 꿈을 공유하는 장치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 기계가 폭주하면서(정확히는 오남용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의 환상과 현실이 섞이게 했지만, 이는 억지스러운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퍼펙트 블루>에서는 환상의 공유가 섬세하게 다뤄지죠. 바로 시스템과, 그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면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개인/개인의 욕망/개인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퍼펙트 블루>는 시스템의 발전보다는 붕괴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 영화가 90년대 후반에 나오기도 했고, 바로 그래서 그것에 맞췄다고 말할 수도 있죠. 90년대 후반 아이돌 산업은 완벽히 끝물임이 확실하게 됩니다.(이후 AKB48의 등장과 함께 아이돌이 다른 방식으로 부흥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전과는 다른 시스템입니다) 90년대 초중반까지의 일본 아이돌은 국민적 스타였지만, 이제 아이돌은 사라지는 과정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과거의 환상을 따라 아이돌이 되었던 마미는 상황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사장은 합리적 비전에 입각해 변화를 모색했던 것입니다.(그리고 극중에 이는 “외부적으로” 성공적인 선택이었음이 계속해서 확인됩니다) 하지만 시스템에서 환상에 시달리지 않은 것은 사장뿐이었습니다.(역시 자본가는 위대합니다. 오직 돈만을 숭배하는 숭고함이 있죠) 붕괴하는/변화하는 시스템 속에서 아이돌, 아이돌의 팬, 그리고 과거의 아이돌은 이 변화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환상에 종속됩니다. 그들은 시스템 자체, 육체 자체를 거부하고 환상 그 자체가 진정한 현실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죠. 미마에게 있어 아이돌로서의 정체성, 아이돌로서의 자기 이미지는 항상 빛나고 하얗고 가볍지만, 자신의 육체는 검고, 때탄, 더럽고 무거운 이미지죠.(이 이미지는 딱 한번 역전되는데, 그 무대는 강간을 연출하고 있죠. 그 무대는 아이돌 마미의 광체를 제거하는 과정인 겁니다 그래서. 아이돌 마미의 광체를 “판매”해서 시청률을 올리는 거죠) 팬 미마니아는 닉넴부터 미친놈이죠.(마니아는 미친놈이란 뜻이니) 그는 아이돌로서의 미마의 정체성/이미지에 완벽히 종속된 상태로 이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는 이 변화를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고, 육체로서의 미마를 가짜로 거부하고, 아이돌로서의 미마를 진짜로 수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이돌로서의 미마로부터 SOS를 듣고 일을 벌리죠. 이런 연출도 탁월합니다. 요 놈의 환상 속에서 그 자신은 미마니아임과 동시에 아이돌로서의 미마이기도 합니다. 팬픽 비슷한 걸 하는데, 그게 바로 미마의 방을 공개하고, 미마의 일기를 쓰는 것이죠. 그리고 미마니아의 아이돌 미마로서의 정체성은 자신에게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미마 자신도 그의 팬픽을 보고 처음에는 사이코스럽다고 무서워하지만, 나중에는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현실과 환상이 구별되지 않자 미마는 “미마의 일기”에서 자신의 기억(기억이자 동시에 정체성)을 얻게 됩니다. 그녀는 현실에서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잃지만, 욕망으로서는 잃지 않았고, 재현되지 않는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미마니아가 만들어낸 아이돌 미마라는 환상에 다시 종속시키는 것이죠. 이렇게 둘의 환상은 공유되는 겁니다. 여기에 더불어 매니저 역할을 하는 아줌마는 전직 아이돌로서의 환상을 잃지 못하고, 이 업계를 못 떠나고 있는 사람이었죠. 이 아줌마는 미마가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자, 바로 그 정체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바로, 아이돌 미마의 정체성/이미지라는 환상에 빠지는 것이죠. 그래서 미마를 죽이려고 하고, 미마와 미마니아 사이에서 자신을 숨기고 미마니아를 이용합니다.
 
무튼 <퍼펙트 블루>에서는 시스템적으로 사라질 환상이 개인에게는 남아서 유령처럼 떠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는 그 속에서 실제로는 사라졌지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정체성이 유령처럼 떠돌 뿐만 아니라, 인과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죠. 일단 이 정체성은 완벽한 실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유령은 그 자신의 영혼이 있고, 그 자신의 의지가 있고, 그 자신의 꿈이 있고, 그 자신의 정체성이 있고, 그 자신의 욕망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시대에 뒤처진 개인들이 환상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이 유령이 가진 자율성/실재성 덕분이죠. 아이돌 미마의 정체성은 그 자신의 고유한 특성(charateristic)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기에 모두가 현실의, 육체로서의 미마는 진짜 미마가 아니고, 진짜 미마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무엇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유령의 이런 특성은 바로 그녀가 하나의 행위자로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연출은 이를 향해있죠. 미마니아가 아이돌 미마로서 살인 행위를 저지를 때,  미마니아로서 육체적 미마를 죽이려고 욕망할 때, 매니저가 미마를 죽이고 자신이 유일한 미마로서 살아가려고 할 때, 육체적 미마는 똑같이 저들과 그러한 환상과 행위를 공유합니다. 누가 했는지는 그래서 항상 미궁에 빠지죠. 무엇이 현실인지, 무엇이 진짜 나인지, 무엇이 환상인지가 그래서 혼동됩니다. 아이돌 미마라는 유령이 행위하고 있는 것이고, 저 셋은 바로 그 아이돌 미마라는 유령에 종속된 채 행위하고 있기 때문이죠. 결국 유령은 실재할 뿐만 아니라, 진짜로 실재하는 것은 오직 유령뿐이기도 합니다. 미마, 미마니아, 매니저는 미마로서의 정체성말고는 모두 그저 껍데기로서 수행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죠. 유령은 그렇게 떠돌면서 개인들을 흡수하고 이들을 엮어 내고 파열을 만들어내죠. 이 과정이 시스템의 붕괴 속에서, 흔적들로 남은 유령에 종속되어 고통 받고 분열되는 개인들을 통해 드러나는 거죠.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참으로도 초현실주의스럽습니다. 파열의 재현이 초현실주의의 목표라고 할 때(물론 이 목표는 예술 안에서의 목표고 바로 이를 실천함으로써 초현실주의는 “치료”를 수행하죠), 이 영화는 정확히 파열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동시적인 것의 비동시성, 지나갔지만,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폐허들, 그 폐허 속에서 기거하는 유령들에 시달리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비극들. 이 점에서 참 초현실주의적인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는 참 적합합니다. 작품에는 항상 “사실일 법함”이란 게 필요한데, 이게 실사 영화로서는 꽤나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는 매우 정교한 구별이 가능하거든요. 실사 영화에서는 발의 움직임 하나에서도 감정을 읽을 수 있고, 표정 변화가 없음에도 표정 변화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게 실사 영화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게 역으로 한계가 될 때도 있거든요. 바로 환상과 현실이 결합할 때, 그 이질성이 침투하는 것에 대해 면역학적인 반응을 만들어내게 합니다. 영화 속 현실은 매우 나와 비슷하니, 이질적인 것은 외부/적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조금만 어색해도 바로 이상함을 느낍니다. 허나 애니는 안 그렇죠. 그래서 만화 캐릭터는 인간을 닮았으면서도 전혀 닮지 않은 것입니다.(비례를 생각해보세요. 애니 캐릭터의 얼굴은 인간의 얼굴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오히려 이질성을 침투시키기 좋은 환경이죠. 한편으로 배경은 매우 현실적이고(실사에 가까운 작화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닮지 않은 매우 이질적인 인간들이 존재하죠. 이런 상황에서 현실과 환상은 경계 지어지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애니메이션 자체가 바로 그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죠.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자신의 형식과 내용을 하나로 잘 엮어냈고, 결과물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를 “위대하다”라고 말하진 않겠지만요 전. 정말로 위대한 영화는 “신들의 깊은 욕망”같은 영화입니다. 암튼 그렇네요ㅋㅋ

 
P.S. 마지막에 미마는 자신이 “진짜(혼모노ㅋㅋ)”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열려 있죠. 전직 아이돌 매니저는 정신 병원에서 자신이 아이돌 마미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녀는 완벽히 환상에 종속되어 버렸죠. 그렇다면 육체적 미마는 어떨까요? 그녀가 자신의 육체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진짜”로 받아들였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열려있죠. 그녀가 또 다른 환상을 “진짜”로 생각했을 수도, 변화하는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그대로 받아들여 “진짜”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녀 또한 아이돌 미마의 유령을 자신만이 소유했다 여기면 스스로를 “진짜”로 여기고 있을 수도 있죠.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